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등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구입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조치했다. 같은 지역에서 시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살 경우 대출금액이 크게 줄어드는 등 주택 가격별 ‘핀셋 규제’도 강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전반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번 대책을 통해 18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특히 이번엔 1주택 실수요자까지 사정권에 넣을 정도로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 나서 아예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이 오를 만한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에 내놓은 대책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대출 규제다. 15억원 초과 주택의 경우 개인, 임대사업자, 법인 등 대상을 막론하고 목적이 주택 구입이라면 아예 대출이 금지된다.
또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9억원 이하인 경우 기존대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 적용하지만 9억원 초과분에는 20%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14억원짜리 주택을 살 경우 9억원까지 LTV가 40% 적용되고 나머지 5억원에는 20%가 적용된다.
이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14억원짜리 아파트에 대해 은행에서 5억6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 대책 이후로는 4억6000만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1억원가량 축소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주택가격이 15억원이라면 LTV 규제가 40%에서 평균 32%로 강화돼 대출 가능 금액이 1억2000만원가량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는 실수요자라고 하더라도 빚을 내서 서울 고가 주택을 사는 길을 막겠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에 대한 규제도 함께 도입돼 대출 문턱은 대폭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신용대출로 쏠리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 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 받은 경우엔 해당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은행권은 40%, 비은행권은 60%로 제한된다. 그동안은 DSR 40%를 초과해도 상환능력이 있음을 확인하면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막히게 된다.
직접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 받는 것도 힘들어졌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주택세대가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하는 기간을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1년 안에 전입까지 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무주택자인 경우에도 고가주택을 구입하면 기존엔 2년 내 전입하면 됐지만 이제 1년 내 전입해야 한다. 고가 주택의 기준도 공시가격 9억원(시가로 약 13억원)에서 시가 9억원으로 낮췄다.
이 같은 대책 직전인 지난해 12월에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전세자금 수요 지속과 서울 아파트 매매량 증가 등 대출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1월 전세 및 주택 등 부동산 계약 건이 통계에 포함됐는데, 이후 시차를 보이며 대출이 실행된 점을 감안하면 12·16 부동산 대출 규제 영향은 사실상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의 ‘2019년 12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작년 12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전월보다 5조6000억원(7.6%) 증가했다. 증가폭은 12월 기준으로 2015년(6조2000억원) 이후 가장 컸다. 12월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월별 기준으로도 2016년 8월(6조1000억원) 이후 3년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증가율(7.5%)도 2017년 10월(7.8%)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높다.
한은은 “전세자금 수요 지속과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10월, 11월 등 2개월 연속 1만 호를 넘어섰다. 다만 여기에는 안심전환대출 시행으로 비은행권에서 은행권으로 넘어온 ‘대출 갈아타기’ 몫 9000억원이 포함됐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로 일반신용대출과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대출) 등 기타대출도 늘었다. 12월 기타대출은 1조5000억원 늘어 1년 전(5000억원)보다 3배 이상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작년 한 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45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55조8000억원, 2017년 37조2000억원으로 하향세를 보이다 2018년(37조8000억원)부터 증가세로 전환됐다.
그동안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워낙 강하다 보니 전세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고가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들의 전세대출 수요까지 막으면서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1주택자들이 서울시 내에서 학군을 따라 이동하는 수요들도 규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전세대출 규제는 보유 주택 수와 연소득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보유 주택 수는 부부 합산으로 계산하는데 무주택자, 1주택자, 다주택자로 구분할 수 있다. 1주택자는 시가 9억원 초과 고가 주택과 9억원 이하 비고가 주택으로 나눈다. 연소득 기준은 부부 합산 1억원 초과를 고소득자로 보고 1억원 이하는 중·저소득자로 분류한다. 여기서 다주택자는 전세보증 길이 모두 막혔다.
1주택자 중에서는 고소득자 공적보증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작년 10·1 부동산 대책에서는 시가 9억원 초과 1주택자도 공적보증이 제한됐다. 여기에 이번 12·16 대책으로 사적보증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시가 9억원 초과 1주택자는 어디서도 전세보증을 받지 못하게 됐다.
반대로 무주택자는 모든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다. 소득이 부부 합산 1억원을 초과해도 공적·사적보증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무주택자는 전세보증금의 80%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세대출 규제의 타깃은 ‘갭 투자’다. 전세대출을 쓰면서 전세 낀 시가 9억원 넘는 집을 샀거나 사려는 사람이 대상이다. 이들은 이번 대책으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대출 규제에서 제외되는 대상은 제도 시행일인 1월 20일 이전에 전세대출을 이용한 경우다. 이들은 전세대출 만기에 대출보증을 계속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전셋집에서 새로운 전셋집으로 이사하거나 전세대출을 증액하는 경우 신규 대출로 간주돼 전세대출 금지 대상이 된다.
9억원 초과 집을 보유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전세대출을 받기 어려워졌다. 이사도 불가능하다. 보유 주택 가격이 9억원 미만 집이라도 앞으로 9억원을 넘어서면 전세보증 만기에 연장이 거절된다.
단 정부가 인정한 몇 가지 실수요 예외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보유 주택과 전세를 사는 집에 가족이 나눠 거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서로 증빙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직장 이동이다. 다만 전셋집과 자가 보유 집 모두 실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자가 보유 집을 전세로 주고 모든 가족이 전셋집으로 이사 간다면 전세대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방에서 자가 보유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데 자녀가 서울로 진학한 경우(자녀 교육)도 예외로 인정된다. 이 같은 학군 수요 이전에 따른 예외 사례 역시 제한이 있다. 보유 주택 지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세 수요만 예외 사례로 인정한다. 그 기준은 시군이다. 서울시나 광역시 내 구별 이동은 인정되지 않는다. 즉 서울 마포구에 집을 보유한 사람이 자녀 교육을 이유로 강남구에 있는 집을 전세로 얻는 경우 실수요 이주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서울 내 이동은 전세대출 대상이 아니다.
강력한 규제에 따라 풍선효과로 P2P(대출자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대출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한국P2P금융협회 등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주택 매매 목적의 대출 취급 금지에 관한 자율규제안’을 발표했으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P2P 업체를 규제할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대출규제 관련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Q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전혀 불가능한가.
A 주택구입목적인 경우에는 전면 금지된다. 가계의 경우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는 연간 1억원 한도 이내에서 대출 받을 수 있다. 사업자라면 사업운영자금 마련 목적 주담대는 기존 LTV 규제범위(투기지역 40%)로 받을 수 있다.
Q 매도자와 계약을 맺고 최종 잔금을 지급하는 시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 기간 중 KB부동산 시세나 한국감정원 시세가 변동해 15억원을 초과할 가능성도 있다. 대출 가능 여부는 어느 시점의 시세를 기준으로 정해지나.
A 대출 가능 여부는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이에 주택을 계약하는 시점에 금융회사에 대출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아파트 구입 계약을 맺을 당시 가격이 14억5000만원이었으나 실제 잔금을 치르는 시점에 15억1000만원으로 시세가 올랐다고 가정하면, 계약을 맺을 때 대출을 신청하면 14억5000만원으로 인정돼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잔금을 치르는 시점에 대출 신청을 하면 시세 15억1000만원이 적용돼 대출을 받지 못한다. 시세는 KB나 한국감정원 중 높은 가격이 기준이 되며 통상 KB 시세가 더 높은 경우가 많다.
Q 9억원에 분양권을 받았다. 입주 시점에 시세는 16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을 받는 것이 가능한가.
A 분양 모집자 공고일이 제도 시행일인 이달 17일 이전이라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중도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모두 LTV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모집자 공고일이 제도 시행 이후이고, 분양가격이 15억원을 초과한다면 중도금 대출까지는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잔금 지급 시점에는 대출이 어려울 수 있다.
Q 1주택자로서 소유 중인 9억원 초과 주택은 전세를 주고, 다른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이 경우 전세대출 연장이 가능한가.
A 가능하다. 대책 발표 이전에 전세자금대출 계약 건에 대해서는 이번 대책에서 언급된 규제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에 받았던 전세대출의 만기를 연장하는 것은 문제없이 가능하다. 다만 이 사람이 현재 사는 집에서 다시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가게 됐을 때 새로 전세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Q 9억원 초과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앞두고 있고, 현재는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를 산다. 이 경우 전세자금대출은 언제 상환해야 하는가.
A 아파트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에 달려 있다. 분양권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아파트가 현재 공사 중이라면 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무주택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세대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만약 공사를 마치고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면 그때부터는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친다.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는 전세대출을 상환해야 한다.
Q 기존에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있는데 DSR까지 적용하는 이유는.
A DTI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액만 따지지만 DSR는 소득 대비 모든 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이 얼마인지를 따진다.
따라서 DSR를 개별 차주에까지 적용하면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대출을 끌어 써서 주택구입에 활용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Q DSR 관리강화로 실제 대출이 얼마나 줄어드나.
A 차주(돈 빌리는 사람)에 따라 효과는 다르다. 만약 연소득이 1억원이고 신용대출을 1억5000만원 보유했다면, DTI 40%만 적용하면 현재는 총 7억1000만원(신용 1억5000만원, 주담대 5억6000만원)의 대출이 가능하지만, DSR 40%를 상한으로 두면 4억7000만원(신용 1억5000만원, 주담대 3억2000만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대출한도가 3분의 2로 줄어든다.
Q 경기도 판교에 시가 11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보유했다. 부부 모두 회사가 강남에 있고 아이들 학군을 고려해 서울 강남구에 2020년 3월 전세로 들어가려는 계획이 있다. 이 경우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가.
A 불가능하다.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 등 실수요로 보유 주택 소재 시군을 벗어나 전셋집에 거주해야 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전셋집과 보유 주택 모두 실거주해야 한다. 부부와 아이들 모두 전셋집으로 옮기는 경우 대출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