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50대 A씨는 최근 주거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의 추천으로 벤처펀드에 5억원을 투자했다. 평소 비상장 주식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벤처업계 전문가들이 직접 성장 잠재력이 큰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운용까지 맡아준다는 설명에 투자를 결정했다. A씨는 “장외 주식 투자를 꾸준히 해왔지만,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미래 발전 가능성이 큰 유망한 벤처기업을 찾아낸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증권사 신탁 창구를 통해 엄선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벤처펀드의 경우 상대적으로 투자 리스크가 적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이상의 고위험·고수익형 투자를 즐기는 거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성장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펀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기관투자가 대비 비상장 주식 정보가 미흡한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증권사 신탁 창구를 통해 전문가들이 엄선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세금에 민감한 거액자산가들의 특성상 투자금액의 1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요인으로 꼽혔다.
▶증권·운용사 VIP 고객 대상
벤처펀드 조성 잇따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연초 미래에셋대우는 국내외 비상장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미래에셋 신성장 좋은기업 투자조합 출자지분 편입신탁 16-1호’를 조성, 140억원 투자 모집을 조기에 마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펀드 설정 규모는 140억원이었다. 이에 힘입어 미래에셋대우는 ‘16-2호’를 내놓았다. 자금 모집 규모는 200억원, 최소 투자금액은 3억원 이상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일선 PB센터 거액자산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기도 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16-1호의 경우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합작 상품으로, 예상 밖의 흥행을 거뒀다”면서 “16-2호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16-2호는 만기가 7년 2개월이지만, 투자 기간에 펀드에 편입된 기업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투자 수익을 분배금으로 지급한다. 만기가 도래하면 투자자 협의를 통해 투자기간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대형 증권사들도 앞다퉈 신탁형 벤처펀드 조성에 적극적인 분위기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4부터 일찌감치 계열사 한국투자파트너스와 함께 벤처펀드 투자를 이어왔다. 현재까지 총 7개의 벤처펀드가 설정된 상태이며, 그중 90%가량이 한국투자증권의 신탁고객들로부터 모은 투자자금이다.
지난 2014년 3월에 결성된 ‘한국투자 퓨처 그로쓰 투자조합’과 ‘한국투자 퓨처 밸류 투자조합’의 경우 설정규모는 각각 225억원, 65억원이었다. 설정된 자금 모두 한국투자증권의 신탁 고객 자금으로 조달됐다. 이후 2015년 10월과 11월에 ‘한국투자 벤처 15-1호 투자조합’과 ‘한국투자 Venture 15-5호 투자조합’까지 시리즈로 펀드 5개가 연달아 결성됐다. 총 투자 규모는 943억원이었다. 현재 벤처펀드 운용은 한국투자파트너스가 담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2014년에 조성된 펀드는 투자 기한이 끝나 일부 투자금을 회수한 데 이어 재투자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5개의 시리즈 펀드(투자조합)는 모두 만기 7년으로, 아직 투자 기한이 남아있는 상태다.
계열 증권사가 없는 IMM인베스트먼트의 경우엔 하나금융투자 등 몇몇 증권사들과 손을 잡고 벤처펀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5월 253억원 규모의 ‘IMM 세컨더리 벤처펀드 제1호’를 결성했다. 당시 IMM인베스트먼트는 하나금융투자를 비롯한 여타 증권사들로부터 투자자금을 조달했다.
한 대형증권사 신탁부 관계자는 “벤처펀드 중에선 전액 증권사 신탁 자금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만 신탁자금을 투입해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들어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자들까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면서 “향후 벤처펀드 규모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신생 운용사나 벤처캐피털이 금융사 신탁자금을 활용한 벤처펀드 조성에 적극적이다.
▶비상장 주식투자 높은 투자위험 명심해야
이처럼 벤처펀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급증한 데에는 신탁자산 수익률이 낮아 고민인 고객들 중 주식 투자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갖춘 거액자산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주식이나 채권처럼 전통적 투자자산의 기대 수익률이 현저히 낮은 상황에서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수익을 추구하려는 수요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개인적으로 직접 비상장 주식 투자를 하는 것보단 정보 획득이나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벤처펀드가) 수익을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즉 벤처펀드에 재간접 투자하는 방식이다 보니 기관투자가가 투자한 기업군을 미리 검증한 셈이라는 것이다. 이에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이 직접 운용함으로써 비상장 주식투자에 대한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며 “무엇보다 투자금액의 10%(해당 과세연도 종합소득금액의 50% 한도 및 최대 2500만원까지)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비상장 주식 투자라는 점에서 유의할 점도 많다. 투자 기간이 최소 5~7년이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펀드 내 투자 대상별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 회수율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서 투자 원금 손실 가능성이 다른 투자자산 대비 높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한 VC업체 운용역도 “저금리·저성장 기조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벤처펀드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많다”면서도 “다만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기대 수익률 몇십~몇백%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만 보고 투자하기엔 위험도가 큰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이 직접 비상장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아지지만 그럼에도 각 펀드에 대한 세심한 투자 주의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펀드 운용사와 해당 펀드를 담당하는 매니저의 역량을 검증하는 것도 필수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 신탁부 담당자는 “최근 들어서 신생 벤처펀드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관련 경험이 많은 운용사인지, 펀드매니저의 과거 운용 실적이 어떤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벤처펀드 3조1998억 조성 사상 최대
한편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조1998억원 규모의 벤처펀드가 조성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대비 17.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한 해 동안 신규로 조성된 벤처펀드가 3조원을 초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규로 결성된 벤처조합은 120개로, 2015년 대비 9.1%포인트 늘었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벤처펀드도 잇따라 조성되면서 시장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마다 벤처펀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벤처기업도 늘고 있다. 2012년 688개에서 2016년 1191개로 73.1%포인트 급증했다. 투자규모도 1조2333억원에서 2조1503억원으로 74.4%포인트나 늘었다.
이에 따라 기관과 거액자산가 중심의 벤처투자 시장도 점차 대중화 단계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장에선 지난해 말부터 벤처펀드의 개인출자자 수(49인) 제한 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벤처펀드 투자 열기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했다. 향후 최저 투자 금액 문턱이 억원 단위에서 천만원 단위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최근 들어선 증권형(지분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고 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비상장 중소기업(벤처기업)이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국내에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6년 1월 25일부터 가능하게 됐다.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기회가 닫혀있던 대중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일반투자자들이 기업당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200만원으로 연간 총 한도는 500만원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기업당 500만원, 총 한도 1000만원이다. 단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취득한 증권은 1년간 매도가 제한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크라우드펀딩 투자를 시작하려면 우선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운영하는 전용 홈페이지 ‘크라우드넷’을 통해 관련 제도를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크라우드넷에서 본인의 투자한도 및 투자 회사별 연간 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벤처펀드와 마찬가지로 크라우드펀딩 역시 비상장 기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투자 성향 및 투자 목적이 적합한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 밖에도 투자기업의 재무 상태나 사업계획서를 반드시 읽어보고 향후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아울러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투자는 연말정산 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벤처기업이나 창업 3년 이내의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한 경우로 중개업체 및 발행기업에 소득공제 적용 대상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