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급격한 상승세를 목격하며 ‘혹시나’하고 주식시장에 싹튼 기대는 또다시 ‘역시나’ 무너졌다. ‘1월 효과’를 자랑하던 코스피지수는 2300지수를 돌파하는 데 실패하고 다시 2100선에서 횡보 중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여전히 완전한 협상 타결이 요원해보이고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투자 개인기를 믿고 베팅하는 단기 투자보다는 기업의 펀더멘털에 주목하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장기 투자는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가치투자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주식보다는 안정자산으로서의 채권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채권형 주식이 주식투자의 불안함을 덜어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신한BNPP파리바자산운용의 국내 운용 부문 총괄 부사장(CIO)이자 베스트셀러 <왜 채권쟁이들이 주식으로 돈을 잘 벌까>의 저자 서준식 부사장은 이러한 가치 투자를 위해 채권형 주식이란 개념을 꾸준히 알려 가치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해 말엔 이 철학을 그대로 담아 ‘신한BNPP스노우볼인컴증권투자신탁’ 펀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채권형 주식은 워런 버핏이 주로 투자하는 주식 유형으로도 알려져 있다.
▶많은 배당보다 정확한 가치계산이 채권형 주식의 핵심
채권형 주식이란 언뜻 들으면 채권처럼 꼬박꼬박 이자수익(배당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주식 종목으로 들린다. 그러나 배당수익은 채권형 주식의 한 단면일 뿐이다. 서 부사장이 주목하는 것은 채권처럼 향후 기업의 미래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이로 인한 수익률까지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한국증시처럼 경기나 수급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장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 방식이기도 하다.
기업의 주가는 당연하고 미래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봐도 장밋빛 전망이 가득해서 올해보다 내년이나 내후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지 않는 종목은 찾기 힘들다. 비관적인 전망을 견지하더라도 미래의 영업환경과 시장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권형 주식은 미래의 이익이 꾸준하며 변동성이 적어야 한다. 주식의 가치가 채권처럼 정확히 산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큰 부침 없이 꾸준히 상승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투자하는 기업이 채권형 주식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경기민감주나 경기순환주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업종에 환한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5년 안을 내다보기는 힘들다. 조선, 화학, IT, 건설 등이 모두 대표적인 경기민감주다. 워런 버핏은 “순풍보다 역풍에 더 강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 조선업종 경기가 좋을 때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지만 당시 포스코의 주주 중 한 명이었던 버핏이 크게 반대해 무산된 적이 있다. 버핏은 당시 조선업종의 업황이 고꾸라질 것을 전망한 것이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순간 포스코가 경기민감업종에 휘둘리게 돼 채권형 주식으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워런 버핏의 판단이 맞았다.
경기민감주보다는 경기방어주가 채권형 주식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음식료품, 도소매업이 대표적인 예다.
▶설비투자 많이 들어가거나 ROE 변동 큰 기업은 피해야
두 번째로 체크할 점은 대규모 설비 투자비나 연구 개발비가 들지 않는 기업의 주식이다. 이는 지금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크고 계속 성장하더라도 대규모 설비 투자비 때문에 영업이익이 단기간에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소니가 ‘블루레이’처럼 많은 연구비를 들인 기술이 실패로 끝나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 것이 그 예다. 화학, 철강, 반도체 업종 등 거대 장치 산업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거대 설비 투자가 필요한 경우엔 기업의 미래가치를 예측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내가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의 주식이냐는 점이다. 주식의 대가들은 어려운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다. 요즘 뜨는 바이오 업종에 대해 가치투자자가 한사코 외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밸류에이션 판단이나 향후 실적 전망이 어렵기는 하지만 일단은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널리 알려진 투자 대상은 뱅크오브아베리카와 웰스파고, 아메리칸익스프레스 같은 금융회사이며 코카콜라와 크래트프 하인즈(케첩 회사)였다.
애플 투자 전에는 자신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IT종목을 한 주도 들고 있지 않았다. 피터 린치 역시 백화점에 데려간 딸들이 좋아하는 의류 회사의 주식에 투자했다. 잘 아는 회사여야 시장의 부침이나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식이 쌀 때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을 들면 잘 아는 주식은 가치투자의 기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치투자 고수나 전문 펀드들은 보유 주식수를 크게 늘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자기자본 수익률(ROE)을 참조해야 미래의 ROE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형주식에 ROE란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채권형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미래 10년간 평균 ROE를 추정해 이를 바탕으로 순자산가치를 구하는 것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ROE 추이로 미래의 ROE를 추정해 낼 수 있고 이는 곧 그 회사 미래 가치의 증가 속도가 된다.
그런데 만약 ROE가 매우 들쭉날쭉하거나 적자까지 봐서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경우라면 그 기업은 채권형 주식으로서 자격미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치투자자들이 저평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주가순이익(PER),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많이 보기는 하지만 채권형 주식의 판단에는 밸류에이션보다는 ROE만 계산하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조건을 맞춘 주식 종목은 한국에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서준식 신한BNPP자산운용 부사장이 워런 버핏식 채권형 주식 기대수익률의 산정방식을 통해 투자 종목을 뽑아낸다고 알려져 있는 ‘신한BNPP스노우볼인컴증권투자신탁’을 보면 채권형 주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목인지를 알 수 있다. 코리안리, 삼성전자, SK가스, 기업은행,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자산신탁, 선진, DGB금융지주(1월 기준)이다. 물론 이 주식이 영구적으로 채권형 주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채권형 주식으로서 기대수익률이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지난해 펀드를 처음 출시해 종목을 매입하던 시기에 너무 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기업 종목이 ROE의 변동성이 크지 않고 경기를 잘 타지 않는 주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령 DGB금융지주의 경우엔 2012년부터 최근까지 6~12%의 ROE를 유지해왔다. 2016년 ROE가 가장 저조했을 때도 6.6%였다. 이와 같은 추세로 볼 때 신한BNPP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의 향후 10년간 ROE가 7.6%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3분기 기준 주당순가치(BPS)가 2만5000원인데 이 추세로 10년간 성장하면 10년 후 순자산가치는 5만2200원이 된다. 이는 현재 8800원 정도의 가격을 감안할 때 만약 10년간 주식시장이 이 기업의 ROE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면 10년간 6배의 주가 상승을 한다는 말이다. 이는 연간 약 19%의 기대수익률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자산신탁의 기대수익률을 계산해보면 일단 ROE는 최근 10년간 9~31%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1~2013년 ROE가 한자리 수로 떨어진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 3년간은 20%가 넘는 ROE를 기록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업황이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향후 10년간 14%의 ROE 수준에는 도달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주가는 4400원 수준인데 BPS (작년 3월 재무제표 기준)는 5578원이다. 여기에 10년간 연평균 14%의 ROE로 성장한다면 10년 후에 이 기업의 BPS는 2만원이 된다. 그러면 10년간 현재 주가의 4.7배로 성장하는 셈이고 기대수익률은 16.7% 가량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의 기대수익률을 만족시키는 주식이 채권형주식이냐에 대해서는 기준이 다르다. 워런 버핏의 기준은 15%여서 이 기준을 넘어서는 주식에 투자했다. 서 부사장은 삼성전자 같은 대형우량주는 12%, 다른 주식은 15%를 내세웠다.
신한BNPP자산운용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자산신탁의 예상 ROE가 14%, 코리안리 6%, SK가스 6.3%, 나이스정보통신 15% 정도였다.
채권형 주식 계산의 핵심은 미래 ROE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이나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미래 ROE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목표수익률을 재산정하고 주식의 가치를 재산정해야 한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나오는 장밋빛 전망은 일단 거르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ROE 추정이 필요하다.
미래 10년의 예상 ROE만 알면 연 15% 수익률을 내는 주식을 살 수 있는 가격도 알 수 있다. 연 15%로 성장한다면 10년 후 4배가 된다. 즉 순자산이 연 15%의 속도로 계속 증가한다면 10년 후 BPS(현재 BPS에 10년치 ROE의 승수를 곱한 값)에 현재 주가를 나눈 값이 4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기준으로 계산을 하면 연 15%의 목표수익률을 내는 주가 즉 매수를 고려해볼 만한 주가는 DGB금융지주가 1만3000원, 한국자산신탁이 5200원, 코리안리가 2만원, 기업은행은 1만6000원으로 나왔다. 주가가 이 범위 위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미래 ROE를 기반으로 한 펀더멘털상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주가가 급락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저평가에 주목하면 벤저민 그레이엄형
高 ROE 주목하면 피터 린치형
채권형 주식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주식은 아니다. 예상 미래 ROE도 높지만 현재 가격도 높아서 기대수익률이 20%가 넘게 나오는 주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만약 그런 주식이 있더라도 만년 저평가가 아닌가하는 의심도 거둘 수 없다.
서 부사장의 기준에 따르면 채권형 주식 대부분은 예상 ROE는 낮은 편이지만 주가도 순자산 가치보다 꽤 낮은 경우나 주가는 순자산 가치보다 높지만 예상 ROE는 높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벤저민 그레이엄 주식형, 후자는 필립 피셔형 주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레이엄은 순자산 가치 대비 크게 할인된 가격의 자산 저평가주를 선호했고 필립 피셔는 평생 보유할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상 ROE가 높은 주식을 선호했다.
벤저민 그레이엄형 주식의 가치 증가 속도는 높지 않다. 이미 자산 규모는 시총에 비하면 큰 수준이라 PBR는 낮지만 ROE는 높지 않다. 이미 성숙한 저성장 국가나 업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오래 보유할수록 수익률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 종목들과의 상대적인 수익률 비교를 할 때는 더욱 메리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당성향이 높아서 투자자들에게 낮은 주식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는 혜택을 줘야 한다. 왜냐하면 배당금으로 투자자들은 다른 높은 수익률의 투자처에 재투자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수익률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촉매’를 보유한 주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가치투자자들이 쓰는 용어로서의 촉매는 측정된 가치와 괴리가 있는 가격을 재빨리 가치 수준으로 수렴시켜 주는 이벤트다. 인수 및 합병(M&A)이나 유상감자, 보유자산의 재평가 등이 있으면 된다. 가령 삼성광주전자라는 기업은 저평가 상태가 계속되다가 2011년 삼성전자에 합병되는 강력한 이벤트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줬다.
필립 피셔형 주식은 현재 주식 가격은 순자산가치보다 높은 수준이라 저평가 주식은 아니지만 미래 ROE가 높아서 목표 수익률을 충족시키는 주식이다. ROE가 높기 때문에 오래 보유할수록 수익률에는 유리하다. 이 때문에 필립 피셔는 “좋은 주식을 잘 골라 제대로 투자했다면 그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점은 거의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특정 기업이 높은 ROE를 누린다면 패스트 팔로워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니면 파괴적인 혁신 기업들에 의해서 아예 산업의 생태계 자체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ROE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해자가 필요하다. 가치투자의 용어에서 해자란 성 주변을 둘러싼 구덩이나 여기에 물을 채워 만든 연못을 가리키는 말로,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을 계속 방어할 수 있는 브랜드 파워나 시장 독점력 등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