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으로 낮은 이자율이 오래 지속된다면, 덧붙여서 앞으로 투자수익률이 상당히 오랜 기간 낮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다. 명목이자율이 높고, 투자의 기대수익률이 높았을 때 연금과 보험 분야에서 행해졌던 그 많은 약속들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 하메드 엘 엘리언, 뉴노멀 시대의 항해 중에서
리먼 브러더스가 몰락한 지 4년. 그동안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국채수익률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 2007년만 해도 5%대에 육박했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1월 중순 기준으로 1.6%대까지 떨어졌다. 일본은 물론 영국 독일 등 다른 선진국 국채 금리도 마찬가지다.
사상 유례 없는 이 같은 초저금리 현상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 조치를 통해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버블 붕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서서히 부채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은행들에게 가능한 최저의 조달비용으로 자금을 대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선진국 정부들은 자신의 부채 규모 축소를 위해 긴축 재정 정책과 함께 지출을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부채가 GDP(국내총생산)의 90%가 넘게 되면 성장률이 평균 4%포인트 낮아지게 된다.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미국 싱가포르는 이미 90% 기준이라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고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도 이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반짝 반등 기미를 최근 보이고 있지만 한계선은 분명하게 그어져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고령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 중인 상황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저성장, 저금리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미국 재정위기가 또다시 세계 경제를 엄습하게 되면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한국 경제는 내년에는 폭풍우 속에 휘말리게 된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충격을 입은 증시는 여태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채권 금리 역시 국채 3년물 금리가 지난달 10일 2.79%까지 하락하는 등 사상 최저 기록 갱신행진을 연일 계속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란 풍요의 10년을 만끽했던 세상이 앞으로는 상당히 오랫동안 저금리, 저성장이라는 뉴노멀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한다. 저금리, 저성장 현상은 1~2년 내에 마무리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포스트 금융위기 시대 새로운 패턴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보유 후 매수’ 투자 신화 깨져
뉴노멀 시대의 재테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도 ‘보유 후 매수(Buy&Hold)’라는 장기 투자 신화가 깨지고 있다.
주식을 매수하거나 펀드를 가입한 뒤 손실을 보더라도 오래 버티기만 하면 결국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 자체가 뉴노멀 시대엔 흔들리고 있다. 주식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하게 들린다. 부동산 불패 신화 역시 깨진 지 오래다. 저금리가 지속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돈은 채권으로만 몰리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올 들어서 지난 10월 말까지 전 세계적으로 3950억달러의 자금이 채권형 펀드로 유입됐다. 지난 2008년 이후로는 1조1000억달러가 쏠렸다. 반면 주식형펀드에선 467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주식형 펀드에선 올 들어만 9조1500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채권형 펀드로는 1조1340억원이 증가했다. 국채 금리가 올 들어선 연간 10%대 후반 수익률을 기록 중인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이 인기몰이 중이다.
선진국 국채 금리가 워낙 낮아 수익성이 떨어지자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지만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투기 등급 채권으로 자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하이일드 채권이란 신용등급이 BBB 이하인 채권이다. 하지만 MGM리조트, 레이놀즈그룹 등 신용등급은 낮지만 재무구조가 튼실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라 경기 회복기에 투자적격등급의 채권보다 가격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큰 특징을 갖는다.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형 펀드는 올해만 총 9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 모았다.
문제는 채권 유통수익률이 사상 최저치로 내려앉으면서 채권 발행금리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기등급 채권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입장에서 채권 보유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 줄어든다면 국내외, 투자등급이나 투기등급을 막론하고 채권형 펀드의 기대수익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식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채권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심지어는 똑같은 회사가 발행한 금리 쿠폰이 시가배당률에도 못 미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 펀드들이 10%대 후반의 높은 수익률과 함께 인기 몰이 중이지만 과거의 성적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운용사들 입장에서 지금 당장 가입하라고 투자자들에게 권유하기엔 2~3년 후의 기대수익률이 낮다는 점이 고민이다.
저금리 시대 인컴펀드 뜬다
채권 투자가 인기가 있는 까닭은 채권에 붙어 있는 금리 쿠폰 때문이다. 발행 당시 ‘미리 확정된 수익(Fixed Income)’을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지급받고 만기에 원금을 돌려받는 게 채권투자의 정석이다. 문제는 확정된 수익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고민이다. 그래서 시장은 새로운 인컴(Income)에 주목한다. 채권처럼 약속된 금리를 정기적으로 주지 않더라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 상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새로운 상품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임박했다. 하지만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더 이상 공적 연금은 물론 개인연금들이 향후 약속했던 수익금을 배분해 줄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리의 노후를 담보로 잡고 있는 연기금 투자 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컴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호주나 일부 유럽 통신회사 주식들의 경우에는 1년에 네 번씩 배당을 주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주식투자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시가 배당률이 6%가 넘는다면 동일한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보다 배당주 보유가 더 수익이 높다는 얘기다. 선진국 하이일드 채권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 이머징마켓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 올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던 맥쿼리 펀드와 같은 인프라 펀드들도 정기 배당을 꼬박꼬박 챙겨준다.
이 때문에 하이일드 채권, 아시아 국공채 등 채권뿐만 아니라 선진국 리츠, 고배당주, 우선주 등에 골고루 투자해서 채권과 유사하게 일정 기간마다 수익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인컴펀드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론 그렇다. 문제는 위험하다고 해서 언제까지 현금이나 예금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 싫다고 해서 아예 투자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위험 중수익(Middle Risk, Middle Return) 상품들이 각광받는 이유다.
게다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ETF를 통한 위험 분산투자가 가능해졌다.
매일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3000개가 훨씬 넘는 다양한 ETF를 통해 그동안 동시 투자가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인덱스를 복제한 투자가 가능해졌다.
원자재, 주식, 외환, 채권, 인프라 투자, 리츠 등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들을 결합해서 변동성을 낮추면서도 꾸준한 수익을 내는 분산투자가 가능해지고 있다. 변동성을 줄이면서도 꾸준한 수익을 내는 멀티 에셋 펀드가 등장한 배경이다.
주식에서 분산투자가 장기 수익을 내는 것처럼 주식, 채권, 실물자산 등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통해 안전하면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분산투자를 통한 수익률 제고 효과를 낼 수 있느냐는 대목에선 운용사들의 운용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위험은 최소화하면서도 기대수익률은 높일 수 있는 인컴펀드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운용사들이 인컴펀드들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초 출시된 슈로더투신운용의 월지급 아시안 에셋 인컴펀드의 경우 2개월 만에 누적수익률이 3.26%를 기록하면서 국내 설정액이 200억원을 돌파했다.
아시안에셋 인컴펀드는 하이일드 채권의 이자수익과 고배당 주식의 배당수익을 통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적 성격의 포트폴리오로 해외채권형 수준의 상대적으로 낮은 변동성 꾀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른 투자비중 조절을 통해 수익률 증대를 꾀하는 상품이다.
권문혁 슈로더투신운용 마케팅 상무는 “지금 당장은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금리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태에선 과거와 같은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며 “주식과 채권을 같이 투자하면서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여주는 인컴펀드가 새로운 추세”라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달 9일 ‘한국투자 글로벌 멀티인컴 펀드’를 새로 선보였다.
글로벌 멀티인컴 펀드란 미국에 상장된 다양한 ETF(상장지수펀드) 중에서 채권, 리츠, 외환(FX), 고배당주, 우선주 등 지속적으로 이자와 배당이 지급되는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해 연 6~7% 수익을 안정적으로 추구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 장기채권 ETF, 이머징 채권 ETF, 물가연동채권 ETF 등 채권 관련 ETF에 투자하는 동시에 배당 수익에다 저가 메리트까지 있는 고배당 ETF에 투자한다.
배현의 한국투자신탁운용 펀드매니저는 “내년 경기 회복과 함께 금리가 반등하게 되면 채권투자에서도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안정 성향이 높은 자산군에 골고루 투자하게 되면 채권 보다 훨씬 높은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멀티인컴 펀드는 모닝스타 멀티에셋 하이인컴지수를 벤치마크로 하는데 최근 6개월 누적 수익률이 6.76%에 달하고 있다. 특히 하이인컴지수는 위험을 감안한 수익을 나타내는 샤프지수가 2.92에 달해 채권 못지않은 높은 안정성과 함께 수익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도 내년 초부터 해외 고배당주식에 투자하는 피델리티글로벌디비던드 펀드를 국내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서진희 피델리티자산운용 마케팅 상무는 “채권 대비 주식 저평가 현상이 심화되면서 채권 금리 쿠폰이 배당 수익률보다 낮은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고배당주식에 투자하게 되면 배당 수익은 물론 향후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도 추구할 수 있어 연간 7%대의 기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