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도로 지하화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지고 계획이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상철도 지하화를 비롯해 경부고속도로나 동부간선도로 같은 주요 도로의 지하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업은 규모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수도권 일대 교통 시스템과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추진 중인 주요 도로 지하화 사업 현황과 의미 등을 꼼꼼히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가 서남권에서 도심을 잇는 지상철도 전 구간 약 68㎞를 지하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실현 가능성과 서울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된다. 현재 서울시내를 가로지르는 지상철도 구간의 94%에 달한다. 지하화 후 역사 용지(171.5만㎡)는 업무·상업·문화시설 등으로 복합개발하고 선로용지(122만㎡)는 대규모 선형 녹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월 2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오 시장은 “서울은 어느 지역보다 철도 지하화에 대한 염원이 크고, 지하화에 따라 변화·발전하면서 도시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며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철도 지하화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계획을 토대로 15개 자치구를 통과하는 서울 지상철도 구간 대부분을 국토교통부에 철도 지하화 선도 사업지로 제안한 상태다. 철도 지하화 선도 사업지로 선정되면 국토부가 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지자체가 기본계획을 세울 수 있다. 국토부에 제안할 서울시내 철도 지하화 구간은 경부선 일대 34.7㎞, 경원선 일대 32.9㎞ 등 모두 67.6㎞에 이른다. 구체적인 대상지로 서울역 등 39개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사업비는 경부선 일대 15조원, 경원선 일대 10조6000억원으로 모두 25조6000억원이 투입된다. 서울역과 용산역 등 핵심 구간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철도 지상 구간은 서울에서만 15개 자치구를 지난다. 특히 서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남권(구로·금천·영등포구)과 동북권(동대문·강북·도봉구)을 관통하고 있어 서울의 균형 발전을 위해 철도 지하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1년가량 빠르게 사업을 추진해 2026~2027년 설계, 2028년에는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철도 지하화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강남 개발과 서울 뉴타운 개발사업 이후 최대 규모 도심 대개조 사업이 될 전망이다. 핵심은 역사·역세권 복합개발이다.
서울시는 철도를 지하화한 후 역사 용지(171.5만㎡)는 업무·상업·문화시설 등으로 복합개발해 사업비를 조달하고, 선로 용지(122만㎡)는 대규모 선형 녹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투 트랙 개발’을 꺼내들었다.
역사 용지를 종상향한 후 고층 복합개발을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해 25조6000억원에 달하는 지하화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고갈되다시피한 서울 도심 내 주택용지를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지하화한 철도역 상부에 주택을 조성하게 될 경우 토지비 등을 절감하면서 초역세권에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어서다. 역사를 제외한 철길이 지나는 선로의 경우 복선 구간 등 비교적 넓은 곳을 제외하곤 대부분 좁고 기다란 ‘선형’이라 주변에 판매할 수 있는 땅이 많지 않다. 기존 철도 주변은 이미 주택과 건물 등이 밀집한 곳이 많아 이들까지 수용해 개발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서울시가 상부 공간 대부분을 ‘연트럴파크’와 유사한 숲길과 공원으로 쓰겠다고 발표한 배경이다.
서울시가 공식 발표한 철도 지하화 추진 구간은 도심 중앙 ‘서빙고역’을 기준으로 경부선 일대와 경원선 일대 등 총 2개 구간의 6개 노선이다. 이 구간에 위치한 철도역은 39개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부선(서울역∼석수역), 경인선(구로역∼오류동역), 경의선(가좌역∼서울역), 경원선 일부(효창공원앞역∼서빙고역), 중앙선(청량리역∼양원역), 경춘선(망우역∼신내역) 노선 등이 있다. 시는 역사와 주변 철도용지 지하화를 통해 생기는 개발 가능한 땅을 104만1000㎡로 추산하고 있다. 매각을 전제로 복합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지역에 오피스와 상업시설, 문화시설 등을 함께 짓는 복합개발을 추진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경제 거점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또 서울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역세권을 일반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구로역, 신도림역,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역(남부·북부), 신촌역 등이 거점역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용적률 1500% 이상(100층 안팎)의 초고밀 개발도 가능한 ‘한국형 화이트존(입지 규제 최소 구역)’인 공간혁신구역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심에서는 서울역~용산역 구간이 대표 수혜지로 꼽힌다. 특히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과 맞물려 진행되면 파급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와 건설업계에서는 땅값이 비싸고 용산과 연계 개발이 가능한 경부선이 선도사업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지하화의 가장 큰 문제는 건설 비용이다. 지상 철도로 인한 지역 단절과 공간 활용 비효율성 등으로 지하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번번이 비용 문제에 발목을 잡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서울시가 철도 지하화의 최대 관문인 사업비 조달에 자신감을 보여 향후 사업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사업비를 총 25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구간별로 경부선 일대 15조원, 경원선 일대 10조6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서울시는 공사채를 발행해 사업비를 조달하고, 약 104만1000㎡에 달하는 역사 용지를 개발해 이를 갚아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철로가 깔린 역사 용지의 용도지역을 종상향해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한 후 매각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서울역 역사 등은 지하로 내려가고 매각한 용지에 새로운 대형·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이를 통한 전체 개발이익은 31조원으로 추산됐다. 구간별로 경부선 구간 이익은 22조9000억원, 경원선은 8조1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역세권 개발의 대표적 사례가 광운대역세권개발사업이다. 서울시는 노원구 월계동의 약 15만㎡ 물류 용지를 상업업무용지 등으로 종상향해 최고 49층 높이 업무·상업·주거 시설로 조성하기로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처럼 대규모로 역세권 고층·고밀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기업의 입주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철도 용지를 지하화한 뒤 초고층 개발을 추진할 경우 안전성 확보 방안도 고려사항 중 하나다.
도로 지하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개 도로를 지하화하면 교통 여건은 물론 주변 기반시설과 공간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2일 서울민방위교육장에서 동부간선 지하도로 착공식을 가졌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는 오세훈 시장 재임 1기 때인 2009년 계획이 발표됐지만 실제 착공은 15년 만에 이뤄지게 됐다.
지하화가 완료되면 노원구 월계동부터 강남구 대치동까지 통행시간이 50분대에서 10분대까지 줄어들 수 있을 전망이다. 동부간선도로는 1991년 개통 이후 하루 차량 15만5100대가 오가는 주요 교통로이자 상습 정체구간이었다. 매년 여름 집중호우로 도로 침수가 반복되기도 했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은 월계동에서 대치동 구간에 대심도 지하도로(터널)를 설치하고 기존 동부간선도로 구간을 지하화하는 사업이다. 1단계(월릉~대치, 12.5㎞)로 교통개선을 위한 대심도 지하도로를 2029년까지 건설하고, 2단계로 기존 동부간선도로 구간(월계~송정, 11.5㎞)을 2034년까지 지하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착공에 들어간 곳은 1단계 구간이다. 중랑천과 한강 아래를 통과하는 소형차 전용 왕복 4차로 지하도로를 건설한다. 기존 동부간선도로 월릉IC와 군자IC를 이용해 진출입할 수 있고, 삼성·청담·대치IC를 새로 만들어 영동대로와 도산대로에서도 진출입이 가능해진다.
당장 동부간선도로 북측 종점부인 노원구와 도봉구, 경기 의정부시는 물론 중랑천 일대 동대문구, 중랑구 아파트 등도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서울 동북권 일대 부동산 시장에도 상당한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부간선도로와 중랑천 일대에는 창동·상계동 주공아파트 등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대표 단지가 대거 밀집해 있다. 북측 종점 부분인 의정부시나 양주신도시는 물론 월릉교와 대치동 사이 동대문구 장안동과 군자동, 중랑구 면목동, 광진구 중곡동 등도 수혜가 예상된다. 실제로 서울시는 중랑천 일대를 ‘수변 감성거점’으로 탈바꿈해 인근 저층 주거지, 재개발·재건축 등을 연계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한남대교남단~양재IC)도 지하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2026년 말에서 2027년 사이 착공이 목표다. 사업은 두 가지로 나눠 추진 중이다. ‘경부고속도로 화성~서울 구간 지하화’는 경기 용인시 기흥IC(나들목)에서 서울 서초구 양재IC까지 32.3㎞ 구간에 4~6차로 규모의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국토부가 2027년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 8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공사가 완료된다면 기흥IC 북쪽 구간의 교통량이 4만 대가량 줄어들고, 기흥에서 양재까지 통행시간도 30분가량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지하화한 경부고속도로 화성시 동탄 구간 1.2㎞ 상부에 연결도로를 개통한 후 동탄1,2 신도시에 예상되는 변화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지하 경부고속도로 상부에 조성되는 6개 도로 중 2개가 8월 말 개통했다. 나머지 4개의 연결도로는 올해 말 개통할 예정이다.
도로를 지하화하면 교통 여건은 물론 주변 기반시설과 공간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중에서도 기존 지상구간의 활용방안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 동탄 구간처럼 기존 도로를 공원으로 만들어 활용하면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이미 작업이 끝난 서부간선도로 지하화의 경우, 지하도로는 유료도로로 활용되지만 지상구간은 그대로 예전처럼 무료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다.
동부간선도로의 경우에는 중랑천 일대 지하화한 공간에 대규모 공원이 들어서고, 근처 아파트 동선이 연결되면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해외 선진 도시들은 이미 고가도로 철거, 도로의 지하화, 상부 공간 활용을 통해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보스턴 중앙간선도로 밑 터널 프로젝트를 말하는 ‘빅디그(Big Dig)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 지하 고속도로 ‘듀플렉스A86’,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 순환고속도로 ‘M30’ 등이 대표 사례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