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지난달 마포 아파트 두 채를 팔고 서울 방배동 재개발 입주권을 15억원에 매수했다. 자신이 살 집은 전세대출을 받아 해결할 예정이다. 지난 연말 발표된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는 전세대출이 금지되지만 ‘분양권(입주권)’은 예외인 덕분에 입주권에 투자할 수 있었다. 좋은 점은 또 있었다. 이 입주권은 이주비 대출도 나온다. 12·16 대책은 초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을 금지했지만, 정책 발표 이전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주비 대출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다 쓴다는 뜻으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동원했다는 뜻)’하느라 자금 사정이 빠듯하다. 감정가의 40%까지 되는 이주비 대출이 나오면 그걸로 조금 숨통이 트인다”면서 “초고가 주택 대출 규제가 강력하지만 분양권과 입주권은 예외여서 오히려 여기에 투자할 기회”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신촌그랑자이 아파트 단지 전경
15억원 초과 고가 주택 대출을 금지하고, 9억원 초과 집을 보유한 소유자들의 전세대출을 금지한 12·16 대책 직후 서울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빙하기’ 속에서도 규제의 틈새를 찾아 과감히 투자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분양권과 입주권이 대출 규제에서 제외된 점을 활용해서 입주권에 투자한 뒤 전셋집으로 옮기거나, 조정기 때 나오는 ‘급매’를 잡기 위해 월세살이를 감수하기도 한다. ‘극한의 재테크’ 현상 뒤에는 조정기 후 상승장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12·16 대책 이후 빙하기에 돌입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9월 6997건에서 10월 1만1515건, 11월 1만1479건으로 1만건 이상을 기록하다가 12·16 대책이 발표된 12월 7532건, 지난 1월 1439건으로 급감했다.
부동산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분석(1월 30일 기준)한 결과인데, 부동산 거래 신고가 매매계약 체결 후 60일 이내에 이뤄져 12월과 1월은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매매가 있다고 감안하더라도 거래량이 감소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9억원 이상 아파트 거래량이 급감했다. 고가 주택이 많은 강남구는 전체 매매 거래 중에 9억원 이상 매매의 비율이 지난해 9월 91%였으나 12월 79%로 줄더니 지난달은 69%로 내려앉았다. 송파구도 9억원 이상 비율이 지난해 9월~11월만 하더라도 64~67%대였지만, 지난달 46%대로 급감했다. 9억원 초과 대출 한도 축소와 15억원 이상 대출 금지 제한이 타격을 줬다.
▶분양권·입주권 상태에선 주택 보유로
간주하지 않아
그러나 이러한 대출 규제에도 입주권·분양권 투자는 인기다. 초강력 대출 금지 규제를 빗겨나 있어서다. 12·16 대책은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의 전세대출도 제한한다. 향후 고가주택을 취득하면 전세대출금을 즉각 반납해야 하고, 정부로부터 적발 시 2주 내 반납해야 한다.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 전세를 살고 있는 경우는 전세금 증액 시 대출 연장도 안 된다. 유례없는 초강력 규제다.
그러나 분양권과 입주권은 이러한 대출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가 발표한 ‘전세대출 관련 조치’는 “주택 매매계약만 체결됐거나 분양권·입주권 상태라면 실제 주택 취득 전까지 주택 매입이나 보유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9억원 넘는 분양권·입주권이 있더라도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하고, 분양권을 2개 이상 보유하더라도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택을 두 채 이상 소유하게 되거나, 9억원 넘는 주택을 소유하면 전세대출을 즉각 회수해야 한다.
이 같은 ‘구멍’이 알려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분양권·입주권이야말로 아무런 규제가 없다”며 ‘영끌’해서 분양권을 사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신축이야말로 시세상승이 확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새 아파트 선호현상도 한몫
실제 신축 아파트는 공급이 줄고,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몸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분양 당시 공급했던 가격에 비해 3~4년 뒤 입주 시점에는 50%가량 가격이 오른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직방이 전국 입주 1년 미만 아파트의 분양가와 매매가를 비교 분석한 결과, 신축 아파트 매매가는 분양가보다 평균 10% 이상 높게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1년 이내 입주한 전국 아파트의 매매거래가격은 분양가와 비교해 6812만원(12.73%) 높게 거래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직방이 지난해 하반기(6~12월) 기준 입주 1년 미만 아파트 단지를 추린 뒤, 그 아파트의 분양가와 매매가를 비교한 결과다. 매매가는 2월 8일 기준 한 달 평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로 차액을 계산했다.
수도권으로만 추리면 상승폭은 더 컸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수도권 입주 1년 미만 아파트의 매매가는 분양가에 비해 1억2857만원, 20.22% 상승했다. 금액으로만 보면 서울 입주 1년 미만 아파트들은 3억7319만원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다. 예를 들어 2016년 분양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센트럴아이파크는 전용 84㎡가 공급 당시 5억9000만원이었지만, 지난해 10월 10억5500만원에 거래됐다. 3년 만에 4억6500만원(78%가량) 상승한 것이다.
강남 아파트는 상승폭이 두 배(100%)로 뛰기도 했다. 같은 해 분양한 개포 래미안블레스티지는 전용 59㎡형의 경우 9억2900만~10억4900만원이었지만, 현재 19억~20억원이다.
2월 서울에서 입주를 시작하는 아파트들은 분양 시점 대비 최소 10억원의 시세차익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5억원에 분양했던 아파트는 공급가의 두 배로 프리미엄이 붙었다. 2월 21일 입주하는 신촌그랑자이는 2016년 분양 당시 전용면적 59㎡가 5억8000만~6억3000만원이었는데, 현재 시장에는 14억~15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이달 입주를 앞둔 고덕아르테온도 분양가 대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예를 들어 전용 59㎡는 분양 당시 5억9000만~6억3000만원에 공급됐지만 현재는 11억~13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2017년 입주자 모집공고를 한 이 단지는 소유권 이전 등기 때까지 전매제한을 적용받아 일반분양 물량은 거래할 수 없다. 2017년 6·19 대책으로 정부는 서울 전역 새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전면 금지했다. 현재 시장에 나온 물건은 10년 보유·1년 거주 요건을 갖춘 조합원 물량이다.
개포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신축 아파트 공급이 위축되면서 이제 막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가 더 희소해졌다. 앞으로 강남은 각종 규제로 재건축도 막혀서 가격 상승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초구 방배동 연립·다세대 등 주택지역의 모습
▶‘급매 줍줍’도 투자자들 사이 주목
각종 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오히려 이런 규제로 인해 집을 빨리 처분하려는 ‘급매’가 나올 때 이를 낚아채는 ‘급매 줍줍’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성수역 인근 아파트에 살던 직장인 B씨(49)는 지난달 아파트를 처분하고 가족을 데리고 월세방으로 이사했다. 잘 살던 집을 처분한 이유는 ‘급매’를 잡기 위해서다. 2016년만 해도 6억원 하던 아파트는 12억원까지 올랐다. 대출을 제하고 그동안 모은 돈과 집을 처분한 돈을 모아 보니 10억원 정도가 됐다.
B씨는 “송파 쪽이나 성수동 쪽 신축 대형 평수를 알아보고 있다”면서 “급매를 잡기 위해서는 한두 달 월세살이는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 가족들도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1억~2억원 아낄 수 있다고 하니 월세살이에 동의했다”고 했다.
직장인 C씨도 월세살이가 예정돼 있다. 최근 내년 입주하는 신축 아파트 조합원 입주권을 매수해서다. 계약금 3억원은 모아둔 돈으로 마련했다. 잔금은 내년 입주 때 치를 예정인데,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놨다. 입주 전까지 시간이 넉넉해 아파트를 매도한 뒤 월세로 살며 입주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다.
C씨는 “오히려 급하게 집을 내놓으면 제값을 못 받는데 잔금 때까지 시간이 넉넉해서 제값에 집을 팔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두 배가량 올라서 이걸 팔고 강남 신축 아파트 잔금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1년 정도 참고 월세살이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고가 주택 대출이 축소됐지만 서울 전셋값은 올라 오히려 ‘갭투자’를 이용해 강남으로 갈아타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장인 D씨는 지난달 서울 마포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도곡동 14년 차 준신축 아파트를 16억원에 매수했다. 15억원 이상이어서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하지만 상관없었다. 전세 6억원가량이 들어가 있어 실투자 비용은 10억원가량이었다. 아파트 매도금으로 잔금을 치르고 자신은 근처 구축 아파트에서 월세살이를 시작했다. 자금이 빠듯하지만 올해 하반기 도곡동 아파트 전세 기간이 만료되면 전세금을 올려 부족한 자금을 융통할 계획이다. D씨는 “아이 때문에 강남에 진입해야 한다고는 생각했는데 조정기 때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서 “학군지여서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은행 대출보다 낫다”고 했다.
대치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거래가 감소한 곳은 많지만 1억~2억씩 낮춘 급매는 뜸하게 팔려나가는 편”이라면서 “상승장 때는 강남 집값이 무섭게 오르니 조정장 때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슬슬 생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