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ies; ELS)’이 자산관리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 금융상품으로 떠올랐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ELS 발행액은 39조4394억원으로 40조원에 육박했다. 이미 최근 3년 평균 연간 발행액과 맞먹는 규모다. 최근 발행 물량 대부분은 지수형 ELS로 손실 위험은 낮으면서 연 6~10% 수준의 비교적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투자자들은 ELS가 어떤 상품이고, 어떻게 수익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4년 전 종목형 ELS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절반 이상 날린 투자자들은 ELS가 주식 못지않게 위험한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증권사 영업점이나 온라인을 통해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란 설명에 가입하는 고객들도 상품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ELS는 과연 믿고 투자해도 될 만한 안전한 상품인가, 중위험·중수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배분되는가, 손실을 피하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매일경제 럭스멘이 ELS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2012년 5월 기아차와 에쓰오일(S-OIL)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종목형 ELS에 투자했던 직장인 A씨는 ‘종목형 ELS는 위험하다’는 얘기를 최근 실감했다. 3년 동안 두 종목의 주가가 가입 당시 대비 5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연 22.44%의 높은 수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기초자산 가운데 하나인 에쓰오일의 주가가 지난 8월 중순 ‘손실 발생 기준(knock-in; 녹인)’을 밑돌면서 내년 5월 만기 때 원금이 반토막이 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 동안 만기가 돌아온 공모형 ELS(종목형·지수형 포함) 4559개 가운데 17.3%인 788개 ELS에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ELS 투자자 5명 가운데 1명꼴로 손실을 경험한 셈이다.
2011년 코스피의 사상 최고점 기록을 이끌었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의 주가가 이후 내리막을 걸으면서 3년 전 LG화학, OCI, GS, 한화케미칼, S-Oil, SK이노베이션 등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됐던 종목형 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최근 증권사들은 위험을 대폭 줄인 새로운 개념의 ELS를 개발해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험이 상당히 낮아졌을 뿐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초자산과 상품구조에 따라 위험 수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
최근 ELS 발행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수형 ELS 손실확률은 평균 5% 안팎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일경제가 최근 삼성증권에 의뢰해 코스피, S&P500,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유로스톡스50 등 주요 4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해 발행되는 6개 주요 지수형 ELS(쿠폰 수익률은 연 10.5%로 가정)의 최근 11년간 손실 발생 확률을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유로스톡스50을 제외한 나머지 지수형 ELS의 평균 손실 확률은 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안전한 조합은 코스피와 HSCEI 두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로 최초 가입시점 대비 50%로 했을 경우 손실 확률은 3.70%였다. 가입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해당 ELS에 27번 투자했을 때 한 번 정도 손실이 발생한 셈으로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코스피와 S&P5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녹인 50%)의 손실 확률은 5.21%로 해당 ELS에 19번 투자했을 때 한 번 정도 손실이 발생했다. 코스피와 HSCEI, S&P500 등 3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ELS의 손실 확률도 7.36%로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다만 유로스톡스50을 기초자산에 포함시킬 경우 손실 확률이 10%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와 유로스톡스50 2개 지수를 기초로 ELS(녹인 50%)를 발행했을 경우 손실 확률은 11.06%였다. 9번 투자했을 때 한 번 정도 손실이 발생한 셈이다. 유로스톡스50을 포함해 기초자산을 지수 3개로 발행했을 때 손실 확률은 더 높아진다. 녹인 50% 기준 코스피와 HSCEI, 유로스톡스50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LS에 투자했을 경우 손실 확률은 12.23%로 가장 높았다.
ELS 수익은 어떻게 내고 어떻게 나누나
일반적으로 판매사들이 제시하는 ELS 수익률은 채권보다는 높다. 게다가 판매사도 먹어야 하고 그 상품을 설계한 사람도 수익을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 모두가 나눠먹을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ELS는 채권과 주식, 옵션으로 구성된 장외파생상품으로 장외파생상품 영업인가를 받은 증권사가 발행한다. 지수형 ELS의 경우 증권사가 코스피200, HSCEI, S&P500, 유로스톡스50 등 국내외 주요 지수 가운데 2~3개를 기초자산으로 선정해 상품을 구조화한다.
기초자산의 주가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정해진 수익률을 제공하는 스텝다운형 ELS가 가장 일반적인데, 보통 3년 만기이며 6개월 단위로 조기상환의 기회가 주어진다. 손실발생 기준인 녹인은 보통 가입시점 기초자산 가격의 60% 수준에서 정해진다. 지수형 기준 발행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쿠폰 수익률은 연 8% 안팎이다.
ELS 발행 증권사는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 중 절반가량을 채권이나 예금에 투자해 연 2% 수준의 고정적 수익을 만든다. 나머지를 옵션이나 주식 선물에 투자해 초과수익을 창출한다. 증권사는 이런 매매를 통해 발행 당시 고객에게 제시한 쿠폰 수익률과 판매 회사에 판매수수료 70~80bp(0.7~0.8%)를 지급한다. 헤지 운용수수료 명목으로 증권사가 갖는 수익은 10~20bp 수준이다. 운용성과에 따라 나머지 초과 수익은 증권사의 몫이 된다.
최근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지수형 ELS 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ELS의 실제 운용 주체는 외국계 증권사인 경우가 많다. 해외지수 ELS를 발행하는 국내 증권사 상당수가 자체운용에 따른 손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외국계 대형 투자은행(IB)에 일정한 수수료를 주고 ‘백투백(Back to back)’ 헤지 운용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백투백 헤지 수수료는 과거에는 보통 25bp였는데, 최근엔 해외 IB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가 10~20bp 수준으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자산 가격이 상승할 경우 발행 증권사나 투자자 모두 문제될 게 없다. A증권사가 연 8% 수익률의 지수형 ELS를 발행했고, 3년 동안 지수가 30% 올랐다고 가정하면 증권사는 고객에게 원금의 24%를 수익으로 줘도 판매보수를 제외하고 헤지 수수료를 포함해 5%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
문제는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했을 때다. 증권사는 하락장에서도 기초자산 가격이 내리면 사고, 오르면 파는 방식으로 주식과 선물·옵션 헤지거래를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3년 후 지수가 30% 하락했다고 가정하면 증권사는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24%의 수익을 포함해 50%가 넘는 수익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 대형 증권사 ELS 담당자는 “변동성과 녹인 수준을 감안해 끊임없이 기초자산의 옵션과 선물을 샀다 팔았다 하면서 수익을 만들어낸다”며 “다만 수익을 못 만들어내면 증권사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3년 동안 주가가 40% 이상 하락해 녹인이 발생하면 손실은 사실상 거의 전부 투자자 몫이 된다. 손실이 발생해도 판매수수료와 운용수수료는 떼어가기 때문에 투자자는 실제 지수 하락폭보다 더 큰 손실을 입어야 한다. 특히 해외 지수 ELS의 경우 국내 발행 증권사가 고객에게 제시하는 기준가격과 해외 IB의 실제 청산가격의 차이가 큰 경우가 많다.
국내 증권사 ELS 담당자는 “국내에서 평가한 기준가는 참고가격일 뿐이며 실제 ELS의 청산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ELS를 헤지하고 있는 외국계 증권사”라고 설명했다.
ELS 잘 알고 투자해야
ELS 상품은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 구간 아래로 하락하면 철저히 투자자가 손실을 책임지도록 구조화되었다.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 녹인 발생 이전에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ELS 운용 방식이 투자금의 일부를 기초자산의 옵션에 투자해 초과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녹인에 근접하면 기초자산의 주가가 조금만 오르거나 내려도 기준가격의 변동 폭이 매우 커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녹인 구간이 60%라고 가정하면 주가가 65% 밑으로 내려오면 증권사는 녹인이 되는 게 더 유리하다”며 “증권사의 수익과 고객의 수익은 완전히 분리된다”고 말했다. 과거 일부 사례에서 문제가 된 것처럼 종목형 ELS의 경우 녹인에 근접한 구간에서는 증권사의 의도적인 매물 출회로 기초자산 가격 하락이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수형 ELS의 경우 개별 증권사의 매매만으로 지수의 방향성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모럴 해저드는 피해갈 수 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대형 해외 악재로 증시가 크게 하락할 경우를 대비해 지수형 ELS도 녹인이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증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본인이 가입한 ELS의 기준가격을 수시로 체크하고, 녹인에 10~15%포인트 수준으로 근접했을 경우 중도환매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녹인 60% ELS의 경우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시점 대비 70~75% 수준까지 하락했다면 중도환매를 신청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LS 가입 6개월 후 첫 조기상환 기준이 보통 가입시점 대비 95% 수준이지만, 이를 85% 수준으로 낮춰 조기상환 가능성을 높이는 것도 손실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85% ELS는 연간 기대수익률은 5% 수준으로 일반적인 ELS에 비해서는 낮지만 은행 예금금리에 비하면 2배 수준으로 올해 들어 1조원 가까운 자금이 몰리고 있다.
원금보장 상품을 원할 경우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를 선택하면 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2년 만기 롱숏 ELB의 경우 투자금 전부를 정기예금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투자하고 원금의 50% 범위에서 발행 증권사가 자기자본으로 롱숏 투자를 병행해 연 4~5% 수준의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