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늘어나는 ‘착한 기업’ 투자 바람, 환경·사회·지배구조 종목… 6개월 수익률 30%도
류지민 기자
입력 : 2020.10.29 16:03:47
수정 : 2020.10.29 16:03:59
‘착한 기업’이 대세로 떠올랐다. 최근 재계에서는 기업의 투명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운용업계에서도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강화 바람이 거세다. 착한 기업이 주목받으면서 ESG 관련 금융상품 개발과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지배구조(Governance)의 줄임말이다. ESG 투자는 투자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매출, 수익성 등 재무 정보뿐만 아니라 친환경, 사회적 기여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하는 투자 방식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이후 이런 트렌드는 더 강해지고 있다. 전 지구적 재앙이 발생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허영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비재무적 위험을 관리하고 공중보건, 환경보호, 부의 양극화 해결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투자가 가치 있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 사업 가운데 그린뉴딜이 디지털뉴딜과 함께 양대 축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각광받는 ESG 투자
글로벌 ESG 펀드 1조달러 넘어서
ESG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글로벌 ESG 펀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다. 최근 글로벌 ESG 펀드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약 1140조원)를 넘어섰다. 올 1분기 펀드 시장에서는 코로나19로 약 3500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으나 ESG 펀드에는 456억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전통 에너지 기업의 주가는 부진한 반면 테슬라를 비롯한 친환경 기업의 주가는 급등했다. 각국 정부가 ‘그린뉴딜’에 나서면서 이런 기업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는 추세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함에 따라 ESG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그린뉴딜을 통해 공공건물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친환경 인프라로 전환하는 등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 총 73조원을 투입한다. 그린뉴딜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연합(EU)은 수소 경제 규모를 올해 기준 20억유로(약 2조6830억원)에서 2030년까지 1400억유로(약 187조8128억원)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특히 패시브 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친환경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서 ESG ETF에 돈이 유입되고, 이들이 투자하는 기업의 주가가 다시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테슬라가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에서 거래되는 ETF 중 테슬라 주식을 편입하고 있는 상품은 130여 개에 달한다.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테슬라 주식 수는 약 660만 주로, 전체 상장 주식의 3.6% 수준이다. ESG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테슬라 주식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환경보호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고 있다. 풍력·태양광·수소 등 클린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탄소를 유발하는 기존 에너지원에 대해서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ESG 펀드는 클린에너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의 투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특징이 있다. 투자자들은 향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ESG 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평균 수익률 12%… 성적도 ‘굿’
기업 성장성 평가에 ESG 중요성 높아져
ESG 투자가 단순히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ESG 투자가 기대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월 16일 기준 국내 판매 중인 SRI(사회책임투자) 펀드 42개의 올해 평균 수익률은 12.03%로, 국내 주식형(9.31%)보다 높았다. 최근 6개월 수익률은 무려 30.72%를 기록했다.
글로벌 사례도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ESG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모건스탠리가 운용하는 ‘인테그로(Integro)’ 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신흥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아프리카에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나 아시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 등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MSCI KLD 400 지수’의 지난 30년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 기준 10.7%로, 같은 기간 S&P 500 지수의 상승률(10.2%)보다 높았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 등 기업이 지켜야 할 환경 보호 기준이 강화되고 있는 데다, 소셜미디어 활성화로 악덕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등 응징이 빈번해지면서 ‘착한 기업’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의 경우 ‘오너 리스크’ 등 지배구조로 인한 위험요소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할 때 ESG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재무적 요소만 고려하는 것보다 ESG 항목까지 고려해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오광영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ESG 관련 요소들이 투자 테마로서 관련 산업의 성장과 함께 양호한 투자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트렌드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자산운용은 기후 변화와 지속 가능성을 올해 투자 포트폴리오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블랙록자산운용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상 기업 중 ESG 기준에 못 미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조치를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SRI 펀드 활용해 손쉽게 투자
이채원 ‘한국밸류10년투자주주행복’ 두각
가장 손쉬운 ESG 투자 방법은 SRI 펀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SRI 펀드는 편입 종목을 결정할 때 ▲친환경 생산·경영을 하는 기업이나 친환경 기술을 개발·보유한 기업 ▲사회환원을 하거나 사회복지개선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하고 우수한 기업 등을 담는 펀드로 ESG 투자와 맥을 같이한다.
개별펀드 중에는 국내 SRI 펀드 중 설정규모(1415억원)가 가장 큰 ‘마이다스책임투자’ 펀드가 최근 1년 수익률 38.53%, 올 들어 26.63%의 수익률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상품은 기업의 수익창출 능력에 집중하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운용 방식에 ESG 평가까지 더해 재무제표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포트폴리오에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종별로 투자 대상 기업을 선별한 뒤 자체적으로 개발한 ESG 설문을 활용해 지속 가능 성장 역량이 부족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마이다스에셋운용 관계자는 “책임투자펀드를 운용하면서 ESG와 책임투자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며 “이를 통해 운용성과와의 연관성과 유효성이 높은 평가 항목으로 구성된 설문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밸류10년투자주주행복’ 펀드도 연초 이후 20.61%, 최근 1년 29.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눈에 띄는 성적표를 냈다. 지난 2018년 이채원 대표가 취임한 뒤 처음 선보인 펀드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지침) 활성화로 주주가치 제고가 기대되는 가치주에 투자한다. 자본효율성 증대, 지배구조 개선, 주주정책 강화 등 주주가치 관련 변화 가능성이 높아진 기업과 이런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재평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이밖에 ‘우리G액티브SRI(26.86%)’ ‘KTB ESG1등주(26.51%)’ ‘KB아메리칸센추리글로벌리더스(24.7%)’ ‘브이아이사회책임투자(24.19%)’ ‘코레이트주주성장타겟(24.16%)’ ‘우리지속가능ESG (23.95%)’ ‘신한BNPP아름다운SRI그린뉴딜(23.54)’ ‘한화코리아레전드책임투자(23.17%)’ ‘이스트스프링지속성장기업(20.9%)’ ‘삼성착한책임투자(20.19)’ 등이 20%가 넘는 1년 수익률을 올리며 선전했다.
공모펀드 시장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SRI 펀드에는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10월 16일 기준 최근 3개월 새 새로 유입된 돈이 1103억원, 연초 이후로는 1570억원에 달한다. 전체 SRI 펀드 설정액이 4751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의 약 30%가 올해 새로 유입된 셈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3개월 새 3조9274억원, 연초 이후 11조4919억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비되는 움직임이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앞으로 주요 연기금과 대형 자산운용사가 ESG 펀드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ESG 시장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태동 단계로 향후 성장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직접 투자에 나서고 싶다면 한국판 그린뉴딜과 연관성이 높은 탄소배출권 관련주, 그린에너지 관련주 등이 1차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기업인 한화솔루션, 배터리를 생산하는 LG화학과 삼성SDI, ESS(에너지저장장치) 기업인 LS일렉트릭, 풍력타워를 만드는 씨에스윈드 등이 수혜 종목으로 분류된다.
한국전력이 에너지 신사업 확대를 위해 경북 경산에서 운영 중인 ‘경산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설 모습.
▶해외 ESG ETF 활용해 다양한 투자
美 대선 바이든 테마주로 친환경 ETF 부상
해외로 눈을 돌리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ESG를 활용한 ETF가 활발하게 운용 중이다.
MSCI는 10여 개의 ESG지수를 개발했고, 블랙록자산운용은 다양한 아이셰어즈 ETF 상품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MSCI USA ESG Leaders Equity(USSG)’는 거래가 가장 활발한 ESG ETF로 꼽힌다. 이 펀드는 ‘MSCI USA ESG Leaders Index’를 추종하는데, 경쟁업체 대비 ESG 순위가 높은 300개 이상의 미국 주식으로 구성된 지수다. ‘Vanguard ESG International(VSGX)’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펀드는 성인오락·술·담배·무기·화석연료·도박 관련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한다.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국제연합(UN)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도 배제한다. 추종 지수는 ‘FTSE Global All Cap Out US Choice Index’다.
‘Nuveen ESG Small-cap(NUSC)’는 ESG 철학이 반영된 소형주만을 추린 펀드다. 이 펀드는 기본적인 ESG 기준을 준수하는 중소형주 그룹 지수인 ‘TIAA ESG USA Small-Cap Index’를 추종한다. 술·담배·군용기·화기·원자력·도박 등의 제조·판매에 참여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펀드의 절반 정도는 소형주에, 나머지는 중형주와 초소형주에 고루 분산투자한다.
‘Impact Shares YWCA Women’s Empowerment(WOMN)’는 여성 권한 증진에 앞장서는 기업만 골라 투자한다. 직장 내 성 다양성과 평등을 촉진하는 조직인 이퀄립(Equileap)의 데이터를 활용한다. ‘SPDR SSGA Gender Diversity Index(SHE)’도 이사회와 경영진 중 여성 비율이 높은 기업을 편입한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테마 ETF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Invesco Solar(TAN)’는 태양광 산업 관련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글로벌 증시에 상장된 태양광 관련 기업들이 시가총액 비중대로 담겨 있다. 미국 종목이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홍콩, 중국, 독일, 노르웨이 등 순이다. 종목별로는 솔라에지테크놀로지스, 인페이즈 에너지, 신이 솔라홀딩스, 선런 등이 포함돼 있다.
‘iShares Global Clean Energy(ICLN)’와 ‘Invesco WilderHill Clean Energy (PBW)’는 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 연료 등 광범위한 친환경, 재생에너지 관련주에 투자한다. ‘SPDR S&P Kensho Clean Power(CNRG)’는 미국에 상장된 친환경 에너지 기업을 편입한다.
이 밖에 미국의 저탄소 기업을 담은 ‘ETHO US ETF’, 정부 지분이 20%를 넘지 않는 신흥국 기업을 편입하는 ‘XSOE US ETF’, MSCI USA지수 종목 중 ESG지수가 높은 기업을 편입하는 ‘SUSA US(ESG) ETF’, 리튬 산업에 투자하는 ‘GLOBAL X ETF’ 등도 주목할 만한 ESG ETF다.
한화큐셀이 하와이 오아후섬에 건설한 태양광 발전소 칼렐루아 재생에너지 파크.
▶국내 ESG 투자 환경 걸음마 단계
일반 주식형 펀드와 차별화 시도 필요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유럽·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내 ESG 투자 환경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ESG 펀드 설정규모는 5000억원이 채 되지 않고, 국내 기업들의 지속 가능 투자액 역시 220억달러(약 26조원)로 유럽(14조750억달러), 미국(11조9950억달러), 일본(2조1800억달러)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한다.
최근 속속 출시되고 있는 SRI 펀드의 경우 일반 주식형 펀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국내 SRI 펀드가 인기 대형종목 위주로 구성돼 있어 IT나 4차 산업혁명 등 다른 인기 테마 펀드와 자산구성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SRI 펀드 ‘마이다스책임투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담고 있다.
최근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국내 ESG 펀드의 ESG 수준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ESG 펀드 포트폴리오의 평균 ESG 수준이 일반 주식형 액티브 펀드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혜진 연구원은 “이는 중장기적으로 ESG 펀드에 대한 투자자 신뢰 저하와 ESG 펀드 시장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국내 금융투자업계는 차별화된 ESG 펀드상품 개발에 힘쓰는 동시에 ESG 펀드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 환경주의)’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