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도시의 밤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처럼 밤을 단순 소비 시간으로 보는 접근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밤을 관리하는 도시 정책 구조가 요구된다. 대표 사례가 바로 ‘야간시장(Night Mayor)’ 제도다.
도시 신야간경제의 성공 여부는 특정 야간구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성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반 시장이나 공무원이 밤을 새워가며 이 역할을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경제를 관리하려면 24시간 근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야간에 특화된 안전, 야간산업, 도시 야간경관 관리, 산·관·학 협력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직제, 바로 야간시장 제도가 필수적이다. 이 직제는 창의적으로 신야간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전담 역할을 하며, 한국의 야간경제 활성화에도 혁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야간시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도입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범죄와 소란이 만연했고, 주민과 관광객 모두 불안에 떨었다. “도시의 밤을 지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비영리 재단 중심 논의가 이뤄져 2012년 미릭 밀란(Mirik Milan)이 초대 야간시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24시간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야간산업의 영업시간을 늘렸고, 범죄와 음주 사고가 많던 렘브란트(Rembrandt) 광장에는 ‘광장 지킴이’를 배치해 사건 발생 건수를 대폭 줄였다.
런던의 시장 사디크 칸(Sadiq Khan)은 2016년 에이미 라메(Amy Lame)를 야간시장으로 임명해 야간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정책을 펼쳤다. 야간 대중교통 서비스, 여성의 야간근로 안전, 심야 쇼핑 활성화 캠페인 등을 추진하여 런던을 24시간 활력 넘치는 도시로 만들었다.
브리스톨은 독자적인 문화산업 발전과 더불어 도심·지방 연결을 촉진하며, 신야간경제 등 도시혁신 정책을 확산시키고 있다.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도심을 즐기는 기업과 근로자, 관객을 지원하는 사람 중심 해결책을 설계해 모델 사례로 부상했다. 브리스톨은 영국 최초의 위해감축(Harm Reduction) 정책, 여성안전 헌장, 야간근로자 웰빙 프로그램 등 혁신정책을 주도해 신야간경제 발전의 중심으로 변모했다.
지난 2024년 12월, 대한민국 대표단과 함께 더블린 시의회 간담회에 참석해 아일랜드의 9개 시범도시 중 4곳 야간시장을 직접 만났다. 이들은 중앙정부가 선발해 각 지역에 파견된 젊은 인재들이다. 이들이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며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일 만하임 역시 야간문화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야간을 조율·지원하는 정책으로 도시 생태계 전반을 개선했다.
도시의 야간을 이끄는 주체는 단순 관리자가 아니다. 도시의 야간을 경영하고 주도하는 핵심 세력이자 전략가다. 초기 유럽에서는 비영리 단체 출신의 민간인이 야간시장을 담당했지만, 제도가 확산됨에 따라 점차 시청이나 시장 중심의 관주도 형태로 발전하고 조직도 강화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야간시장은 야간 문화, 교통, 공공질서 등 도시의 밤을 총괄하며 현재는 전 세계 80여 도시로 확산됐다.
야간시장 제도는 범죄 억제를 넘어, 네덜란드나 독일을 시작으로 야간 생활과 문화를 보존·재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확산 과정에서 치안 유지, 유흥산업 성장에 따른 피해 대책, 과도한 상업화 방지, 문화 다양성 확보, 야간 대중교통 강화 등 역할이 확대됐다.
야간시장은 건축·교통환경 같은 하드웨어 개선과 프로그램·서비스 등 소프트웨어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며, 불법행위를 최소화하고 야간 활동을 촉진한다. 또한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중재와 합의도 주도한다. 현재 20여개국, 40여 도시가 이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뉴욕은 2018년 ‘야간문화생활 정책실’을 설치해 선임행정관을 두었고, 시애틀, 디트로이트, 워싱턴 D.C. 등도 전담 부서로 도시의 밤을 관리하고 있다. 이는 도시의 밤에 대한 방치에서 적극 관리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중국 상하이는 아시아형 모델로 2019년부터 야간구장(夜間區長)과 야간생활(Nightlife) CEO 제도를 시작해, 15명의 야간구장, 98명의 야간생활 CEO가 시범구 지정, 보행환경·교통체계 정비, 문화관광 프로그램 확대 등을 맡는다.
한국에서는 세종시가 필자의 자문을 받아 문화관광재단 대표를 ‘야간 부시장’으로 임명하며 이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다만 야간시장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책적 지원의 한계로 인해 실험적 시도에 그치는 실정이어서 아쉽다. 야간 부시장은 도시의 밤을 더 안전하고 매력적인 문화·관광·상업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마련된 아이디어다. 단순한 실험에 머물지 않고 정책적 보완을 거쳐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방 소멸 위기와 관광 경쟁력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도시의 밤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활력을 상실할 수 있다. 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처럼 이제 한국 도시에도 본격적인 ‘야간시장’이 시급하다.
한국 지방정부가 야간시장 제도를 확산하려면,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 중장기 로드맵 수립, 지역 특화 전략 개발이 필요하다. 조례, 예산, 조직 등 실질적 체계가 갖춰져야 하며, 단기 성과보다는 민관 협력과 지속 가능한 정책, 지역 축제·문화·예술 자원 연계 등 차별화 모델이 중요하다. 이런 전략은 지역 소멸 위기 극복과 도시 활성화의 핵심 해법이 될 수 있다.
신야간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문가 양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야간경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야간경제 구역을 설정하고,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확충해야 한다. 해외 선진 도시의 야간시장은 안전, 교통, 위생, 문화예술, 음식, 쇼핑 등 다양한 분야를 총괄 지휘·조정한다.
야간시장 제도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경찰, 소방, 상인회, 문화예술인 등 지역리더들이 협업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신야간경제 총괄관리자 임명은 그래서 더욱 긴요하다.
▶ 정강환 세계축제협회 아시아지부 회장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93년 배재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국내 유일 축제경영대학원인 배재대학교 관광축제한류대학원을 이끌고 있다. 한국 축제학 개척자로 꼽히며 100여 명의 석·박사 졸업생을 배출해 국내외 축제 리더를 양성해왔다. 50여 개 나라가 활동하는 세계축제협회의 아시아·한국지부 회장으로 활동하며 주민화합 중심에서 지역개발형 축제로 전환을 이끈 ‘축제계몽운동’을 30여 년간 진행해 축제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보령머드축제, 추억의 충장축제, 서구아트페스티벌 등 대표적 지역개발형 축제를 기획•개발했다. 정동야행, 진주남강유등축제 등을 통해 한국 도시의 야간 경쟁력 강화를 주창하고, 지방소멸 위기 해법으로 야간형 축제와 신(新)야간경제를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스페인 토마토축제, 캐나다 윈터루드 등 세계적 축제와 교류도 확대해 K-축제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9월 중순 세계 축제계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세계축제협회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70년 만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헌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