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대표, “한국 기업 체력 강해 증시 반등할 겁니다”
입력 : 2011.09.29 10:05:22
수정 : 2012.04.05 11:36:39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주식투자부문 대표(44). 1993년부터 ‘주식운용’이라는 일을 해왔으니 올해로 19년째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시기. 함께 동고동락했던 매니저들은 하나둘 제도권을 떠났지만 그는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정상의 펀드 매니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주식투자를 생각하면 설레고 또 기쁘다. 이런 설렘과 즐거움은 김 대표가 한국의 ‘피터 린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외환위기와 IT버블, 카드대란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등락을 거듭했으나 그는 항상 제자리를 지킬 줄 아는 매니저였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뒤안길을 살피며 시장을 지켜왔다. 한창 잘 나가던 한국 주식시장이 뜻하지 않은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급락세에 접어든 9월 초. 시장이 극도의 불확실성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조경엽 편집장과 김 대표가 만났다. 그는 급락한 시장에도 의외로 담담했고, 시장의 반등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펀드매니저 생활에서 체득한 노하우가 바탕에 있는 듯 했다.
시장에 대한 궁금증을 우선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정확한 원인을 아는 게 우선이겠죠?
주식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시장이 급락한 중요한 원인은 역시 미국과 EU지역의 경제 위기인데, 외생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 국내 증시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긍정적으로, 그렇다고 아주 부정적으로 전망한다는 건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더 떨어질 것인지 아니면 반등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겠죠.
그렇다면 추가 하락과 반등, 어느 쪽에 베팅하는 게 좋을까요.
한국 증시가 고점 대비 50% 가까이 폭락한 경험이 다섯 번입니다. 두 번은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같은 국내 요인 때문이었고, 세 번은 IT버블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해외 요인 때문이었죠. 코스피지수가 1700선까지 내려온 현 시점은 고점(코스피 2230) 대비 약 25% 정도 급락한 수준인데, 여기서 25%가 더 빠져서 고점과 비교해 50% 하락하는 시장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긍정적으로 시장을 전망한다고 봐야겠죠. 만약 25%가 추가로 빠진다면, 한국 주식시장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5배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뜻인데, 투매 심리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정도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주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미국과 EU지역의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그렇게 큰 폭으로 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는 몇 가지 명백한 근거가 있는데, 우선 한국 주요 기업의 ‘이익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경우 2007년 이후 분기별로 한 번도 영업적자를 기록하지 않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자동차 메이커입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이익을 냈다는 뜻인데, 적자를 내지 않고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삼성전자도 지금 분기별 영업이익이 4조원을 내느냐 못 내느냐를 걱정하고 있는데, 2008년 이전과 비교해 보세요. 이익의 규모 차이가 엄청납니다. 만약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적자를 낸다고 하면 아마 대만이나 일본의 경쟁사는 모두 파산위기에 몰릴 거예요. 그만큼 한국 주요 기업들은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몇 가지 근거 가운데 하나를 설명하셨는데 다른 이유들은 어떤 건가요.
주식시장이 급락했던 2000년과 2003년, 2008년에는 펀드에서 대규모 환매가 일어났습니다. 시장에서 많은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지수의 하락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이번 급락장에서는 오히려 주식시장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어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32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갔는데, 이번 급락장이 오기 전에 이미 빠져나갈 자금은 대부분 나갔기 때문에 추가로 이탈할 자금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지수가 크게 하락하니까 주식형 펀드에 자금이 몰리고 있는데, 이렇게 펀드에 돈을 넣기 시작한 건 개인들도 한국 기업이 그만큼 변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이번에는 다른 위기 때와 달리 개인들이 체감하는 ‘마이너스 부의 효과(자산가치 감소에 따른 소비 심리 악화)’는 아직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증시 급락을 가져온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는 어떻게 보십니까.
과거 외국인 매매 패턴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외국인은 무려 45조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왜 샀을까요? 바로 한국 기업의 이익 변화를 자신했기 때문에 산 겁니다. 2009년과 2010년, 한국 상장기업은 54조원과 85조원을 벌어들였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경제 쓰나미’가 덮쳤던 2008년에도 35조원 수준의 이익을 냈는데, 외국인들이 이런 한국 기업의 변화에 베팅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 올해도 5월까지는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오다 6월부터 팔기 시작한 건데, 미국 2차 양적완화(QE2) 종료에다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면서 매도세가 커졌던 거죠.
시장 심리가 조금만 개선되어도 외국인은 결국 한국 기업의 변화에 다시 베팅하기 시작할 겁니다.
이런 근거로 김 대표는 어느 때보다 시장이 빨리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평소 그의 ‘차분한’ 시장 진단과 전망을 감안했을 때, 또 외국인과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를 가장 잘 꿰뚫고 있을 그의 ‘지위’를 고려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2005년부터 2007년 대세 상승이 진행될 때 시장을 좋게 봤었다. 지금도 그 때 수준만큼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현재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Valuation; 가치평가)’ 매력을 강조했다. 주식시장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이 역사적 저점 수준인 7~8배 수준에 오랫동안 머무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평균 10배 수준으로만 돌아간다고 해도 현재보다 20% 정도는 지수가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그의 명쾌한 설명이 마무리되면서 화제가 다른 쪽으로 이어졌다.
펀드 매니저로 오랫동안 상당한 명성을 쌓아 오셨습니다.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기업 탐방을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하면 “기업 탐방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매니저가 어디 있나”라고 반문할 것 같아요. 그럼 이렇게 답합니다. 누구보다 철저한 사전 분석을 바탕으로 심도 있는 미팅을 진행하고,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경쟁사에 대해서도 철저한 분석을 한다고요. 예를 들어 저는 1년이면 250개 정도의 기업을 탐방하는데 200개는 국내 기업, 50개는 국내 주요 기업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외국 기업들을 방문합니다. 이때 회사 내부 리서치 자료와 피델리티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됩니다. 삼성전자의 3D TV 사업을 분석하는 데 소니를 방문해 직접 경쟁 상황을 체크하고, 현대차를 분석하는 데 토요타를 함께 분석해 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죠.
그래서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운용시절부터 현재까지 대형 공모 펀드들에 대해서도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군요.
2000년 미래에셋 시절부터 지금까지 11년 동안, 공식 펀드 운용 기록을 살펴보면 저는 기본적으로 약세장 기간보다는 강세장에서 운용을 잘 하는 성과를 보여 왔습니다. 주식투자라는 게 어차피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상품이라는 점에서 ‘공격적’ 투자자라고 평가한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골프로 치면 위기가 왔을 때 ‘보기 플레이’로 마무리 할 수 있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곧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약세장에서도 최악의 성적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세장에서 기회가 왔을 때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공모펀드를 10년 이상 제 이름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김 대표나 피델리티가 적용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원칙도 궁금하군요.
일단 제가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기본 원칙은 ‘보텀업(bottom up)’ 방식입니다. 시황에 대한 판단보다는 거시적인 위기에도 꾸준한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을 고르는 게 우선이죠. 그렇게 보면 좋은 종목을 선정하는 게 최고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탑다운(top down)’ 접근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거시적 시장 흐름을 파악해 편입비율을 조정합니다. 피델리티에는 고객 자산이 부당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도록 특정 업종에 대한 편입 비율 규제 등 내부 규정과 지침이 마련돼 있는데, 이걸 그대로 지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피델리티가 가진 글로벌 리서치 역량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과 주식투자의 대한 그의 설명이 마무리 되면서 화제는 중국 경제와 부동산 투자 등 세간의 궁금증이 집중된 이슈로 옮겨 갔다.
특히 ‘최고의 주식시장 전문가’인 그가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또 개인 자금을 바탕으로 주식 운용을 하는 펀드매니저로서 투자자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주식투자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시는데, 혹시 현재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하고 계신가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라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부동산 투자를 통해 과거와 같은 초과수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은 투자자 모두가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투자 상품 가운데 하나로 부동산 투자를 통해 과거의 기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식 수준에서 저도 판단할 뿐입니다.
중국 경제가 미국과 EU의 경기 침체를 대신할,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인데요. 중국 경제에 대한 판단은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쇼크가 온다면 미국과 EU에서 오지 중국에서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제가 미래에셋에서 피델릴티로 자리를 옮겼던 2004년 5월이에요. 중국 전인대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 경제 성장의 속도 조절론을 꺼내면서 중국발 쇼크가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중국 관련주가 단기간에 20% 급락하면서 시장에 폭풍우가 몰아쳤죠. 그 이후 중국은 지금까지 적당한 속도조절을 해왔고 특히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중국이 긴축을 하고 있는 이유도 부동산 시장의 불안을 그만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인데, 지금까지는 중국 정부가 그래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중국 부동산 시장 흐름이 중국 경제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에게 해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펀드 투자도 분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펀드의 투자 성격과 투자 지역을 중심으로 적어도 세 개 이상의 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위기가 올 때든 기회가 있을 때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펀드를 선택할 때는 운용사에 대해 더 철저히 따져보고 검증해야 한다는 점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운용 철학과 운용 시스템의 안정성, 펀드 운용을 맡은 매니저의 과거 경력까지도 꼼꼼히 살펴보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진짜 자기에게 맞는 좋은 펀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 김태우 대표가 추천하는 ‘베이비부머의 은퇴 준비’원금 보전 성격의 연금형 상품 ‘굿’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이제 79.05세까지 올라왔다. ‘인생 100세 시대’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반대로 직장인들의 은퇴 시기는 점점 빨라지는 추세여서 이제 57세까지 내려왔다. 적어도 평균 20년은 은퇴 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셈이다. ‘축복’이어야 할 인생 100세 시대가, 은퇴 준비 여부에 따라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은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쩍 커졌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은퇴는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가 됐다. 그럼 투자 전문가 김 대표가 추천하는 은퇴를 위한 투자 상품은 어떤 게 있을까.
일단 그는 “역모기지(mortgage) 형태의 연금형 상품이 은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역모기지는 주택 구입을 위해 해당 주택을 담보로 잡고 주택 구입 자금일 빌리는 반대 개념으로, 주택을 담보로 일정액의 생활 자금을 타서 쓰는 개념이다. 이미 역모기지 방식의 주택연금은 집은 보유하고 있지만 은퇴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노년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표는 “캐시플로(현금흐름) 차원에서 역모기지 상품이 은퇴자들에게 중장기적인 큰 트렌드를 만들어 갈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월지급식펀드’도 같은 원리로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정한 소득을 꾸준히 올릴 수 있는 젊은 시절(30~45세)에는 적립식펀드로 목돈을 마련한 후 장년기(45~60세)에는 월지급식펀드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또 60세 이후에는 역모기지 상품에 가입하는 게 현금흐름 차원에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리스크가 적은 원금보전 추구 형태의 금융상품 가입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