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지방소멸의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역 인구의 감소, 청년층의 유출, 경제 침체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맞물려 일부 지역은 이미 ‘소멸’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냉혹한 진단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지자체마다 지역 특색을 살려 부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때 꾸준히 거론되는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축제’를 통한 지역 활성화다. 그러나 관 주도형,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고 지역의 문화와 산업이 접목된 진정한 의미의 ‘지역 개발형 축제’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야간경제형 축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낮 위주 행사의 한계를 벗어나 저녁부터 밤늦은 시간대까지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즐길 수 있게 하면서,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전 세계 축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러한 야간축제의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할 자리가 경주에서 마련된다. 오는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Global Festival Summit 2025 세계축제 정상회의가 그 무대다. 이 행사의 총괄책임자로 나선 인물이 바로 세계축제협회 아시아지부회장이자 배재대학교 관광축제한류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인 정강환 교수다.
배재대학교 관광축제한류대학원장으로, 세계축제협회 아시아지부 회장을 겸하고 있다. 보령머드축제, 정동야행 진주남강유등축제 등 대표축제의 기획·자문을 맡아 지역개발형 축제 전략을 강조해왔으며, 야간형 축제와 신 야간경제를 통해 지방소멸 해법을 제시한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스페인 토마토축제 등 해외 축제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K-축제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국내외 다양한 학술·컨퍼런스 활동을 통해 축제 경영 전문가를 양성하고, 한류 문화콘텐츠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 중이다. 세계축제협회와 협력, 국제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활용 방안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야간형 축제의 확대 추세입니다. 관광객이 밤에도 머무르게끔 만들면 숙박산업 활성화와 함께 체류 시간 연장, 지역 경제 재도약에 긍정적 파급효과가 훨씬 커집니다.”
인터뷰 초반, 정강환 교수는 야간형 축제가 갖는 잠재력에 대해 유독 힘주어 이야기했다. 단순히 밤에 열리는 행사를 넘어, “신 야간 경제(New Night-time Economy) 전략”이 종합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유럽, 그리고 가까운 중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가 이미 ‘신야간경제’를 본격 도입해 지역 침체 극복에 나서고 있다. 박물관·미술관·역사적 명소 등을 늦은 밤까지 개방하고, 전시·공연·이벤트를 결합해 거리를 활기차게 조성함으로써 관광객이 밤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전에는 축제라고 하면 낮에 무대에서 공연을 보거나, 장터에서 간단히 먹거리 즐기는 정도였어요. 그러다 밤늦게는 다들 흩어지죠. 하지만 신야간경제형은 ‘밤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예컨대 역사·문화유산이 풍부한 경주에서는 야간조명 기술, 미디어아트, 박물관 심야 개장, 거리 행진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 ‘밤의 관광’을 본격화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의 경우 특히 ‘야간 체험’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낮보다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 색다른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SNS로 공유하죠. 그렇게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 결국 숙박, 식음료 등 전반적으로 지역경제에 전환점이 생깁니다.”
정교수가 2015년 기획실행한 정동야행이 문화재청의 문화재야행의 효시가 되었고, 신야간경제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국내에서도 경주·진주·부여·군산 등이 문화유산, 구도심, 야경 등을 결합해 야간형 축제를 적극 실행 중이며, 이와 유사한 성공 사례를 만든 곳이 바로 국가유산청이 추진하는 ‘문화유산야행’ 시리즈다. 군산의 근대역사 건축물이나 서울의 덕수궁·정동 일대를 밤에 개방해 주민과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지역 상권을 되살리는 데 이바지했다.
“사실 ‘국가유산 야행’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야간형 축제가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일제강점기 건물이라는 부정적 유산조차 젊은 층에는 SNS용 ‘복고풍 감성’으로 새롭게 다가갑니다. 외려 아늑한 조명과 함께 밤에 개방했을 때 매력이 더 극대화되죠. 국가유산청처럼 정통 문화유산 관리를 하는 국가기관이 이런 실험적 야간축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정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지역 개발형 축제’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축제는 대체로 ‘관 주도형, 주민 화합행사’의 성격이 강했다. 공연을 열고 노래자랑을 하며 공무원들이 일회성으로 운영을 맡아 축제가 끝나면 해산하는 식이었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이 1~2년 맡았다가 부서 이동하면 새 담당자가 또 기획을 처음부터 하고, 이러니 노하우가 누적될 수 없죠. 더구나 축제가 진정한 산업이 되려면 관에서 지출하는 예산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민간 재단이 상시 운영하면서 기업 스폰서십과 연계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야 합니다. 즉, ‘축제 경영(Festival Management)’ 시대로 넘어와야 해요.”
그가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예시로 언급한 축제가 보령머드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금산인삼축제, 화천산천어축제 등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축제는 지자체와 민간 재단이 함께 고민해 지역 특산품, 지역 문화 스토리를 축제 콘텐츠로 연계해왔다. 보령은 해양 자원인 머드를 화장품 산업에 연결했고, 진주는 유등을 이용해 야경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면서 유명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특산물을 활용한 ‘홍성 글로벌 바비큐 축제’나 ‘금산인삼축제’에서도 특정 자원을 어떻게 상품화·체험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온 흔적이 엿보인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예컨대 보령머드축제는 옛날에는 단순히 ‘머드를 덕지덕지 바르는 이벤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 세계에 머드 화장품이나 머드 체험을 알리는 매개체로 기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외국인이 충남 보령을 찾았고, 머드 상품 매출도 뚜렷이 증가했어요. 축제라는 게 잘 기획되면 지역의 특산물·산업·문화가 세계시장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지역 개발형 축제의 위력입니다.”
정 교수는 ‘축제가 만든 고용 효과’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미국·캐나다·유럽의 대형 축제 재단은 상근 직원만 수십~수백 명을 채용할 정도로 이미 ‘축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외 유명 축제 재단에는 50명, 300명씩 상근 직원이 있어요. 캐나다의 한 축제 재단은 정직원이 300명이 넘죠. 그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축제의 마케팅, 기획, 협찬 유치, 공연 섭외, 지역사회 프로그램 연계를 고민하면서 일 합니다. 게다가 2차·3차 부가가치가 엄청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간신히 ‘축제 재단’이 만들어지고, 직원 5~8명 정도로 감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관광축제한류대학원”이나 대학 내 축제·이벤트 관련 학과에서 전문 지식을 쌓고 재단에 입사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중이다. 코로나 시기에도 ‘온라인 축제’를 기획·운영한 덕분에 다른 업종보다 타격을 덜 받았고, 최근에는 오히려 경력이 쌓인 인력들이 축제 기획, 심사, 컨설팅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추세다.
“축제 산업이 발전하면 그 지역 자체가 청년 창업이나 예술·문화 기업 유치에도 훨씬 유리해져요. 소멸 위기라 불리는 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이 오히려 ‘지역에서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정착하려면, 지역은 새로운 콘텐츠와 문화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야간형 축제와 신 야간 경제 시스템을 잘 갖추면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밤에도 갈 곳이 없는’ 도시가 아니라, 야경과 문화, 역사가 살아 있는 지역이라면 분명 관광객도, 젊은 인재도 찾아오죠.”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축제 노하우와 트렌드를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정강환 교수가 총괄하는 ‘Global Festival Summit 2025’(글로벌 페스티벌 서밋 2025)가 그 해답을 제시한다. 3월 18일부터 21일까지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미국,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15개국의 축제 전문가, 도시활성화 재단 관계자, 공무원 등 총 200여 명이 참석해 각자의 사례와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번 2025 세계축제정상회의는 축제에 관심 있는 지자체, 민간 재단, 기업, 그리고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특히 3월 19일 열리는 ‘세계축제의 성공 비밀’ 워크숍은 별도 유료형 전문가 세미나로, 전세계축제 CEO들의 성공 이야기를 밀도 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신 야간경제와 축제 산업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반드시 와서 경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서밋에는 세계축제협회(6개 대륙 지회)를 총괄해온 스티브 슈메이더(IFEA World 회장), 미국3대 축제인 파사디나 로즈 퍼레이드 CEO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슈퍼볼 세레모니 관련 대표들, 호주의 메가이벤트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 미국 필라델피아 플라워쇼의 감독 등 세계 주요 축제를 이끄는 스타급 인사가 총출동한다. 국내에선 다시 열리기 힘든 자리다.
중국 청도맥주축제, 태국 핏사눌록시의 빛과 소리축제, 말레이시아 팡코르 섬축제 등 아시아에서도 도시 관광과신 야간 경제를 결합해 성공한 수많은 축제 사례가 소개된다. 특히 아일랜드 슬라이고·더블린의 신야간경제 축제를 통한 도시재생 사례가 주목된다. 실업률이 높고 범죄가 잦았던 구역을 야간형 축제와 안전프로그램으로 바꿔낸 성공담이 상세히 공유될 예정이다. “인구 2만~3만명의 소도시에서 시작된 신 야간경제가, 어떻게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높였는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정 교수의 설명이다.
개최지인 경주는 오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행사를 앞두고, 전 세계축제 리더들에게 고대 신라의 역사 유산과 야간 문화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이번 서밋을 계기로 “경주가 가진 세계유산 및 국가 유산을 축제와 연계해 도시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경주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상징적 도시입니다. 보문관광단지부터 첨성대 일대, 동궁과 월지, 황리단길까지 어디를 가도 어마어마한 스토리와 역사 콘텐츠가 펼쳐져 있죠. 야간조명, 미디어아트, 퍼레이드, 마켓, 체험 행사 등 신 야간 경제 모델을 도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습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경주는 이미 여러 차례 야간형 관광의 매력을 인정받은 도시다. 옛 궁터와 왕릉이 환하게 빛나는 밤 산책 코스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이번 글로벌 축제 서밋이 경주의 국제적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도 해외로 축제를 ‘수출’할 시기가 왔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 독일 옥토버페스트, 캐나다 윈터루드 등 잘 알려진 해외 축제들과 문화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 온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한국의 축제 노하우가 주도적으로 세계에 나아갈 때라는 것이다.
“이미 보령머드축제는 미국이나 스페인, 태국 송끄란 축제와 MOU를 맺어 교류했고, 진주남강유등축제도 캐나다 오타와의 윈터루드와 협력해 현지에서 등을 전시하며 호평받았습니다. 그야말로 ‘K-축제’가 될 수 있어요. 최근 한류 붐으로 인해 해외 바이어와 언론의 관심이 상당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조금만 더 용기 내어 이 교류와 산업화를 제대로 지원한다면, 해외 곳곳에 ‘K-축제’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관련 상품을 역수출하며 새로운 한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정 교수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결론은 분명했다. 한국의 축제는 행사 당일의 흥겨움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산업·문화를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창구여야 한다는 점이다. 관 주도 위주로 획일화되는 축제가 아니라, 민간 전문 인력이 상시체제로 운영하고, 지역 청년과 시민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가는 신야간경제형축제가 될 때, 지방소멸 위기는 비로소 해소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축제가 구태의연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개발 엔진’으로서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외부 관광객에게는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를,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개척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야간축제는 이 모든 요소를 한층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도시가 지속해서 발전하려면 ‘밤이 살아 있는 도시’ ‘밤이 안전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는 “이번 경주의 글로벌 페스티벌 서밋이 이 모든 담론이 활발히 오가는 기회의 장이 되길 바란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지역을 살리고 싶은 지자체장과 기업, 그리고 창의적인 도전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페스티벌 경영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그의 확신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오래 남았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