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펀드, 브릭스·베트남 중심으로 수익률 상승곡선... 외부 악재에 휘둘릴 위험 경계해야
홍혜진 기자
입력 : 2019.03.05 13:53:03
수정 : 2019.03.05 13:53:28
신흥국 시장은 올해 들어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는 증시 격언을 몸소 시현하고 있다. 지난 15일 기준 연초 이후 7~8% 상승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브라질 보베스파지수, 러시아 RTS지수를 필두로 지난해 가팔랐던 낙폭을 만회 중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축소’에서 ‘비중확대’로 두 단계 상향했다.
투자자들이 신흥국의 상승세에 주목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낮은 밸류에이션, 양호한 경기 모멘텀, 달러 강세 둔화로 인한 신용여건 개선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협상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보 진전한 점도 신흥국에 호재다. 신흥국 증시는 지난해 3월 본격화한 미중 무역전쟁에 터키·아르헨티나발 통화가치 급락 사태가 겹치면서 급락세를 이어갔지만 금리 부담 완화 등 연말 조성된 반등 재료를 바탕으로 올해 반전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다만 연초 신흥국이 선방한 것은 지난해 워낙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데 따른 기술적 반등 영향이 크다는 신중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신흥국이 지난해 ‘검은 10월’의 아픔을 딛고 올 초 반전 모멘텀을 맞이했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신흥국 투자를 통해 플러스알파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다만 같은 신흥국이라도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나라별로 세분화된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중국, 베트남, 인도, 러시아, 브라질(펀드 총 설정액 순) 등 주요 신흥국 펀드를 지역별로 살펴봤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신흥국은 단연 중국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 설정된 중국 펀드는 166개로 해외 지역별 펀드 가운데 개수가 가장 많다. 총 설정액은 7조3407억원으로 설정액 규모 2위(1조5203억원)인 베트남 펀드의 약 5배에 육박한다. 중국의 성장세를 높게 점친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이 지난 수년간 투입된 결과다.
투자자들과의 바람과 반대로 중국 펀드는 지난해 전 세계 지역별 펀드 중에서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최근 1년간 평균 24% 손실을 봤다.
▶중국 증시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러나 올해 들어 중국 증시가 미중 무역전쟁 완화 분위기와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나면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중국 시장을 돌아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3개월간 중국 펀드로 들어온 자금은 301억원에 달한다. 지난 한 해간 유입금은 322억원으로 중국 증시가 하락세를 걷는 와중에도 반등을 점친 일부 투자자들의 자금이 들어오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차익 실현성 환매가 매수세를 앞질렀다. 최근 일주일과 한 달 새 빠져나간 자금은 각각 119억원, 190억원으로 춘절(2월 4~10일) 연휴를 전후해 투자금 회수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다.
세계 지역별 펀드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이익 실현에 나선 투자자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펀드는 연초 이후 미중 무역전쟁 완화 분위기와 중국 정부의 내수 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평균 13.85% 수익을 올렸다.
중국 경제 지표 둔화 추세가 뚜렷해 상승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경고도 환매세를 부추겼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6%로 199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3대 경제성장 엔진으로 불리는 투자·소비·수출 지표도 동반 악화되고 있다.
올해 중국 증시 상승이 실물경기 지표 개선이 아닌 개선 ‘기대감’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향후 상승흐름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설화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국 증시 상승분은 구체적인 기업 실적 호조가 아닌 무역 분쟁 완화 기대감, 경기 부양책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짚으며 “상반기 발표될 경제지표들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면 차익실현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증시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4월까지 이어질 중국 상장사의 지난해, 올해 1분기 실적발표를 주시한 뒤 투자에 나서는 것이 안전하다는 조언이다.
지난해 말 중국으로 쏠리던 매수세는 올해 들어 베트남으로 방향을 트는 추세다. 연초 이후 베트남으로 몰린 돈은 전체 지역별 펀드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인 254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중국 펀드에서는 27억원, 브라질 펀드에서 40억원이 빠진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흐름은 국내 투자자들이 신흥국 가운데서도 특히 베트남에 거는 기대가 높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 1년으로 시계를 넓혀 보면 유입금은 4707억원에 달한다.
수익률도 최근 플러스 전환했다. 베트남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4.36%로 다른 신흥국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길었던 마이너스 행진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흥국 가운데 다소 뒤처지는 반등세에도 베트남 펀드로 돈이 몰리는 배경에는 베트남 증시가 장기적으로는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한 우량 기업 매각 및 상장, 민영화 속도전을 위한 국가자본관리위원회 (CMSC) 설립, 증권법 개정 등이 베트남 증시의 중장기 모멘텀으로 꼽힌다. 글로벌 무역분쟁의 장기화, 환율과 물가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양호한 내수 성장이 이를 상쇄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이동통신사 모비폰, 우정-통신그룹(VNPT), 아그리뱅크 등 대형 IPO가 예정돼 있다는 점은 외국인 유입세를 견인할 호재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IPO 규모 예상치는 모비폰이 16억1000만달러, VNPT와 아그리뱅크는 각각 10억8500만달러, 12억2500만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빈홈(VHM)과 텍콤뱅크(TCB) 상장 당시 각각 10억원을 웃도는 외국인 자금 유입을 감안하면 올해도 상당한 규모의 외국인 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베트남은 내년 상반기 FTSE 신흥국 지수 편입 유력
내년 상반기 FTSE 신흥국 지수 편입이 유력하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베트남은 현재 프런티어 마켓(신흥국 지수 아래 단계)으로 분류된다. 상위 지수인 신흥국으로 이동하면 외국인 자금 수급 측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국제유가 하락과 베트남 동화가치 하락 가능성, 그리고 베트남 정책금리 인상 등은 베트남 증시 위험 요인으로 거론된다.
과거 베트남 증시가 급락하며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준 전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트남 증시는 지난 2007년 고점을 기록한 뒤 2009년까지 급락했고, 지난해 6월 이후 최근까지 하락세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장기 투자를 전제하고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조언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베트남 투자는 긴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연금계좌를 통한 투자를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투자에 있어서는 대형주 위주의 포트폴리오가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말 기준 VN지수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6.1배로 증시(13.8배)보다 높다”며 “거래대금, 실적 성장성 등을 고려하면 베트남 증시 반등은 대형주의 회복과 동반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신흥국 펀드들이 연초 이후 일제히 짭짤한 수익을 내는 가운데 인도 펀드는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다. 인도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2%다. 금리 인하 효과로 반짝 상승했던 인도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오는 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게 가장 큰 이유다. 국제유가(WTI)가 지난해 12월 말 42달러 선에서 바닥을 찍은 뒤 반등해 55달러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원유 수입 비중이 큰 인도의 재무건전성이 떨어진 영향도 있다. 지난해 글로벌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전반적으로 고평가된 증시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길게 봤을 때는 여전히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책을 늘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인도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기준금리를 지난 7일 6.25%로 0.25%포인트 낮춘 것도 그 일환이다. 통화 기조 역시 ‘세밀한 긴축’에서 ‘중립’으로 완화했다.
브라질 펀드는 지난해 펀드들이 마이너스 수익으로 한 해를 마감할 때 러시아 펀드와 함께 플러스 수익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약 30년 만에 출범한 우파 정권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와 통화가치가 뜀박질한 덕분이다. 브라질 펀드는 최근 1년 사이 8.85% 수익을 냈다. 길게 볼수록 수익률은 높아진다.
지난 2년 수익률은 19.38%, 3년 수익률은 지역별 펀드 가운데 눈에 띄게 높은 123.48%에 달한다. 올초 이후로도 안정적인 흐름(연초 이후 수익률 11.75%)을 보이고 있다.
브라질 펀드의 수익이 높았던 것은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가 1년 새 11%나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친기업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주 요인이다. 브라질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연금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에 나선 데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브라질의 통화가치가 오르면서 환차익이 난 것도 수익률 상승에 일조했다.
물론 브라질 경제의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향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자원 의존도가 높은 브라질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관건은 연금개혁안 통과 여부다. 2017년 세계은행에 따르면 연금은 브라질 정부 지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OECD는 이런 브라질 연금 제도를 두고 “지속 불가능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경제 성장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비대한 연금제도를 개혁해 경제개혁의 실탄을 마련하는 것이 브라질 정부로서는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한 투자은행의 의뢰로 이루어진 연방의원 대상 설문조사에서 압도적 다수(연방하원 82%, 연방상원 89%)가 연금개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연금개혁안 통과는 낙관적인 분위기다.
유가 반등에 힘입어 러시아 펀드도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 연초 이후 러시아 펀드는 11.6% 수익을 올렸다. 러시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기업 절반 이상을 에너지 업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러시아 기업 전반의 이익 전망치를 끌어올려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 등 서방 제재에 대한 내성이 높아진 점도 러시아 투자 매력을 높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 대외채무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불거진 2014년 57%에서 현재 80%까지 상승했다. 향후 몇 달 안에 미국의 추가 제재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제재 부과 대상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용이해지면서 타격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최근 연금개혁으로 재정건전성이 높아진 점과 비석유 부문 수출 실적이 개선세라는 점도 호재다. 무디스는 지난 8일 이 같은 이유를 들어 러시아 신용등급을 기존 Ba1에서 Baa3로 상향 조정했다.
시리아, 우크라이나 이슈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는 있지만 정치적, 지정학적 이슈가 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은 부담이다. 전병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거두지 않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부에 대한 지지가 예전같지 않다는 점은 장기적인 불확실성으로 상존할 것”으로 바라봤다.
베트남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북부 최대 수출 전진기지로 탈바꿈한 박닌성.
▶브릭스 펀드 수익률 꾸준히 상승
중국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 증시에 고루 온기가 퍼지면서 이들 국가에 동시 투자하는 브릭스 펀드의 수익률도 자연히 상승하고 있다. 브릭스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0.3%로 집계됐다.
브릭스는 2001년 당시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짐 오닐이 만든 용어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이 성장하면서 이들이 전 세계 경제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을 반영하기 위해 고안됐다. 신흥국 투자 바람이 불던 2000년대 중반에 집중적으로 생겨난 브릭스 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수익률이 반토막 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용되는 대표적인 브릭스 펀드(설정액 기준)로는 슈로더브릭스증권자투자신탁(설정액 1460억원), 미래에셋BRICs업종대표증권자투자신탁(1301억원), 신한BNPP브릭스플러스증권자투자신탁(928억원) 등이 있다.
국내 운용중인 브릭스 펀드들은 대부분 중국 기업을 가장 높은 비율로 담고 있어 중국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장 규모가 큰 브릭스 펀드 세 개 모두 중국 기업이 보유종목 상위 1위부터 4위까지 포진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 평안보험, 귀주모태주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는 종목이다.
신한BNPP브릭스플러스증권자펀드의 경우 상위 보유종목 10개가 모두 중국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 주식의 시가총액이 4조달러 가량으로 브릭스 국가 중 가장 크고 종목도 다양해 중국 쏠림 현상이 나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전욱 미래에셋자산운용 리테일본부 상무는 “신흥국 증시 특성상 외부 악재에 크게 떨어질 위험이 존재하고, 국가 간 상관관계가 높아 브릭스 내 특정 국가 증시 하락이 다른 국가로 전이될 수 있다”며 “자산 상당분을 투자하는 핵심 펀드보다는 위성 펀드로 삼아 플러스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