지난 10월 30일 열린 LG화학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부문 분할 안건이 82.3%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LG화학이 지난 9월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 계획을 발표하자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성장성이 큰 배터리 사업이 빠져나가면 기존 주주가 보유한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다만 이 같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도 시장에서는 분할 안건이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성장성이 높은 배터리 부문을 분할하는 것이 자금 조달과 신사업 성장을 통한 전체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은 탓이다. 실제 세계 최대 주식의결권 자문사 ISS와 글래스루이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등은 모두 LG화학 기업분할 승인 건에 대해 찬성권고 의견을 냈다.
그러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주총을 사흘 앞두고 ‘반대’ 의결권 행사를 예고하면서 이 같은 예상을 뒤흔들었다.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은 기업분할에 따라 주주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즉, 분할 안건에 대한 찬반입장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중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갈린 셈이다. 기업가치(EV)란 기업의 미래 수익 창출능력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값으로 장기적으로 회사의 주식이 지니는 객관적인 가치의 지표로 활용된다. 반면 주주가치란 지속적인 주가 상승과 배당 등 중장기적 관점에서 주주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이익의 정도를 뜻한다.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 외에도 배당성향 등 주주환원 정책,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일탈이나 법령 위반에 따른 주가하락에도 영향을 받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국민연금은 왜 LG화학 기업분할을 반대했었나?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언택트·친환경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에 가까운 미래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전기자동차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LG화학은 올해 들어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도약하며 이목을 끌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점유율 10.7%로 글로벌 4위 업체에 불과하던 LG화학이 올 들어 1~3분기 기준 점유율을 24.6%로 확대하며 시장점유율 1위에 등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글로벌 1~2위 배터리 제조사였던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은 시장점유율이 각각 26.5%에서 23.7%로, 25%에서 19.5%로 쪼그라들었다.
이 같은 선전에 힘입어 올 들어 LG화학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코스피가 저점을 찍은 지난 3월 19일부터 배터리 부문 분할계획 발표가 있던 지난 9월 16일까지 LG화학 주가는 23만원에서 72만6000원(9월 15일 종가 기준)으로 215.65% 급등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주가 고공행진을 뒷받침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기간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인 LG화학 주식은 9720억원어치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 부문이 분할되어 새로운 법인이 설립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액주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문제 삼은 것은 분할 방식이다. LG화학이 기존 주주들이 신설법인의 주식을 직접 교부받게 되는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적분할은 신설회사의 주식을 기존(분할) 법인의 주주가 아닌 법인에 교부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신설회사는 LG화학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비상장 자회사로 설립된다. 이 경우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신설회사의 주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신설회사가 기업공개(IPO)에 나서면 보유 주식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투자자들에 이어 LG화학의 지분 10.51%를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도 같은 이유로 LG화학의 배터리 부문 분할 계획에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월 27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LG화학 분할 승인 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 행사 결정을 내렸다. 지분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기업분할에 따라 주주가치 훼손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모회사 디스카운트’ 현상이다. 모회사 디스카운트란 모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상장돼 있는 경우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증시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상이다. 자회사에 직접 투자할 수 있어 모회사에 투자할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왜 물적분할을 택했나?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분할에 나선 것은 별도법인을 분할신설하는 것이 외부 투자 유치와 외형 확장에 수월해서다. 그중에서도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 방식을 택한 것은 외부자금을 대거 유치하는 가운데에도 그룹 차원의 신설법인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물적분할을 활용할 경우 LG화학은 분할신설된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 100%를 고스란히 보유할 수 있다. 반면 인적분할을 통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은 LG화학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에 비례하게 나눠 갖게 된다. 이 경우 ㈜LG는 LG화학의 지분율과 동일하게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도 30.06% 차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분할신설된 LG에너지솔루션이 신규 투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LG화학이 애초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고 외부 자금을 유치해도 상당한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인적분할을 택하면 ㈜LG가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이 30.06%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경영권 유지에 대한 부담이 훨씬 늘어나게 된다. 특히 유상증자 시 지분율만큼 투자금을 대지 않으면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분할신설 법인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배력이 더욱 줄어드는 셈이다.
▶국내 주요 기업의 물적분할 사례
기업분할은 단순히 자금 조달 차원에서 뿐 아니라 자회사 매각, 타 법인과의 합병 등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물적분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골머리를 썩었다. 해당 물적분할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출자 받기 위해 중간 지주 회사인 조선통합법인을 설립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현대중공업이 기존 현대중공업을 조선통합법인과 사업법인으로 나누는 물적분할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상장회사로 남는 조선통합법인이 중간지주회사가 되어 비상장회사로 분할신설된 현대중공업의 지분 100%를 보유하는 안이다.
이는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과정에서 그 주식을 출자받기 위해 고안된 체제 재편 방안이다. 조선통합법인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주식 55.7%를 출자 받고 그 대가로 신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조선통합법인 산하에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까지 4개 계열사가 편입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대우조선 인수 시 중복업무로 인한 구조조정 우려에 따른 상시적 고용불안이 뒤따를 수 있다며 법인분할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우조선 인수를 명분으로 정기선 현대가 3세인 정기선 부사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법인분할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선 물적분할 시 현금, 차입금 등 귀속이 불분명한 자산과 부채의 향방을 이사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오너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직접 인수할 경우 지주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권 승계 시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인분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주주총회가 열리던 지난해 5월 31일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점거농성에 따라 주총장을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울산대 체육관으로 변경해 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기업분할은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사안으로 당일 주주총회에 의결권 주식 72.2%이 참석, 참석 주식 99.8%가 찬성표를 던지면서 무난히 통과됐다. 이에 지난해 6월 조선통합법인인 한국조선해양이 출범했다.
당시 현대중공업 지분 9.35%를 보유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도 LG화학 물적분할 건과는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주총 이틀 전인 5월 29일 회의를 열고 분할 계획에 대한 찬성 입장을 결정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찬성 이유에 대해 “위원들도 물적분할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이로 인해 주주 권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분할 신설회사가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며 “물적분할이 주주 권리를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를 한다면, 그동안 기업들이 했던 물적분할이나 향후 있을 물적분할도 문제로 삼게 되는 것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최근 LG화학 물적분할 승인 건에 대해서는 주주가치 희석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진 만큼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 현대중공업 노조 측은 법인분할 주주총회의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며 주총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1, 2심 재판부에 이어 지난 4월 20일 대법원에서도 이를 최종 기각했다. 비슷한 사례로 한화테크윈은 지난 2017년 물적분할을 통해 한화지상방산,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 등을 설립했다.
당시 한화테크윈 노조(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역시 기업분할로 인한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총고용을 보장할 것을 사측에 요구하며 물적분할에 반발한 바 있다.
▷잠깐 용어인적분할 기존(분할)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의 기업분할. 인적분할은 주주 구성은 변하지 않고 회사만 수평적으로 나눠지는 수평적 분할이다.
물적분할 분리, 신설된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소유하는 기업분할 방식. 기존 회사가 분할될 사업부를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므로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한다.
[문가영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