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 모 씨(28)는 최근 자투리 돈을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다. 편의점에서 토스카드로 물건을 살 때 1000원 미만 잔돈이 생기면 은행 계좌에 쌓인다. 푼돈이지만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 씨는 “혼자 살아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다 보니 한 달 새 2만원 넘게 모았다”며 “적은 돈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생각으로 재테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토스카드는 핀테크 업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서비스로, 돈을 사이버 머니인 ‘토스머니’로 충전해 사용하는 카드다.
최근 푼돈을 차곡차곡 모아 저축이나 투자를 하는 ‘잔돈금융’ ‘짠테크’가 인기다. 초저금리에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재테크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다. 목돈이 없는 2030 사회초년생이나 푼돈을 아끼려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재테크 인터넷 카페엔 ‘토스카드로 돈 버는 법’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 비법’ 등이 속속 올라온다. 금융회사부터 핀테크 업체까지 다양한 소액 적금·투자 상품을 선보이며 짠테크족을 모으고 있다. 과거엔 100원, 200원 잔돈을 직접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면 이젠 ‘디지털 돼지 저금통’에 넣는 시대인 셈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잔돈금융이 인기를 끌었다.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핀테크 업체 ‘에이콘스(Acorns)’는 2012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에이콘스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결된 신용카드 고객의 자투리 돈을 자동으로 저축해준다. 예를 들어 고객이 1만2500원짜리 물건을 구매했다면 1만3000원의 남은 돈 500원을 자동 저축하는 식이다. 에이콘스는 서비스에 따라 월 1~3달러 이용료를 받고 온라인 쇼핑 ‘캐시백’ 금액을 투자 계좌로 입금해주기도 한다.
콰피털(Qapital), 레볼루트(Revolut), 코인스(Qoins) 등 여러 핀테크 업체도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국의 콰피털앱은 고객이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소액을 자동 저축해준다. 예를 들어 점포별로 목표 예산을 정한 뒤 예산보다 돈을 적게 쓰면 남은 돈을 저축할 수 있다. 애플의 운동 관리 앱과 연동해 일정 목표를 달성하면 자동 저축해준다. 미국의 코인스는 잔돈이나 기간별 자동 적립으로 모은 금액으로 고객 신용·학자금 대출 등 빚을 갚아준다. 기존 업체처럼 저축·투자가 아닌 빚 상환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다. 영국의 레볼루트 앱은 잔돈을 이용해 가상화폐 투자가 가능하다.
‘KB라떼 연금저축펀드’
미국에선 금융위기 이후 경제활동을 시작해 목돈을 모으기 어려운 젊은 세대가 잔돈금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장명현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금융위기 후 경제 활동을 시작한 미국 청년층은 과거 세대에 비해 낮은 소득과 강화된 금융규제, 학자금 대출 등으로 투자나 저축에 소극적이었다”며 “잔돈금융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저렴하고 간편한 서비스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토스가 물건을 구매한 뒤 1000원 미만 잔돈을 토스머니 계좌에 저축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토스카드로 4700원을 결제하면 300원은 저축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이달 내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에서 토스카드로 결제하면 결제금액의 10%를 캐시백으로 준다. 지난 7월 말 기준 토스카드는 100만 장 이상 발급됐고, 25만 명 넘는 고객이 사용하고 있다.
핀크가 선보인 ‘습관 적금’은 소비패턴에 따라 결제금액의 일정 비율을 자동 저금해준다. 카페, 쇼핑, 편의점, 치킨집, 빵집, 패스트푸드점 등 총 6가지 분야에서 결제금액의 5~50%를 정해 저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커피 영역을 선택하고 저축금액을 커피 결제금액의 10%로 설정했다면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자동으로 500원이 적립된다.
티끌은 카드 결제 뒤 남은 돈을 일주일 동안 모아 미래에셋대우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준다.
핀테크 업체 우디는 외화 잔돈을 포인트로 바꿔주는 ‘버디코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환전이 어려운 외국환 잔돈을 포인트로 바꿔주는 서비스다. 버디코인 키오스크에 외화 잔돈을 넣고 QR코드가 찍힌 영수증을 받은 뒤 모바일 앱으로 스캔하면 포인트가 쌓인다. 적립한 포인트는 스타벅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모바일 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홍콩, 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가 외화 잔돈을 포인트로 바꿀 수 있다. 수수료도 20% 내외로 시중은행보다 저렴하다.
▶금융사도 너도나도 ‘잔돈 재테크’
금융사들도 경쟁적으로 푼돈을 모으는 ‘잔돈 재테크’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모바일뱅킹 앱 ‘쏠(SOL)’ 전용 상품인 ‘쏠편한 작심3일 적금’을 출시했다. 일반적인 적금 형태에서 벗어나 요일별·소액 자동이체, 6개월 만기로 상품을 만들었다. 자유적립식이지만 고객이 최대 3개 요일을 정해서 자동이체를 할 수 있다. 등록 요일 수에 따라 우대금리가 0.1%포인트씩 더해져 3개 요일을 정하면 최대 0.3%포인트 우대금리를 받는다. 월 저축한도는 최대 50만원으로 짧은 만기라 부담이 적다. KB국민은행이 선보인 ‘KB굿플랜적금’은 KB국민 굿플랜 신용·체크카드 이용금액의 20%를 카드 결제 계좌에서 적금 계좌로 저축하는 상품이다. 쌓인 카드 포인트 일부도 적금 계좌로 모인다. 모바일 전용 연금상품 ‘KB라떼 연금저축펀드’도 눈길을 끈다. 커피 한 잔 값을 절약해 노후를 위한 목돈을 마련하는 이른바 ‘카페라테 효과’를 바탕으로 설계한 상품이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에서 라떼연금 커피 아이콘을 누르면 5000원이 자동으로 저축된다. 1년에 182만원, 30년간 꾸준히 모으면 약 8000만원이 모인다. 은퇴한 뒤 투자수익률을 3%로 가정했을 때 월 77만원을 10년간 받을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IBK기업은행의 ‘평생설계저금통’도 신용·체크카드 결제 때 설정금액이나 1만원 미만 잔돈을 결제 계좌에서 적금·펀드로 자동 이체해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하루 3회 카드 결제 때마다 3000원씩 자유적립식 펀드에 적립하기로 하면, 9000원이 카드 결제 계좌에서 펀드 계좌로 입금된다. 국민은행의 ‘KB Smart폰 적금’도 꾸준히 인기를 끈다. 모바일뱅킹 앱 적금 화면에서 커피나 택시 등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금액이 자동으로 저축되는 상품이다.
KEB하나은행의 ‘오늘은 얼마니? 적금’은 재미와 재테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매일 하루에 한 번 휴대전화로 ‘오늘은 얼마니? 얼마를 저축하시겠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얼마를 저축할지 답장만 하면 자동으로 저금된다. 별도 인증 절차는 필요 없다. 특히 ‘금연’ ‘하루에 커피 한 잔 줄이기’ 등 목표를 정하면 ‘금연을 위해 오늘은 얼마를 저축하시겠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3년 가입 시 최대 금리는 연 2.60%다.
쏠편한 작심3일 적금
우리은행 ‘위비 꾹 적금’은 상품 가입 때 ‘다짐 목표’를 정하고 소액을 추가로 저금한다. 예를 들어 ‘금연’을 목표로 정했다면 매일 다짐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푸시 메시지가 휴대전화로 발송된다. 고객이 다짐 목표에 성공하면 1만원, 실패하면 5000원씩 자동 저축된다.
카카오뱅크의 ‘26주 적금’ 상품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금액을 일정 수준 늘려 저축한다. 1000원, 2000원, 3000원 중 고객이 선택한 금액마다 매주 증액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1000원을 선택했다면 2주 차에 2000원, 3주 차에 3000원씩 넣다가 마지막 주차에 2만6000원을 입금하는 방식이다. 월 최대 납입액은 300만원이다. 납입액이 적어 이자가 높진 않지만 납입할 때마다 카카오 캐릭터인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쌓인다. 2030 고객들은 캐릭터를 모으는 재미에 차곡차곡 저축해나간다. 재테크 카페엔 매주 입금액을 인증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KDB산업은행의 ‘데일리플러스 자유적금’도 고금리 상품으로 눈길을 끈다. 체크카드 결제 시 설정한 단위 미만 자투리 금액을 자동으로 적립하는 적금이다. 예를 들어 자투리 적립 금액을 1000원으로 설정했다면 체크카드로 5800원을 결제하면 계좌에선 6000원이 나간다. 남은 200원은 적금 계좌로 자동 적립된다. 만기는 1~3년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금리는 3년 기준 최고 연 4.10%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 상품도 짠테크족이 관심을 가질만하다. 웰컴저축은행의 ‘잔돈모아올림 적금’은 적금계좌와 입출금 통장을 연결하고 저축할 잔돈 금액을 정한다. 예를 들어 저축할 잔돈을 ‘1만원 미만’으로 정했다고 가정해보자. 입출금 통장에 25만4321원이 있으면 1만원 미만인 4321원이 자동으로 저축된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만기 때 세후 원리금을 1만원 단위로 받을 수 있다. 예컨대 만기 때 세후 원리금이 120만5300원이라면 1000원 단위를 올려 121만원을 받는 것이다. 금리는 만기 2년 기준 3.0%다.
자투리 돈을 모아서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비스도 곧 출시된다. 신한카드와 신한금융투자는 이르면 올해 안에 신용카드 고객 카드 결제 자투리 돈을 모아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비스를 내놓는다. 이 서비스는 7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다. 신한카드·신한금투는 카드 결제 시 남은 돈이 생길 때마다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맞춤형 해외 주식을 추천해준다. 고객은 0.01주 단위로 아마존, 애플, 나이키 등 해외 유명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투리 투자금액을 1000원 미만으로 정하면 48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남는 돈 200원을 투자하는 셈이다.
카카오뱅크 ‘26주 적금’
▶걷고 퀴즈 풀고 ‘포인트’ 받자
최근엔 ‘앱테크’를 쏠쏠한 재테크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앱을 켜고 퀴즈를 풀거나 운동을 하면 포인트를 받아 이를 현금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푼돈을 모으고 재미까지 얻을 수 있어 젊은 세대에서 인기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상시 노출형’이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뜨는 광고나 콘텐츠를 본 뒤 잠금을 해제하면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다. 캐시슬라이드와 허니스크린 등이 대표적인 앱이다. 특히 2012년 출시된 캐시슬라이드는 다운로드 수 1500만 건에 연 매출 600억원을 달성했다. 전화가 걸려오면 번호가 뜨는 화면에 광고를 노출하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을 돌려주기도 한다. 매일매일 출석하면 적립금을 주는 앱도 있다.
재미로 퀴즈도 풀고 포인트도 얻는 ‘잼라이브’도 눈여겨볼 만하다. 실시간 퀴즈쇼에서 문제를 모두 맞히면 1명당 최대 500만원 상금을 얻을 수 있다. 한 문제만 맞혀도 상금을 받는다. 해당 회차 우승자가 여럿이면 상금을 나눠 가진다. 매일 다양한 스크래치 게임을 진행하는데, 스크래치를 긁으면 노트북이나 항공권 등 상품을 받을 수 있다. 5000원 이상 포인트를 모으면 현금으로 출금 가능하다.
최근엔 토스가 ‘행운퀴즈’로 고객을 끌고 있다. 사용자가 직접 자기 돈으로 상금을 걸고 퀴즈를 공유한다. 특정 시간에 토스 행운퀴즈 답을 맞히면 상금을 토스 계좌로 입금해준다. 운이 좋으면 몇백 원을 얻을 수 있다. 푼돈이지만 토스 행운퀴즈 문제와 정답이 매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한다. KB국민카드 통합 포인트 애플리케이션 ‘리브메이트’는 매일 오후 10시 오늘의 퀴즈를 낸다. 각종 상식부터 역사, 문화 등 분야도 다양하다.
캐시슬라이드
많이 걸을수록 보상이 커지는 ‘만보기’ 앱도 있다. 대표적인 게 캐시워크다. 앱에서 오늘 걸은 거리와 시간, 소비한 칼로리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최대 1만 보, 100캐시를 적립할 수 있다. 월 최대 3100원까지 가능하다. 적립한 포인트로 편의점, 카페, 빵집, 레스토랑 등 전국 수만 개 제휴점 쿠폰을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동영상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영상을 보거나 공유하면서 포인트를 얻는 ‘아잇’도 이용할 만하다. 유튜브 영상을 아잇에서 보면 코인으로 곧바로 적립된다. 보통 영상 1개에 2원꼴이다. 페이스북 등으로 영상을 공유하면 3원이 적립된다. 아이돌 공연은 물론 웹드라마, 예능, 만화, 스포츠 등을 모두 볼 수 있다. ‘1코인=1원’으로 상품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