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브렉시트(Brexit)에 국내 증시는 단 하루 만에 47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국내 증권사 대다수는 빗나간 설문조사에 의지해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브렉메인)에 무게를 두고 리포트를 냈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6월 15일 보고서에서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투표를 근거로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투표 이후에 대한 걱정이 현실로 다가와 잔류로 결정나기 마련”이라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에 대해 잔류에 무게를 둔다”고 밝혔다. 하나금융투자도 브렉시트 투표 직전 여론조사들이 온라인조사에서 탈퇴 지지층이 더 많이 분포돼 있다는 점을 들어 “여론조사에서 보이는 탈퇴 지지율 상승이 실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산운용업계의 ‘알파고’로 떠오른 로보어드바이저의 대처는 달랐다. 국내 몇몇 로보어드바이저는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미리 예측해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규제 완화를 통해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가 금융투자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알파고’
시스템트레이딩과 어떻게 다를까?
로봇(Robo)과 자산관리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로 자산운용업계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알고리즘이 투자의 중심이 되는 로봇 기반의 인공지능 투자 플랫폼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신경 쓰지 않아도 시장에 적응해 스스로 투자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하고, 1초에 수백 개의 매수/매도 주문을 동시에 체결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사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동화된 매매를 하는 “시스템 트레이딩”이나, 특정한 알고리즘을 통해 시장에서 몇 만 분의 일초 단위로 발생하는 차익을 포착하여 이익을 얻는 “초단타 트레이딩”은 기존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로보어드바이저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과거 자동화 매매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알파고 이후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딥러닝(Deep Learning)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 가미됐다는 점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컴퓨터 공학 기반의 퀀트공학이 과거 데이터를 추종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반면 로보어드바이저는 스스로 데이터를 조합하고 익히고 학습하는 기술이 적용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분석모형은 거시경제 지표를 비롯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장기 수익률을 분석한 뒤 미래 수익구조를 예측한다.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시장상황에 맞게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수정하고 실수를 자체 분석해 자산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모델을 변화시키는 투자관리시스템이다.
▶KOSPI 종목 20%만 커버해
매도의견 ‘안 내는’ 증권사리포트 대체할 것
로보어드바이저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를 통한 최소 투자금액과 자문보수를 낮춰 투자자문 등 자산관리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데 있다. 대중적인 금융서비스를 보다 많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증권사에게 분석 대상이자 고객사들인 탓에 매도주문이 사라진 형식적인 리포트와 차별화된 분석보고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뉴지스탁의 문경록 대표는 “현재 증권사 리포트는 전체 종목의 20%를 채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수의 개미투자자들은 제대로 된 전문가의 도움 없이 묻지마 투자에 나서고 있어 로보어드바이저의 도입은 패러다임에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시스템 트레이딩’이나 ‘초단타 트레이딩’을 영위하는 회사들은 일반인들에게는 투자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일임을 통한 자산관리서비스 또한 기존에는 고액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모델이 비즈니스의 중심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이러한 기존의 틀을 깨고 누구나 쉽게 안정적이면서도 수익성 있는 자산관리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정부가 로보어드바이저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근본 취지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가장 큰 특징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위험 성향과 목적을 구분하여 투자를 운용하며, 머신러닝을 통해 투자 경험을 반복적으로 학습시켜 개별종목 및 최적의 투자 비중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맞춤형 포트폴리오 서비스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편리함이다. 프라이빗뱅커와 다르게 24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편한 곳에서 가입신청을 하거나 투자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셋째, 투자금액의 제약과 수수료가 적다. 웹(Web) 또는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하여 저비용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아직까지 멈칫하는 뭉칫돈, 11월 규제개혁으로 움직일까
많은 이슈와 쟁점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이지만 아직까지 상품투자로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랩어카운트 등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10여개 증권사가 관련 상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운용금액이 1억원을 넘은 상품이 드문 상황이다. 아직까지 생소한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투자자들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미국과 달리 국내 자문서비스에 대한 수수료가 낮다는 점도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들의 가입금액이 대부분 소액이고 아직까지 상품을 설명해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며 ”몇몇 상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운용금액이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하반기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가입금액이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 결과가 나오고, 수익률이 공개되면 투자자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란 판단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해 검증하고, 홍보하면 투자자들도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하반기가 되면 투자자들의 부담은 줄고, 가입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변화도 로보어드바이 활성화에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11월부터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투자자문에 응하거나 고객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이다. 금융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투자자문을 하는 독립투자자문업(IFA)이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규제를 완화시키는 내용 등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동안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은 전문 인력이 업무에 활용되기는 했지만 실제 이를 이용한 위탁 자산운용은 할 수 없었다. 이번 개정안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직접 고객의 투자자문에 대응하고 일임 자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업 면허가 없는 정보기술(IT) 업체가 독자적으로 자산 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참여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단,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이나 알고리즘(문제 해결 절차·방법)이 테스트베드(시험대)의 검증을 통과해 시중 금융사와 제휴를 맺거나 향후 투자자문·일임업 자격을 얻는 방식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8월부터 금융권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를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과 자본시장 관계기관이 참여한 RA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기존 금융사와 자문(일임사 포함) 회사 외에도 기술력을 갖춘 IT 업체 등이 테스트베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데 의견을 모았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이 직접 투자자에 자문하거나 자산을 운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으나 금융위는 지난달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 같은 규제를 풀어주기로 했다. 테스트베드에 3개월 이상 참여해 민간 심사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하고 물적 요건을 갖춘 업체는 이르면 오는 11월 말부터 투자자에게 직접 조언하면서 자산을 굴리는 고차원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출시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카드사의 혁신을 촉발한 ‘핀테크’에 이어 자본시장에서도 기술과 금융이 결합한 RA 등장은 IT·금융 융합의 기폭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본금 기준 낮춰 신규업체, 진출 늘어날 듯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고객에게 투자 상품을 조언하는(자문업 등록) 기준은 자본금 5억원 이상이다. 고객 자산을 직접 운용하기 위해서는(일임업) 15억원의 자본금을 갖춰야 한다.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신생 IT 기업 입장에서는 버거운 조건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금융업 면허는 없지만 RA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거나 준비 중인 핀테크 업체는 20곳 안팎으로 추정된다.
IT 업체들이 8월부터 가동되는 테스트베드에 참여해 검증을 통과하면 프로그램이나 알고리즘을 써먹을 수 있는 최소 요건을 얻게 된다. 은행이나 증권사와 손잡고 로보어드바이저 프로그램·알고리즘을 제공하는 대신 RA 시스템 개발사는 수수료를 이익으로 얻게 되는 구조다.
금융당국은 알고리즘 개발사가 고객 성향이나 투자 자산별로 특화된 시스템을 테스트베드에 선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입자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낮추고 안전자산을 더 담는 자산배분펀드(TDF)를 취급하거나 로보어드바이와 최적 조합으로 꼽히는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를 전문하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또 11월부터 자문업 등록 자본금 기준이 1억원으로 낮아지는 만큼 신생 핀테크 회사들이 금융업 면허를 확보한 뒤 RA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성행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국내업체들의 준비상황은
미국은 이미 수 년 전부터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7년째 이어진 제로 금리에 은행 이외의 투자를 원하는 고객의 수요가 늘어났고, 이 과정에서 맞춤형 PB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수수료가 낮은 로보어드바이저 고객이 늘어난 것이다. 블룸버그는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의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 로보어드바이저들의 운용자산 규모가 연평균 성장률 68%로 2020년에는 2조2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57억 달러의 시장규모가 2021년에는 7909억 달러(CAGR: 75.1%)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대형 금융회사는 업체를 인수하거나 자체 서비스를 개발하고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제휴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메릴린치는 생애 주기에 걸쳐 투자 상품 자문이 가능한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하고 있고, 피델리티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배틀먼트와 제휴를 맺었다. 블랙록은 ‘퓨처 어드바이저’라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를, 골드만삭스는 ‘어니스트달러’라는 퇴직연금 관리 전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를 인수하면서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는 세부적인 투자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고객이 입력한 정보에 기반한 투자 대상 선정,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을 적용한 자산 배분 및 주기적 리밸런싱 등의 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자 대상은 거래 편의성 및 비용 절감을 위해 상장지수펀드(ETF)가 주를 이루고 일부업체는 개별 주식도 포함해 투자 상품을 운용·관리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은행과 증권, 자산운용사에서 로보어드바이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스마트 어드바이저’ KEB하나은행은 ‘사이버PB’, NH투자증권은 ‘QV 로보 어카운트’,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자산배분 솔루션’, 대신증권은 ‘웰스 어드바이저’, 유안타증권은 ‘마이 티레이더2.0’을 출시하며 자체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했다.
이 중 삼성증권의 경우, 올해 초 국내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의 핵심플랫폼인 ‘투자성과 검증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증권의 자체 개발 플랫폼은 주식, ETN, ETF, 선물 등 다양한 상품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구성하여 리밸런싱, 매매에 이르는 투자 전 과정을 로봇이 모두 판단해주는 국내에서 유일한 시스템이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으로는 쿼터백, 디셈버앤컴퍼니, 에임(AIM), 데이터앤애널리틱스, 뉴지스탁 등이 있으며 주요 금융권들이 이들 업체들과 MOU체결을 맺는 등 국내에서도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KDB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현대증권, 신한금융투자, 동부증권,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은 이러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와 제휴를 맺고 서비스 중이다. KB국민은행은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쿼터백 R-1)을 출시했고, 쿼터백 자체 알고리즘이 920조 개 이상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적의 투자대상을 선별한다. KEB하나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사후 자산관리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처럼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분야에 대형금융투자사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만큼 투자자들의 선택의 폭은 보다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