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뱅킹 도입 6개월 만에 2000만 명 가입, 8월 ‘마이데이터’ 도입 땐 금융권 경쟁 본격화
정주원 기자
입력 : 2020.07.29 15:07:34
수정 : 2020.07.29 15:08:20
올해 금융의 화두는 단연 개방과 혁신이다. 지난해 말 ‘오픈뱅킹’을 시작으로 올해 8월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마이데이터 산업’ 등은 기존 금융사 간, 금융업권의 벽을 허물고 고객 데이터 활용을 고도화하는 첫발이다. 올 한 해 금융 시장에선 데이터 개방을 통해 기존에 없던, 전보다 편한 금융 서비스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소비자 편의성이 어떤 식으로 높아질지는 지난 6개월간의 오픈뱅킹 운영성과에서 엿볼 수 있다.
▶오픈뱅킹이 뭐길래
국내에 도입된 오픈뱅킹은 은행 등 금융사가 제공하는 핵심 금융 서비스를 표준화된 개방형 API로 제공하는 기반 시스템을 말한다. 고객의 금융 정보를 기성 금융사가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금융업에 진입하기가 어렵다보니, 오픈 API로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게끔 해 금융혁신을 일으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소비자로서도 새로운 혁신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건 여러 은행의 모바일 앱을 일일이 설치하고 접속할 필요 없이, 가장 편한 앱 하나를 골라 계좌 조회·이체 등의 기본적인 은행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픈 API는 앞서 도입된 영국에서도 조회 업무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이체 업무까지 구현해냈다.
지난해 12월 핀테크 업체를 포함한 전면시행이 이뤄지면서 오픈뱅킹은 하루 평균 659만 건의 API가 이용되는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0월 은행권만을 대상으로 한 시범 실시 기간까지 포함한 누적 건수는 10억5000만 건에 달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2월 도입 이후 6월 말 기준으로 오픈뱅킹에 등록된 계좌 수는 누적 6588만 좌, 가입자 수는 누적 4096만 명으로 집계됐다. 중복 집계된 수를 제외하면 가입자는 2032만 명이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올해 5월 기준으로 국내 경제활동인구가 2821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약 72%가 오픈뱅킹에 등록했다”며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이 오픈뱅킹을 경험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이용자 증가 속도는 우리나라 오픈뱅킹의 본보기가 된 영국 오픈뱅킹과 비교해도 확연히 빠르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영국은 조회 API를 2018년 1월부터 개방했는데, 일평균 API 이용이 650만 건에 도달하기까지 1년 8개월여가 걸렸다는 것이다.
오픈뱅킹 서비스에 참여하는 금융사도 대폭 늘었다. 첫 시행 당시 18개 은행을 포함해 총 47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6월 말 현재 참여 기관은 72곳에 달한다. 현재 서비스를 실시하는 곳은 은행들 외에도 토스·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 대형 핀테크 업체가 28곳, 중소형 핀테크 사업자가 26곳 등이다. 금융결제원 측은 “현재까지 총 266개 업체가 오픈뱅킹 참여를 신청했고 그 중 190곳이 이용 승인을 받았다”며 “보안·기능 점검을 거쳐 더 많은 업체가 순차적으로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금융사 간 API가 개방되면서 가장 많이 사용된 서비스는 잔액조회와 출금이체였다. 은행에서의 오픈뱅킹 이용과 핀테크에서의 오픈뱅킹 이용은 차이를 보였다. 은행에선 주로 잔액조회(84.5%)와 거래내역조회(8.8%)가 가장 많이 이용된 것으로 나타났고, 핀테크에선 출금이체(82.5%)와 잔액조회(7.5%), 거래내역조회(6.7%) 순이었다. 토스·카카오페이 등 대부분의 핀테크 플랫폼이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 선불 충전한 뒤 간편송금·결제·해외송금 등의 서비스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오픈뱅킹으로 공정경쟁·혁신금융 기반 마련”
이 서비스는 앞서 지난해 2월 ‘금융결제인프라 혁신방안’에서 언급된 이후 본격 도입됐다. 당초 은행의 폐쇄적인 송금·결제망을 오픈 API(표준화된 은행 기술기반) 형태로 핀테크 기업에 개방하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간편송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18개 시중은행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제휴를 맺어야 했고, 고객이 이체를 할 때마다 건당 400~500원의 높은 이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럼에도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수료를 고객에게 전가하지 않고 직접 비용으로 처리해왔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토스와 카카오페이의 연간 펌뱅킹 수수료 부담액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각각 약 600억원, 400억원에 달했다. 고객이 많아질수록 비용은 더 커졌다. 우리나라의 첫 핀테크 플랫폼이자 유일한 금융 분야 유니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 토스가 재무구조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이 수수료 부담이 꼽히기도 했다.
이에 핀테크의 금융 시장 진입을 돕고 금융사 간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오픈뱅킹’이 도입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생·소형 스타트업도 고객 본인 동의만 받으면 특정 핀테크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은행 앱에서 국내 18개 모든 은행 계좌를 연동시킬 수 있다. 핀테크 기업이 부담하던 펌뱅킹 이용료도 10분의 1~2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비용 부담이 줄어든 만큼 토스와 카카오페이는 무료 송금 건수를 확대하거나 고객 혜택을 늘렸다.
실제로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측은 최근 금융결제원 주도로 열린 ‘오픈뱅킹 세미나’에 참석해 “대형 핀테크사들은 오픈뱅킹을 통해 그간 지출해온 비용의 약 3분의 1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누구나 지급결제망에 접근해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고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앱에서 금융자산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토스가 제공하는 간편송금의 최대 95%는 오픈뱅킹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객 뺏고 빼앗기…
대형사 독점 시장 형성 우려도
다만 금융업계에선 오픈뱅킹이 일부 대형 은행과 핀테크 업체로의 고객 쏠림을 부추겨 독과점 시장 형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픈뱅킹 도입 이전엔 ‘주거래 은행’이라는 틀 안에서 금융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창시절 등록금 납부용으로 만든 계좌나 사회초년생 때 월급 통장을 만든 계좌를 계속 이용하면서 은행을 옮기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어차피 대형 은행들에선 차별성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비슷한 상품을 취급하다보니 본인이 비교·선택하기보다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은행을 고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픈뱅킹을 통해 은행 간 장벽이 낮아지면서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이 커지고 이동도 쉬워졌다. 앱 편의성이나 금리에 따라 손쉽게 은행들을 비교할 수 있게 됐고, 예금 잔액을 옮기는 것도 수월해진 것이다. 은행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차별적인 서비스나 마케팅 혜택도 생겼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은 ‘My자산’ 서비스를 통해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금융업권의 통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탑재했다. 앱을 실행하지 않고 스마트폰 바탕화면에서 앱을 길게 누르는 것만으로 간편이체를 할 수 있는 ‘꾹이체’ 등의 서비스도 개발했다. NH농협은행은 내 금융자산 수준을 연령대별·지역별로 비교할 수 있는 ‘내 금융생활 비교’ 서비스를 담았다. 오픈뱅킹 서비스 개시를 전후해 각종 경품을 지급하는 이벤트도 치열했다.
고객을 뺏고 빼앗기는 오픈뱅킹의 ‘승자’가 누가 될지 예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시행 6개월 차 통계에선 벌써부터 대형 업체로의 쏠림 현상이 일부 확인됐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6월 말까지의 누적 가입자 4096만 명 중 79%에 달하는 3245만여 명이 핀테크 앱을 통해 오픈뱅킹 서비스를 접했다. 은행 앱을 통한 가입자는 21%(약 851만 명)에 그쳤다.
은행 중에서는 신한·KB국민은행 등 대형 은행이 다른 은행들을 압도하는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금융결제원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월 오픈뱅킹 시범 실시 이후 지난 4월 말까지 은행권의 오픈뱅킹 누적 등록자 수는 807만 명에 달했다. 이 중 KB국민은행이 약 260만 명, 신한은행이 약 202만 명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18개 은행 중 2개 은행이 전체의 57% 비중을 차지한 셈이다.
오픈뱅킹을 통한 은행별 누적 순유입액 규모도 신한은행이 1조2171억원, KB국민은행이 5523억원을 기록해 다른 은행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대부분의 은행이 유입과 유출이 비슷한 수준을 보여 순유입액이 0원에 수렴했다. 일부 은행은 유입이 유출보다 많아 순유출액 3862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주도한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센터장은 “은행의 유형별 분류보다도 각 은행의 앱 편의성, 마케팅 등 특성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형 은행의 지난해 평균 원화예수금이 203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오픈뱅킹의 자금 이동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하반기부터 저축은행·증권 등
2금융권도 ‘다 본다’
현재 은행과 핀테크 업체만 참여하고 있는 오픈뱅킹 시스템은 올해 저축은행·상호금융·증권사 등으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서민금융기관 중에는 상호저축은행, 우정사업본부,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중앙회와 새마을금고 등이 포함된다. 금융투자사 중에는 교보증권·대신증권·DB금융투자 등 총 17개 증권사가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7~8월 중으로 참가신청을 접수하고 전산 개발과 관련 규정 개정 등을 거쳐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이들의 오픈뱅킹이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가기관이 이들 2금융권으로 확대될 경우 국내에서 수신 계좌를 보유하는 모든 금융사가 포함된다는 의미가 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전자금융공동망에 있는 이용 가능 예금은 751조8430억원, 2금융권은 222조4310억원이다. 현재 오픈뱅킹이 전체 예금의 77%만 포괄하고 있다면, 2금융권의 참여로 100% 포괄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각 업권에서도 오픈뱅킹에 거는 기대가 크다. 1금융권인 은행에 비해 예·적금 금리가 높고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도 있기 때문에 다른 업권의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영업 방식에만 젖어있던 업권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다만 경쟁력을 갖춘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사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리기도 한다. 고객 자금의 변동성을 키운다는 점, 업권 간 경쟁 심화로 각종 이자·수수료 수익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정인철 신협중앙회 디지털금융본부장은 “개방·혁신은 필연적으로 경쟁 강화, 비용 증가를 수반하게 되고 고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 본부장은 “상호금융은 높은 금리 특성상 시중은행에 비해 고객이 목돈을 예치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기존 자금의 유출 위험보다는 신규 자금 유치 기회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밖에 카드업계도 업권 간, 금융사 간 고객 쟁탈전이 치열한 만큼 오픈뱅킹 진입을 희망하고 있어 계속해서 참여 업권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6월 2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진짜 무대는 8월 마이데이터
금융권 무한경쟁 돌입
오픈뱅킹으로 모든 업권의 경쟁 열기가 달아오르고 소비자의 편의성도 높아졌지만, 본격 경쟁은 올해 8월 ‘마이데이터 산업’이 도입되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데이터 산업이란 여러 금융사에 분산돼 있는 개인의 금융 정보를 일괄 수집해서 알기 쉽게 통합·분석해 제공하는 서비스업을 말한다. 8월부터 개정 신용정보법 시행으로 마이데이터 산업이 새롭게 도입되면 금융사와 핀테크, 포털, 유통사 등 다양한 고객의 결제·신용 정보를 보유한 업권이 마이데이터 사업자 신청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데이터 사업 도입 이전에는 소비자 개인이 정보의 주인임에도 관련 정보를 대형 금융사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데이터 산업이 활성화되면 일반 대중도 간편하게 통합 자산관리, 맞춤형 금융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정보 활용이 고도화될 경우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이용돼 사생활이 침해당하거나 사기업 이윤 추구에 활용될 수 있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해킹 등 사이버 범죄 증가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금융정책 당국 측은 “오히려 개인이 자기 정보를 관리·통제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존의 소극적인 정보보호 방식으로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마이데이터는 금융소비자의 자기 데이터 관리·활용을 지원하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