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람은 저금리 시대라고 하고 다른 누구는 금리 상승기라고 한다. 누구 말이 맞나.
1982년 1월 저금리 시대라는 단어가 경제 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정한 여신금리(은행이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금리)는 연 16%, 수신금리(은행이 고객에게 돈을 빌리는 금리)는 연 15%였다. 단순히 계산해도 은행에 돈을 5년만 넣어둬도 2배가 되는 시기였다. 높아봤자 연 3%인 지금의 예금금리와 비교하면 훨씬 높은 금리지만 당시에는 저금리 시대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컸었다.
지난 5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출구전략’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내놨다. 5월 2일 연 2.44%까지 떨어졌던 우리나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6월 24일에는 3.12%까지 올랐다. 너무 단기간에 금리가 급등하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저금리 시대가 끝나간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3년물 금리는(8월 9일 현재) 여전히 2.9%대에 머무르고 있다.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저금리 시대라고 할 수 있고 어디까지 올라야 저금리 시대가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출구전략은 과연 금리를 어느 정도 올릴 수 있을까? 금리가 오르는데 대출을 받아야 하는 걸까?
1987년 이후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1990년대 초반 이후 우리나라 금리는 꾸준히 하락했다. IMF 경제위기로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1997~1998년을 제외하면 하락세는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세계 주요 선진국의 채권금리도 8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금리 하락 추세에 가속도를 더한 것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미국 부동산 시장 침체가 전 세계 금융위기로 번졌고 미국정부는 대대적으로 돈을 푸는 것으로 이를 대응했다.
막대한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얼마나 회복됐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크고 연준은 아직도 시장에 돈을 풀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출구전략은 사실상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것에 대한 검토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양적완화를 축소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신호다. 그동안 금리하락에 익숙했던 투자자들에게 금리가 더 이상 하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더 이상 금리가 계속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올라가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2.9% 수준인 3년 국고채 금리가 2~3년간은 3~4%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간 영향도 크다. 보통 한 나라의 장기금리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예상한 2013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8%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7%이므로 우리나라 금리는 높아봤자 4.5%가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3%대 저금리는 상당기간 오래 지속될 것이지만 더 이상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금리 하락기는 끝났지만 저금리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전망하에서 대출을 받는다면 결국 변동금리보다는 고정금리가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금리가 크게 오르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지금보다 내리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만인에 공평한 예금이자, 차별 큰 대출이자
보통 우리가 말하는 금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대출자가 금융기관에서 빌릴 때 금리(여신금리)와 예금자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길 때 금리(수신금리)다. 개인 입장에서 여신금리와 수신금리는 큰 차이가 있다. 수신금리는 내가 얼마나 재산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가 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가난한 학생이든 수백억대 자산가든 은행에 돈을 맡기면 받는 예금금리는 동일하다. 이자에 대해 떼어가는 세금은 다르지만 금리에 따른 차별은 없다.
반면 여신금리는 내가 얼마나 재산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내가 빌리는 금융기관이 어떤 곳인지에 따라 금리 차이가 크다. 단적인 예로 집을 구매하기 위해 은행에서 빌리는 주택담보대출은 금리가 3% 후반에 불과하다. 왜냐면 내가 대출을 못 갚을 경우 은행이 집을 담보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재산이 없고 가처분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이 은행에서 순수하게 신용으로 대출을 받고자 할 때 금리는 7~8%대에 달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대출 자체가 되지 않기도 한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금리는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9%까지 뛰어오른다. 39%는 대부업체에 손을 벌렸을 때의 얘기다.
이는 사람에 따라 거래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금융기관 중 가장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기관은 은행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말 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최저 4.3%에서 최고 8.9%였으며 평균 6.9%였다. 말 그대로 한 자릿수 대출금리다. 다음으로 높은 곳은 상호금융기관이다. 새마을금고, 신협 같은 금융기관의 대출금리는 4.8~18.3%로 평균 7.4%다. 보험이 평균 11.4% 신용카드가 20.6% 캐피탈이 24.2% 저축은행이 29.9% 대부업이 38.1%다.
문제는 누구나 은행과 거래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이면서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인 사람 중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15.2%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비중은 대부업(29.5%)이고 차례대로 캐피탈(16.9%) 저축은행(14.1%) 신용카드(12.6%) 순이다. 저신용 대출자에게 은행 문턱은 까마득하게 높은 것이다.
대출이자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금융기관은 대출을 하면서 이 사람으로부터 원리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을 계산해 금리를 산정한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10%인 사람은 낮은 금리를 줘도 되지만 갚지 못할 가능성이 50%에 달하는 사람은 높은 금리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갚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높은 이자를 통해서 손실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금이자는 만인에게 공평하지만 대출이자는 불공평한 것이다. 특히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고신용자와 저신용자의 대출금리 차이는 더 커졌다. 대출금리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는 대출계급사회라고 할 만하다.
대출계급사회에서 대우 받으려면
금융기관은 신용대출보다는 담보대출을 선호한다. 그래야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돈을 떼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출 목적이 일시적인 용도의 소액자금이라면 예금담보대출이나 보험금담보대출 등 담보대출로 받아야 금리가 낮다. 또한 금융기관은 대출자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가 많을수록 대출금리를 깎아준다. 일례가 전문직 신용대출이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 대해서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준다.
그래서 대출금리를 낮추려면 은행에 적극적으로 본인의 정보를 제시하면서 낮은 금리를 요구해야 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한다든지 연소득이 크게 늘었다든지 신용등급이 상승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경우 이를 금융기관에 알리면 대출금리를 깎아주기도 한다.
금융기관별로 대출금리를 비교해 갈아타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주거래은행이 가장 낮은 금리를 제공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외환은행 대출모집법인을 운영하는 이승윤 대표는 “은행별로 대출하면 기대이익이 있어서 대출자가 카드도 쓰고 적금도 써주기를 희망한다”면서 “거래하다보면 대출만 쓰고 다른 이익을 내지 못하면 연장 시점에서 금리를 가산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저신용 등급자라면 국민행복기금 ‘바꿔드림론’을 통해 제2금융권에서 은행권으로 대출을 갈아탈 수도 있다. 신용등급 6~10등급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인 대출자가 연 20% 이상 이자를 부담할 경우 국민행복기금 3000만원 한도로 대출 갈아타기가 가능하다.
대출계급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등급표가 바로 신용등급이다. 이는 민간 개인신용평가회사(Credit Bureau)에서 개인의 신용정보에 등급을 매긴 것이다. 크레딧뱅크(NICE신용평가정보), 마이크레딧(NICE신용평가정보), 올크레딧(KCB)과 같은 회사들이다. 보통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개인에 신용등급을 매기고 금융기관이 필요로 할 때 이 정보를 제공한다. 연체가 발생하거나 대규모의 대출을 받으면 신용등급은 내려간다.
반면 꾸준히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대출을 제때 잘 갚으면 신용등급은 올라간다.
신용평가사가 제공하는 신용등급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일례로 은행에서는 자체적인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해서 대출금리를 결정한다. 카드회사도 신용등급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고객의 이용실적이나 개인정보 등을 분석해 대출금리를 결정한다. 신용등급이 높으면 금융기관과 거래할 때 기본적으로 높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