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금융업계가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이 확장하면서, ‘펫팸족(Pet+Family)’이라 불리는 반려동물 가구를 위한 특화 금융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반려동물 적금을, 보험사들은 반려동물 보험을 선보이는 등 펫코노미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높은 소비 충성도와 지속적인 시장 성장세를 근거로, 이 분야가 금융권의 새로운 장기적인 수익 모델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약 552만 가구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 가구 중 상당한 비중이며, 앞으로도 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사료·장난감 등 소비재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이제는 의료, 서비스,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중이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소비자들은 의료비나 보험 가입, 돌봄 서비스 등을 필수로 이용하게 된다. 이는 금융상품을 포함한 여러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각광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인 중 81.6%는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반려가구의 월평균 총 양육비는 15만4000원에 달했다. 이는 2021년(14만원) 대비 10% 증가한 수치다.
금융업계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반려인 맞춤형’ 상품을 개발함으로써 장기적인 고객 확보와 차별화된 특화 서비스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이를 통해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세에 발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고객을 위한 예·적금 상품의 출시다. 금리 혜택이나 부가서비스를 결합하여 반려동물 양육 가구에 홍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KB국민은행은 반려동물을 위한 목돈 마련을 위한 펫 적금 ‘KB반려행복적금’을 내놓았다. 가입 기간은 12~36개월이며, 월 가입 금액은 1만~50만원이다. 최저금리는 연 2.75%이지만 반려동물 정보를 등록하거나(0.2%), 미지견(묘)을 입양했거나(0.2%), 반려동물 관련 요금제를 이용(0.2%) 하는 등 활동을 하면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특히 산책, 양치, 몸무게 체크 등 ‘반려동물 애정 활동’을 10회 이상 등록하는 경우 연 0.2%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어, 은행은 이를 ‘반려동물과 추억도 쌓고 금리도 받는’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펫사랑 적금’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펫사랑 서약’을 통해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책임감 있게 돌보겠다는 약속을 하면 기본 금리 연 2.30%에 연 0.1%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하나카드 우대(0.2%), 마케팅 동의 우대(0.2%) 등이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금융상품이면서 동시에 반려동물 보호 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가입금액은 월 10만~50만원이며 가입기간은 1년이다.
보험사들도 반려가구를 주요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금융사 중 하나다. 그 이유는 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려가구가 지난 2년간 반려동물 치료비로 지출한 금액은 평균 78만 7000원에 달했는데, 이는 2021년(46만8000원)과 비교했을 때 68%나 급증한 수치다. 치료비 세부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기·장비 검진(51.9%)이었으며, 피부 질환 치료(39.6%), 사고 상해 치료(26.4%), 치과 질환 치료(2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반려동물보험은 보험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는 상당히 높아졌지만, 아직 실제 가입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려동물보험을 알고 있다고 답한 금융소비자 비율은 2021년 63%에서 2023년에는 89%로 크게 뛰어올랐다. 물론 월 납입 보험료 부담 등의 요인이 가입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앞으로 이 시장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DB손해보험은 대한수의사회와 손을 잡고 ‘개물림 보상보험’을 새롭게 출시했다. 반려견이 다른 사람을 물어 발생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보장해 주는 상품이다. 개물림 사고의 위험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반려동물 사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보험료는 약 1만원이며, 반려동물 사망 시 15만원 위로금과 500만원 한도 반려동물 배상책임손해를 보장한다. 보험기간은 1년이다.
메리츠화재는 업계 최초로 기존 질병 등 치료 이력이 있는 반려동물까지 가입 조건을 완화한 간편심사형 반려동물 보험 2종을 출시했다. 과거 반려동물 보험은 3개월 이내 동물병원 치료 이력이 있으면 가입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간편 심사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더 많은 반려동물 가구가 쉽게 보험 가입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는 것이다. 이번 상품은 입원 또는 수술 경험이 아닌 경우에는 가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연간 의료비 누적 금액 기준으로 최대 500만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한다. 생후 60일부터 만 8세까지 가입할 수 있다.
펫코노미 붐은 해외여행보험 등 다양한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캐롯손해보험은 반려동물을 동반 혹은 국내에 맡겨두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반려인을 위한 특약을 내놓았다. 이 상품의 경우 항공기 지연이나 결항으로 인해 반려동물을 맡긴 보호자가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보상해 주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특히, 귀국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돼 당초 예정된 도착 시간보다 4시간 이상 늦어질 경우, 반려동물을 맡긴 위탁 돌봄 서비스나 펫시터 이용에 따른 추가 비용을 보험 가입 금액 내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이 보상은 여행 기간과 관계없이 적용된다.
반려동물 관련 다양한 생애주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금융사의 시도도 있다. 신한카드는 반려동물 등록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반려동물과의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담은 ‘신한카드 더펫 카드’와 ‘신한카드 더 프리미엄 펫 카드’ 2종을 출시했다. ‘더펫 카드’는 전국 동물병원과 반려동물 전용몰(어바웃펫, 핏펫, 강아지·고양이 대통령, 바잇미, 조공)에서 이용 시 30% 할인 서비스를 전월 실적에 따라 각각 월 최대 2만원까지 제공한다. 또 이 카드는 반려동물의 생애주기에 따라 달라지는 소비패턴을 감안해 동물병원과 반려동물 전용몰의 할인 한도를 10% 단위로 변경해 이용할 수 있는 ‘할인한도 DIY 서비스’를 도입했다. 프리미엄 혜택을 담은 ‘더 프리미엄 펫 카드’의 경우, 기존 ‘더펫 카드’와동일한 혜택에 더해 매년 다양한 기프트 옵션 서비스 중 하나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마이신한포인트 15만점, 펫 전용 쇼핑몰 20만원 할인권, 반려동물 관련 제품 무료 제공 서비스 중 하나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는 은행 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자사 앱 ‘올원뱅크’에 ‘펫케어’ 서비스를 선보이며, 반려동물 헬스케어 전문기업인 에이아이포펫의 ‘AI건강체크’ 기능을 담았다. AI건강체크는 반려동물의 눈·피부·치아 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인공지능(AI)이 이상징후를 알려준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유기동물 입양과 반려동물 장묘업체 정보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동물병원 찾기와 질병백과·양육꿀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은 2022년 기준 62억달러(약 8조9509억원)로 추산되며, 10년 뒤인 2032년에는 152억달러(약 21조944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삼정 KPMG는 ‘다가오는 펫코노미 2.0 시대, 펫 비즈니스 트렌드와 새로운 기회’ 보고서를 통해 “(반려동물산업은) 소득이 높을수록 반려동물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구조”라며 “최근 65세 이상 노년층, 젊은 1인 가구 혹은 신혼부부 중 고소득자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투자 또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성장성이 밝다”고 했다. 펫 관련 금융 산업에 대해서도 “금융업 전반으로 펫 금융 서비스의 스펙트럼이 확정되며 영역이 세분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