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법원 경매시장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2월 전국 법원경매 낙찰건수는 관련 통계 집계 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서울을 비롯한 지방 곳곳에서 경매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2월 전국 법원경매 낙찰건수는 2927건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18년 만의 최저치다. 특히 대출 규제가 집중된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낙찰가율 또한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간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의 열기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경매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2월 전국 법원경매 진행건수는 전월보다 2767건 줄어든 8309건으로 최근 1년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중 낙찰건수는 2927건으로 낙찰률이 35%에 불과했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뜻하는 낙찰가율 역시 69.6%로 작년 5월(75.3%) 이후 9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올해 구정 연휴에는 경매가 가장 많이 진행되는 월·화·수요일에 겹쳤고, 더불어 주거시설 경매 진행건수가 전월대비 1205건 감소하면서 전체 진행건수가 급감했다”며 “향후 이러한 경매시장의 한파는 상당기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용도별로 보면 주거시설 낙찰가율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주거시설 낙찰가율은 77.4%로 전월보다 2.5%포인트 떨어졌다. 1년 새 가장 큰 하락폭으로 주거시설 낙찰가율은 9·13 대책이 나온 2018년 9월(86.4%) 이후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토지와 공업시설 낙찰가율은 각각 67.1%, 67.0%로 전월 대비 2.9%포인트씩 하락했다. 업무·상업시설 낙찰가율은 65.3%였다. 전월 대비 6.1%포인트 상승했지만 1년 전보다는 4.2%포인트 하락하며 어려움이 감지됐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경매 진행건수가 가장 많이 감소했다. 2월 수도권 경매 진행건수는 전월 대비 840건(55.0%) 적은 2366건이 진행됐다. 이 중 930건이 낙찰돼 39%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낙찰가율은 전월 대비 2.7%포인트 감소한 72.3%를 기록했다.
▶서울 지역 낙찰가율 하락세 뚜렷
특히 서울 주거시설의 경매 낙찰가율이 전월 대비 5.5%포인트 급감한 88.1%로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9월 103.4%까지 올랐지만 9·13 대책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중간 중간 반등이 이뤄졌지만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막지 못하는 분위기다.
부산과 울산 전체 경매건수를 분석해본 결과 각각 79.9%와 65.5%의 낙찰가율을 기록해 전월 대비 1.4%포인트와 10.9%포인트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각각 6.9%포인트, 16.5%포인트 떨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였다.
특히 2월 부산 주거시설(아파트, 단독주택 등 포함) 낙찰가율은 78.6%로 80% 벽이 무너졌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가의 비율로 월간 부산 주거시설 낙찰가율은 지난 2009년 3월(76.4%) 이후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해운·조선 등 기반산업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울산 아파트 낙찰가율 역시 이달 68.4%로 전달(76.5%) 대비 8%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장기화된 부동산 침체 속에서도 낙찰가율 70%대를 사수해왔던 울산 아파트 경매 시장이 속절없이 무너진 셈이다. 2008년 10월(67.9%) 이후 11년 만의 최저치였다.
서지우 지지옥션 연구원은 “9·13 대책이 발표된 후 6개월가량 지난 현재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 가격 하락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오는 4, 5월에는 공시가격 인상을 통한 보유세 인상이 예고돼 있어 이전 고점의 낙찰가율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연구원은 “영남권 경매 경기가 반등할 것이란 기존 예상과 달리 침체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며 “부동산 경기의 반등 요인을 찾기 어려운 만큼 당분간은 낙찰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년 말부터 본격화됐다. 서울 강남의 대표 아파트 단지로 집값을 이끌어온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가 2년 만에 경매에서 유찰된 것. 부동산 상승기와 맞물려 경매시장에서도 불패 신화를 써온 압구정동 아파트를 대표하는 현대아파트가 흔들리며 강남권에 위기감이 감지됐다.
2018년 12월 26일 진행된 압구정 현대아파트 전용 83㎡ 매물(중앙8계 2018-3138)에 대한 1회차 경매가 유찰됐다. 이로 인해 20억9000만원인 감정가에서 20% 삭감된 16억7200만원에 2차 경매가 진행됐다. 압구정동 소재 아파트에 대한 경매 유찰은 2016년 9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었다. 전문가들은 분위기상 이번 유찰로 낙찰가율 역시 3년 만에 10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경매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실제 1차 유찰 후 낮은 가격에 2차 경매를 시작해도 호황기에는 오히려 처음 감정가를 훌쩍 넘기는 낙찰가도 자주 나온다. 그러나 최근 관망세가 짙어진 부동산시장을 감안하면 2회차 경매에 사람들이 몰리더라도 100%대 낙찰가율이 힘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마지막 100% 이하 낙찰가율 사례는 2015년 7월(낙찰가율 98%)로 약 3년 6개월 전이다. 이 기간에 진행된 21건의 압구정동 아파트 경매를 살펴보면 매각가율은 최소 100%에서 최고 134%를 기록했다. 2016년 11월 압구정동 미성아파트는 감정가보다 4억원 이상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반면 이번 경매는 감정가보다 4억원 이상 낮아진 유찰가에 2차 경매가 진행되며 달라진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경매시장 경색 강남권 전반으로 확산
이러한 경매시장 경색은 강남권 전반으로 확산되며 이상신호를 보였다. 실제 강남구·서초구·송파구를 포함한 강남3구 경매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비슷한 흐름이 감지됐다. 올해 1월 28일 경매에 부쳐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진주아파트 전용면적 81.88㎡ 역시 감정가 13억3000만원에 진행된 1차 경매에서 유찰됐다. 진주아파트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로 사업 추진이 빨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도 피한 단지다. 그러나 최근 매매거래가 끊기며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상 지난해 10월 동일 주택형 2건이 17억5000만원에 팔린 이후 거래 신고가 끊긴 가운데 이러한 유찰까지 나타난 셈이다.
지난 1월 16일 강남구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85㎡는 23억원에 경매가 진행됐으나 응찰자가 없었다. 지난해 9월 27억원에 신고된 것을 끝으로 거래 신고가 없을 정도로 극심한 거래절벽 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경매 시장에서 시세보다 수억원이 싼 매물도 안 팔린 셈이다.
지난해 9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진행된 강남3구 아파트 경매에선 총 68건 중 31건이 낙찰돼 45.6%의 낙찰률과 100.5%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평균 응찰자 수 역시 9·13 대책 이전 9.93명에서 이후 6.84명으로 3분의 1 수준이 줄어들며 얼어붙은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압구정동을 포함한 강남구로 좁혀 봐도 9·13 대책을 전후해 낙찰률은 10%포인트, 낙찰가율은 7%포인트가량 줄어들며 하락폭이 컸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강남권 아파트시장 냉각이 경매시장으로도 점차 확산되면서 당분간 경색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2017년 이후 2년 동안 단 한 번도 유찰되지 않았던 압구정동 아파트가 특수 물건이 아님에도 1회 유찰돼 시장에 나왔다는 것은 서울 아파트 매수 심리가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방증”이라며 “압구정동을 포함해 강남권 전반에 경매시장 매수 관망세가 확산되고 있어 이러한 강남권 유찰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개별 경매건에서 감지된 위기는 연초부터는 시장 전반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경매 평균 응찰자 수는 6년 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바 있다. 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를 의미하는 낙찰률은 두 달 연속 40%에 머무르며 보릿고개를 맞았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 동안 진행된 경매 93건 중 40건이 낙찰돼 1건당 평균 응찰자 수 4.4명을 기록했다. 이는 평균 12.3명을 기록해 최근 1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던 2018년 9월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경매에서 1건당 평균 응찰자가 4명대로 떨어진 것은 2012년 12월(평균 4.7명) 이후 처음이다. 낙찰률 역시 반등이 어려운 분위기다. 작년 12월 41.8%로 직전 달 대비 22%포인트가량 폭락했던 낙찰률은 올해 1월에도 43%에 머물며 서울 아파트 경매 매물 중 절반 이상이 유찰됐다.
집값 하락폭이 가장 큰 강남권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의 1월 한 달간 낙찰률은 26.9%로 7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갱신했다. 이달 진행한 강남권 아파트 경매 26건 중 낙찰된 매물은 7건에 불과했다. 특히 작년 7월에는 낙찰률 100%로 경매에 나온 매물이 전부 소진된 것과 달리 10건 가운데 8건이 유찰되고 있는 셈이다. 강남3구 아파트 1건당 응찰자 역시 4.1명으로 2015년 12월(평균 3.9명) 이후 최저치다. 작년 한 해 동안 성립했던 경매시장 ‘강남불패’ 공식이 무너진 것이다.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 전경
▶대출규제로 식은 분위기 당분간 지속
당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것은 대출규제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강남 부동산을 매수하기 위해선 통상 대출 없이는 힘든데 정부가 거의 봉쇄해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싸늘히 식은 경매시장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균 응찰자와 낙찰률뿐만 아니라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뜻하는 낙찰가율도 100% 밑으로 떨어지며 경매 관련 지표가 전부 악화되기 시작했었다. 작년 11월까지 한 번도 100% 아래로 내려간 적 없던 낙찰가율은 12월 96.2%에 이어 올 1월 97.4%로 두 달 연속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됐다. 강남3구 역시 1월에 전달보다 10%포인트 떨어진 90.8%를 기록했다.
장근석 지지옥션 팀장은 “이런 분위기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면서 “일반 매매시장과 같이 움직이며 심리적 요소가 영향이 큰 만큼 경매시장도 후행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최근 공시가격 현실화 등 세 부담이 커지며 경매를 통한 투자수요가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경매의 최대 장점인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적인 메리트가 크게 상실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불안감이 시장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당분간 경매 시장에서도 일반 거래시장 못지않은 눈치보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지옥션 장근석 팀장은 “통상 경매물건의 감정평가가 입찰 6개월 전에 이뤄져 최근 나오는 물건들은 최근 떨어진 시세와 비교해 별로 낮지 않고, 공시가격 급등 등으로 집값이 추가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유찰이 늘어나는 것 같다”며 “주택에 대한 공시가격 이슈는 4월 말 공동주택 발표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어서 경매시장도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