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 회식 때문에 늦잠을 잔 직장인 김정민(33) 씨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다 그만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오고 말았다. 김 씨는 지하철역에 도착해서야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온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스마트폰에 설치한 모바일 앱카드로 지하철 교통요금은 물론이거니와 출근길 마실 수 있는 커피와 점심값까지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앱카드로 충전한 티머니를 이용해 지하철로 출근한 뒤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을 앱카드로 구입해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점심 역시 직장 동료들과 레스토랑에서 먹고 앱카드로 결제했다.
최근 카드업계가 기술(Technology)과 금융(Finance)이 결합된 핀테크 기술 개발에 올인하면서 모바일 앱(APP)카드 서비스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앱카드는 모바일에 앱(APP) 형태로 내려받아 온·오프라인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인한 순이익 감소와 인터넷전문은행 등 새 경쟁자의 등장으로 ‘미래 먹거리’ 발굴이 시급한 카드업계는 앱카드를 포함한 모바일 결제 수단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은 지난해 6조원에 육박해 최근 2년 사이 5배나 성장했다. 현금 사용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신용카드 사용이 크게 늘었고 모바일 간편결제 사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 모바일 앱카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 고객 선점을 위해서 이제 모바일 결제 시장은 카드사들이 물러설 수 없는 전쟁터가 됐다.
▶실물카드 필요없어…
진화하는 모바일 앱카드
카드사들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의 바람이 거세지자 실물카드보다 모바일 앱카드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 1위 신한카드의 앱카드인 신한 ‘FA N(판)’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결제된 금액이 5조원을 넘었다. 이 금액은 같은 기간의 국내 전자상거래 전체 시장 55조원 중 9.1%를 차지한다.
신한카드는 지난 2013년 4월에 업계 최초로 모바일 앱을 활용한 앱카드 결제 서비스를 론칭한 이후 지난해 11월말 기준 누적 결제 규모가 이미 11조를 넘어섰으며, 가입 회원 수도 731만 명에 달한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GS리테일, 홈플러스, SPC그룹, 동부화재, 한국스마트카드, 티켓몬스터 등 각 분야 대표업체들과 모바일 플랫폼 동맹(MPA)을 체결했다. 신한 판을 깔면 GS리테일이나 홈플러스 등 MPA에 참여한 회사들 코너가 있어 제품을 간편결제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미리 실물카드의 카드정보를 입력해 둔 뒤 실제 결제할 때는 비밀번호 6자리만 입력하면 된다.
KB국민카드는 여러 장의 카드를 한 장에 담아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신개념 앱카드 ‘알파원카드’를 선보였다. 사용방법은 우선 ‘KB국민 앱(App)카드 K-모션’에 등록한 여러 장의 카드 중 이용 시점에 최적의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알파원 결제 카드’로 설정한다. 이후 실물 플라스틱 카드인 알파원 카드로 결제하면 설정된 카드의 혜택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앱을 통해 마트 할인 카드를 알파원 결제 카드로 설정하면 마트 할인 혜택이 제공되고, 주유소에서는 주유 할인 카드를 알파원 결제 카드로 등록할 시 주유 할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BC카드는 모바일 환경에서 고객들이 다양한 결제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올 3월부터 앱을 이용한 바코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USIM형 모바일카드를 이용할 수 없는 아이폰 사용자를 고려해 PC환경에서 이용 중인 ISP(안전결제서비스)를 스마트폰 등 모바일 수단에서 결제할 수 있도록 한 비유심(NON-USIM) 방식의 바코드 결제서비스다.
하나카드는 온라인 결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바코드를 통해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앱카드인 ‘모비페이’를 2014년도에 출시했다. 이처럼 간편결제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온라인 위주의 소비 패턴 변화와 함께 모바일결제 시스템이 ‘간편함’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에 익숙한 2030세대가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스마트폰 앱카드를 통한 결제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며 “특히 앱카드는 카드사들이 항상 ‘간편함’을 최우선적인 모토로 삼아 개발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 빠르게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탑재한 간편인증 서비스
공인인증서를 없앤다
그간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문제로 많은 홍역을 겪어온 카드업계는 블록체인 등 핀테크 신기술을 활용해 보안성 강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분산형 네트워크로 ‘온라인 공공거래장부’로도 불린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는 중앙집중형 서버에 데이터를 보관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카드사들을 계속 괴롭혀 온 해킹과 정보 유출에 대한 두려움을 한 번에 해결해 준다.
먼저 KB국민카드는 국내 금융사 중 최초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활용한 개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용자들이 블록체인이 적용된 간편인증 서비스를 선택하면 공인인증서처럼 유효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인증서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비밀번호도 6자리로 단순해 공인인증서(10자리)에 비해 사용이 간편하도록 했다.
롯데카드는 블록체인 전문 스타트업 블로코와 함께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카드 포인트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롯데카드의 블록체인 기반 포인트 관리 시스템은 포인트 적립·사용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동되고, 보안문제도 완벽히 해결돼 카드 포인트가 마치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화폐의 역할을 한다.
롯데카드는 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 계열사와 제휴사까지 포함한 대규모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포인트를 현금처럼 자유롭게 사용하게 만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롯데카드의 ‘엘포인트(L.PO INT)’로 다른 사람에게 간편송금을 하거나 온라인쇼핑에서 간편결제가 가능해진다.
다른 제휴사 포인트와 교환할 수도 있다. 롯데카드는 향후 포인트는 물론 종이로 발행되는 상품권 역시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관리해 위·변조나 중복 사용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카드사들도 블록체인 연구에 한창이다. 삼성카드는 카드 포인트 ·대출 관리 등에 광범위하게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신한카드는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미래 금융기술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했다.
우리카드는 우리은행 내 블록체인 분야 관련 부서와 자회사들로 구성된 ‘블록체인 실무협의회’에 참여해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나선 것은 모바일 결제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보안성 강화와 사용 편의성 향상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실제 서비스와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보안 강화와 비용 절감 등의 장점이 있어 올해 안에 빠르게 보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기술 개발과 벤치마킹을 위해 핀테크의 ‘성지’로 불리는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마련하는 카드사들도 늘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 2015년 9월 국내 금융사에서는 최초로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오픈했다.
지난해 5월, 직원 수가 6명에 불과하던 기존 사무실 규모를 3배 이상 확장하며 선진금융기술과 기법을 배우기 위해 박차를 가한 상태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디지털화의 핵심은 ‘민첩함’이라고 강조한다. 핀테크 본고장인 실리콘밸리에서 첨단기술이 발전하는 현황을 민첩하게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카드의 임직원들은 사무소를 왕래하면서 핀테크 업계 동향을 파악하고 다양한 핀테크 업체와 근거리에서 만나며 사업구상을 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실리콘밸리 IT기업 문화 도입이 국내 금융사 중 가장 활발하다. 복장 자율화, 점심시간 자율화, 과도한 파워포인트 금지, 신입사원이라도 경영진에게 이메일로 아이디어 제시 등 유연해진 사내문화는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새로운 업체와 협력하기 위해서 매번 비행기를 타고 해외출장을 가야 한다면 빠른 핀테크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는 단순히 결제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만으로는 카드사들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카드도 지난해 7월 초 기존 미국 뉴욕에 있던 현지 사무소를 핀테크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실리콘밸리 새너제이로 이전했다. 삼성카드는 지난 2002년 뉴욕 사무소를 설립해 해외인력 영입 등에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실리콘밸리가 핀테크 등 선진금융 기술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이번 이전을 결정했다.
삼성카드는 실리콘밸리 사무소 설립을 계기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3개월 단기 해외연수 프로그램 ‘캣치 더 웨이브(Catch the wave)’도 진행 중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직원들을 선발해 현지에서 연구 개발과 실제 사업화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현지에서 발굴한 창의적인 아이템을 여러 건 선정해 실제 사업화를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 진출은 삼성카드가 작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1등 카드사’ 전략의 일환이다. 삼성카드는 최근 삼성전자의 ‘디지털 DNA’를 카드사에도 심는다는 목표로 다른 카드사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업무의 디지털화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초 신용카드 모집인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는 등 회원 모집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신용카드 발급도 온라인·모바일을 활용해 ‘24시간 365일’ 발급이 가능한 체제로 바꿨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사무소 설립은 실리콘밸리에서 최신 금융기술과 핀테크 트렌드를 직접 보고 경험하자는 취지”라며 “선진 핀테크 기술을 배우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