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치 임대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들어만 오시면 특급 호텔과 똑같은 주차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대형 오피스 빌딩이 내건 계약 조건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도심권 오피스를 원하는 기업들에게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
서울 오피스빌딩 공실률 43%
빈 사무실이 없을 정도로 위용을 자랑하던 서울 종로와 을지로 일대 도심 대형 오피스 빌딩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을지로에 위치한 ‘파인애비뉴’의 경우 최근 입주한 한솔제지에 ‘일정기간 임대료 무상’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래에셋타워로 불리는 A동도 SK건설을 유치하기 위해 5년 계약에 17개월 무상임차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지난해 입주를 시작한 을지로 ‘센터원’은 3.3㎡당 9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내걸었다. 인근에 위치한 비슷한 규모의 오피스 임대료가 3.3㎡당 10만~12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다른 곳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역 앞에 위치한 ‘서울스퀘어’ 역시 3.3㎡당 8만~9만원대로 임대료 깎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LG그룹이 본사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떠났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청계천을 따라 페럼타워, 시그니쳐타워 등 대형 오피스빌딩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을지로2가 파인애비뉴, 회현동2가 스테이트남산 등 인근 초대형 프라임 빌딩도 일정기간 ‘임대료 무상’ 조건을 내걸 정도로 늘어나는 공실률(빈 사무실 비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자문사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서울지역 오피스빌딩의 평균 공실률은 2009년 1분기 3.1%에서 2011년 4분기 5.1%로 올랐다. 특히 1%(2009년)대를 유지하던 도심의 대형 빌딩 공실률은 2011년 6.7%로 치솟았다. 2012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다. 1분기 도심권역 대형 오피스 공실률은 0.6% 상승한 7.4%를 나타냈다. 오피스빌딩의 주요 고객인 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사무실 수요는 줄어든 반면, 공급은 오히려 늘어난 탓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지역 오피스 공급량은 2008년까지 연평균 80만㎡(연면적 기준) 안팎이었지만 지난해엔 110만㎡로 40%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 을지로 빌딩중개업체 관계자는 “중심가 랜드마크 빌딩에도 임차인이 들지 않고 있다”면서 “얼마나 인센티브를 주는가가 빌딩을 고르는 기준이 됐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형 오피스빌딩의 경우 다양한 소규모 업체가 입주하는 중소형 빌딩과 달리 수요층이 한정돼 있어 당분간 공실률 상승과 임대료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알투코리아 관계자는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도심권의 대형 오피스 공급이 지속될 전망이어서 오피스 공실률이 1% 정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지난 2010년 이후 1~2년간 신축된 서울시내 프라임급 오피스빌딩들의 평균 공실률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42.6%에 달할 정도다. 절반 정도 불이 꺼져있는 셈이다. 오피스 임대 업계에서는 연면적 6만6000㎡(약 2만평) 이상의 빌딩을 프라임급 오피스로 분류한다. 2010년 이후 서울에는 중구와 종로구 등 도심권에 스테이트남산타워와 파인애비뉴·미래에셋센터원·시그니쳐타워·트린트리타워 등이 신축됐고 여의도권에는 서울국제금융센터(IFC) 등 대형 오피스빌딩이 잇따라 들어섰다.
강남3구 소규모 상가 빌딩은 선전… 매물 품귀까지
#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세들어 있던 건물 인근의 4층 빌딩을 35억원에 매입했다. 5층으로 신축하는 데 10억원 가량의 건축비를 투입했다. A씨는 요즘 싱글벙글하고 있다. 병원을 확장하면서 수익도 늘었고 건물은 10억원이 올라 현재 55억원에 팔라는 제의를 받았다.
# 최근 퇴직한 B씨는 서울 강남구 신논현동 인근의 6층짜리 건물을 경매로 시세보다 저렴한 65억원에 낙찰 받았다.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빌딩 시세가 70억~80억원 정도라 최소 5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투자금액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에 수익률도 6% 이상 나오고 있다. B씨는 “일부 공실이 있었지만 임차인이 속속 입주하면서 거의 만실 수준에 근접했다”면서 “월세로만 한 달에 25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 수익률은 낮아도 향후 가치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강남권 소규모 빌딩이 초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다. 웬만큼 입지조건을 갖춘 건물이나 시세보다 다소 싸게 나온 매물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환금성이 높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양극화되면서 고액 자산가들은 중소형 빌딩을 찾고, 소액 투자자들은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50억~70억원대의 중소형 빌딩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꾸준하지만 매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상업용 빌딩의 평균 수익률은 9%대로, 17%대의 주식보다는 낮았지만 채권(4%)보다는 2배 이상 높다. 특히 투자 위험도를 나타내는 변동성지표(표준편차)는 주식이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19.79%를 기록한 반면 빌딩은 평균 2.8%를 기록해 안정적이다.
연면적 1만6500㎡ 이하의 C급 빌딩이 중소형 빌딩이다. 금액으로는 지역과 입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50억~150억원선이다. 자산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액대는 50억~70억원선이다. 이 경우 40억~50억원의 현금에다 10억~20억원의 대출을 끼고 매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레버리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자녀 상속을 위해서도 대출을 끼고 사는 것이 합리적이다. 강남구 일대의 이면도로의 5층 이내 중소형 빌딩은 40억원 이상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 20억~30억원으로 살 수 있는 빌딩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100억원 이상의 비교적 비싼 빌딩도 입지가 괜찮을 경우 매물로 나오기가 무섭게 매수자들이 낚아채 간다.
빌딩중개업체 관계자는 “강남권 빌딩 시장은 매도자와 매수자가 모두 많다”면서 “매도자도 버티기에 나서고 매수자는 깎으려 하다 보니 거래조정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오피스빌딩의 경우 강남권역은 지난해 7.26%의 연간 투자수익률을 기록해 중구·종로구 등 도심(8.87%)과 여의도·마포권역(9.13%)에 비해 낮았다. 매장용 빌딩도 강남은 6.14%로, 도심(8.23%)과 신촌(7.05%)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졌다. 하지만 강남의 중소형 빌딩은 환금성이 높고 풍부한 임대 수요로 공실 위험이 작다.
빌딩 투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싸게 사야 한다는 점이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은 모든 투자의 기본이지만 부동산 시장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가 하락에 대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세 대비 10% 이상 싼 매물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입 가격을 낮추려면 경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낙찰가가 감정가를 육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리한 낙찰은 피해야 한다.
올해 8월부터 일반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등 두 개 이상의 용도지역에 걸친 대지의 용적률 산정 방식이 가중 평균으로 바뀌면서 두 지역에 걸쳐 있는 중소형 빌딩의 호가가 오르는 등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오피스텔은 투자자의 관리 부담이 거의 없다. 관리업체에 맡기고 임대료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빌딩은 다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공실관리에서부터 공간·자산관리 등 전반에 걸쳐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각종 계약에다 임대료, 건물 유지보수 등과 관련해 임차인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부동산의 소유권과 관리를 신탁회사에 맡기고 이익을 돌려받는 부동산관리 신탁을 활용하기도 한다.
소액투자자들 부동산 간접 투자
서울 중구 센터원
“중국인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호텔이 뜬다는데….”
신문지상에서 이런 글을 접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수백억원 투자금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금액이다. 결국 침만 꼴깍 삼키며 눈을 피하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10만원으로 호텔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10만원에 유명 디벨로퍼나 경매 전문가, 골프장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믿기지 않는 이 이야기는 모두 부동산 펀드나 리츠 등 부동산 간접투자법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10만원으로 가능하다는 건 상장된 리츠에 국한된 이야기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리츠들이 보통 주당 5000~6000원쯤 하니 10주를 살 경우 10만원도 안된다. 그러나 사모펀드의 경우 1인당 최소 가입 금액이 1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이니 여전히 서민들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리츠와 부동산 펀드가 수익형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리츠란 부동산투자회사가 투자한 부동산의 지분을 잘게 쪼개서 증권화시킨 것이다. 공모를 통해 투자하고 상장된 경우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리츠는 이익금의 90% 이상을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준다.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리츠는 연평균 16.8%의 수익률을 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여전히 빌딩 투자가 69.1%로 가장 많지만 다른 수익형 부동산들에 대한 투자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리츠는 기존의 땅을 매입해서 개발했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의 대안적 방안으로 지난해부터 주목받았다. PF부실로 은행들이 우량한 물건에도 대출을 꺼리자 공모나 사모의 형태로 직접 자본을 모아 투자하자는 인식이 부동산시장에 급속도로 퍼진 것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이나 비즈니스호텔, 쇼핑몰, 공장 등 최근 뜨고 있는 수익형 부동산에 빠른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운영대상이 부동산이기 때문에 투자물건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주식에 비해 수익 변동 폭도 작다.
분양의 개념에서 운영 수익을 얻는 쪽으로 투자 방향도 변하고 있다. 리츠가 직접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경우 초기에 부담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건축업자가 하지 못하는 투자도 가능하다. 최고급 도시형 생활주택을 짓거나 유통센터, 물류센터 공장 등에 투자하는 일이다.
신생리츠인 더블에셋리츠가 역삼동에서 개발한 도시형생활주택 ‘EG소울리더’는 서초구 부띠크 모나코를 설계한 조민석 건축가를 데려왔다. 바닥재와 유리문, 주방가구 등에도 독일제, 이탈리아제 최고급 자재가 사용됐다. 킴스클럽 등 건물을 사들여 재임대한 ‘뉴코아강남’은 지난해 3분기 7.43%의 배당수익률을 기록했다. 연간 환산 수익률이 14.85%에 달한다. 쌍용양회 인천공장 등을 보유한 ‘에스와이인더스’는 연 환산 배당수익률이 14.20%에 이른다.
한류열풍과 중국인 관광객 붐을 타고 비즈니스호텔 투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리츠는 대규모 자본금을 통해 분양 등의 어려움을 초기에 없애준다. 전문 운영사를 끼고 운영할 경우 안정적인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호텔리츠는 5~7년 만기로 연 8% 안팎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 주로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가 선호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호텔에 투자한 리츠는 총 4개며 자산규모는 1996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 리츠 총 자산 8조3533억원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을지로2가 와이즈 빌딩은 12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로 탈바꿈했다. 충무로 삼윤빌딩, 신대방동 중외제약 사옥, 명동센트럴빌딩도 호텔로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장점이 많은 리츠지만 역시나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인한 횡령과 주가조작이 발생하기도 하고 정부 정책 변화로 수익률이 변하기도 한다.
금융위기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경우에는 안정성을 믿고 투자했다 원금을 까먹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투자 대상 물건 매입이 난항을 겪을 경우에 회사 형태를 띤 리츠는 즉각 손실이 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리츠업계 관계자는 “리츠는 재테크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단 리츠별로 투자 대상이 다른 점을 감안해 부동산 투자처럼 현지를 둘러보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