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DB형은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기업에서 유리… DC형·IRP 가입자, 적합한 편입상품부터 찾아봐야
문가영 기자
입력 : 2020.10.30 10:44:04
수정 : 2020.10.30 10:45:15
퇴직연금은 기업 혹은 근로자 스스로가 은퇴 후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돈을 적립해두고 정년퇴직 후에 지급받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본래 정년퇴직 시 퇴직금을 일시에 지급하는 퇴직금제도만 존재했지만, 지난 2005년 12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이 시행되면서 퇴직연금제도가 본격 도입됐다. 퇴직연금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더불어 국민 노후를 보장하는 사적연금 제도로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퇴직연금의 형태는 사업장별로 노사 합의를 통해 DB형과 DC형 중 선택할 수 있다. DB형 퇴직연금은 연금액이 급여의 일정 비율로 정해져 확정되고 적립금의 운용수익에 따라 사용자의 적립부담이 변하는 형태다. 퇴직 전 3개월 평균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총 지급액이 확정된다. 사용자는 매년 임금인상률에 따라 미리 퇴직연금 지급액을 예측해 부채를 쌓아둬야 하는데 연금의 운용수익률이 임금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면 회사가 퇴직연금 부채를 추가로 충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지급액이 이미 고정되어 있는 만큼 운용에 따른 손실은 모두 사용자가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직접 금융기관을 지정해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DC형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직접 금융기관과 투자할 상품을 선택하고 연금 운용수익률에 따라 총 지급액이 달라지는 방식이다. 매월 급여의 일정비율을 퇴직연금 보험료로 적립하여 운용하게 된다. 즉 사용자의 부담금은 사전에 확정되고, 적립금 운용결과에 따라 근로자의 퇴직연금 총 지급액이 변하는 형태다.
사용자가 연금 지급액을 부담하는 DB형, DC형과 달리 IRP는 근로자가 별도로 사비를 적립해 운용할 수 있도록 한 퇴직연금이다. IRP는 본래 조기 퇴직 시 받은 퇴직금을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이 외 근로자 스스로도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 1800만원 한도에서 추가 납입이 가능하다. 계좌에 납입된 금액은 예금·펀드·채권·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상품에 원하는 포트폴리오대로 투자할 수 있다.
IRP는 사적연금 장려 차원에서 세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테크 차원에서도 매력적이다. IRP는 연 추가 납입액에 대해 연금저축과 합산해 총 700만원까지 최대 16.5%를 세액 공제해준다. 한도까지 납입하면 연 115만5000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근로소득이 5500만원을 초과하면 13.2% 공제율을 적용해 최대 세액 공제액은 92만4000원이다. 아울러 2020년부터 3년간 50세 이상 가입자에 대해 세액공제 한도를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한시적으로 늘려주는 것도 퇴직을 앞둔 중년에게는 기회다.
다만 IRP는 퇴직연금의 일종인 만큼 연금 개시 시점 전까지는 무주택자 주택 구입 등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에 따른 중도인출 사유에 해당할 때만 중도 인출이 가능하다. IRP는 가입 기간 5년 이상, 만 55세 이후에 연금 수령 한도(연금 계좌 잔액×120%/(11-연금 수령 연차)) 내에서 연금 수령을 개시할 수 있다.
▶퇴직연금 운용 현황은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매년 발표하는 ‘2019년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21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190조원) 대비 16.4% 증가한 수치다.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737조7000억원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그 30% 수준이다.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퇴직연금 제도도입 비율은 더 높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91.4%가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76.8%, 30인 미만 사업장 가운데 24%가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 중이다.
유형별로는 DB형이 138조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62.4%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외 DC형의 적립금은 57조8000억원(26.1%), IRP는 25조4000억원(11.5%)이다.
다만 성장세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IRP 적립금의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작년 한 해 동안 IRP 적립금은 6조2000억원가량 증가해 32.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같은 기간 DC형은 16.3%(8조1000억원), DB형은 13.9%(16조9000억원)가량 증가했다. IRP는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에만 3조8411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적립되는 등 자금 유입세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DC형 퇴직연금에도 1조4298억원이 추가로 적립됐다.
▶디폴트 옵션이란
최근 5년 여간 퇴직연금 시장의 최대이슈는 ‘디폴트 옵션’의 도입 논의다. 디폴트 옵션이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별도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들이 자동으로 미리 짜놓은 포트폴리오에 맞춰 투자하는 제도다. 연금 상품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들도 돈을 그냥 방치해두지 않고 전문가에게 맡겨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국내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원리금이 보장되는 예·적금 상품에 적립금을 묻어두는 경우가 많아 저조한 수익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DC형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되는 자금은 80.5%에 달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대한 편중이 크다보니 수익률도 미미한 수준이다. 올 상반기 DC형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1.69%로 금융기관에 지급한 수수료(평균 0.48%)를 빼면 은행 적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기준 국내 금융기관의 평균적인 정기적금 금리는 연 1.23%이다.
지난 2014년 업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도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을 도입해 연금 운용수익률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미국의 경우 이미 디폴트 옵션을 통해 연금 투자자로부터 별도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자동으로 타깃데이트펀드(TDF: Target Date Fund)에 가입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저금리 환경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 실태도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11월 중 DC형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도입을 골자로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타깃데이트펀드(TDF)란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이 법제화될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TDF 상품이 디폴트 옵션으로 지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DF란 타깃데이트펀드(Target Date Fund)의 약자로 목표 시점에 따라 위험성향을 조절해 자동으로 자산 비중을 조절해주는 상품을 뜻한다. 디폴트 옵션 논의와 맞물려 지난 2016년 국내에 최초로 소개됐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TDF(라이프사이클 펀드)의 전체 설정액은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만 78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TDF의 강점은 연금에 특화된 상품인 만큼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안정성을 키우는 동시에 생애주기에 따라 위험투자 비중을 조절해 알파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45년을 목표 시점으로 하는 상품은 2025년을 목표 시점으로 하는 상품보다 주식 비중을 더 높게 가져가는 식이다.
또 목표 시점이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안전자산 비중을 높여 원금손실 가능성을 줄이고 ‘지키는 투자’에 돌입한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자산에 분산투자하기 때문에 수익률은 해외혼합형 자산배분 펀드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해외증시 랠리가 이어진 지난 한 해 동안은 17.3%의 높은 수익을 올려 인기를 끌었다.
이는 해외혼합형 자산배분 펀드(15.32%)를 소폭 웃돈 수치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0월 15일까지 4.75%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임금피크 이후에는 DC형 유리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은 DB형과 DC형 퇴직연금 중 하나만 선택할 수도 있고 동시에 도입할 수 있다.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가입자들은 선택지가 있는 경우 우선 DB형과 DC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선 DB형의 경우 은퇴 전 3개월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연금 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에 호봉제에 따라 연차가 쌓일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기업에서 유리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특히 임금상승률이 높을수록 DC형을 통해 높은 운용 수익률을 거두더라도 매년 임금상승률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기업의 경우 은퇴 직전에 연봉이 낮아지기 때문에 DC형이 더 유리하다. 임금상승률이 미미한 기업 역시 글로벌 위험자산 투자 등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노릴 수 있는 DC형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와 IRP 가입자들은 적립금 운용을 위해 적합한 상품을 찾아봐야 한다. 근로복지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4분기 기준 시중에 나와 있는 퇴직연금상품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102개,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이 2121개로 나타났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경우 은행이 26개, 생명보험사가 52개, 손해보험사가 24개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의 경우 자산운용사가 2009개로 가장 많은 상품을 제공하고 있고 생명보험사 65개, 손해보험사 47개 순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고 있는 ‘스테디셀러’ 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한국포스증권에 따르면 우수한 장기성과를 올린 펀드에는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3년 수익률 73.4%, 10월 15일 기준), AB미국그로스 펀드(69.67%), 미래에셋퇴직플랜글로벌그레이트컨슈머(주식형·48.99%), 피델리티아시아 펀드(39.59%), 미래에셋퇴직플랜글로벌그레이트컨슈머40(채권혼합형·23.49%) 등이 있다.
이 중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와 AB미국그로스 펀드에는 최근 6개월 동안 각각 1800억원, 310억원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됐다. 수수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장기투자일수록 1~2%의 수익률 차이로 복리효과에 따라 전체 수익률이 크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A클래스의 경우 최초 가입 시 선취판매수수료를 받는 대신 연간 총보수를 낮춘 펀드로 장기투자에 유리하다. 한국포스증권 전용인 S클래스 역시 일반 오프라인 클래스 대비 절반 이상 저렴한 수수료로 투자할 수 있어 좋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