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국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에 미치지 못하는 상장사들을 겨냥했다. 기업이 장부상의 가치만큼도 평가받지 못한 경우 효율적인 시장이라면 지분을 모두 사들인 후 자산을 전부 처분했을 때 차익이 발생할 것이기에 이 같은 불균형은 유지될 수 없다. 그만큼 PBR이 1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자본시장 전체와 기업 어딘가에 비효율이 누적돼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가순자산비율이 채 1배에 미치지 못하는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은행 등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지주사 종목들이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4월 15일 종가 기준 KB금융의 PBR은 0.53배에 불과하다. 시가총액이 26조7124억원인데, 장부상에 드러나는 KB금융이 가진 자산의 가치는 그 2배에 가까운 50조 4000억원가량 된다는 이야기다. 시장에 충분한 수준의 유동성과 효율성이 작동하고 있다면 26조원(사실 26조원까지 들일 필요도 없다)을 들여서 지분을 모두 사들인 뒤 자산을 청산해버리면 23조원이 넘는 차익을 누릴 수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일이지만 그만큼 한국의 자본시장이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날인 4월 15일 기준 하나금융지주의 PBR은 0.44배에 불과하다. 시가총액은 16조1965억원이다. 16조원을 마련할 수 있고, 자산을 장부가 그대로 처분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면 단숨에 수익률 100%이상을 낼 투자 기회가 있는 것이다. 같은 기준으로 신한지주의 PBR도 0.44배에 불과하고, 우리금융지주의 PBR은 0.34배로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10조원에 불과한데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투자수익률 200%짜리 기회가 있음에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는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제임에도 이것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비효율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정부의 K-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올 들어 시행되면서 금융지주 종목들의 주가 인상이 시작됐다.
4월 15일 기준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연초 대비 27.65% 오른 5만5400원으로 종가를 이뤄냈다. 1월에 10%, 2월에 18%가 오른 데 이어 3월에는 15%가 더 오른 6만5200원까지 고점을 형성했지만 마지막 주에 큰 폭으로 내려 해당 월 오름폭을 대부분 반납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KB금융은 올 들어 22.37%나 주가가 올랐는데 3월 중순에는 7만 8600원까지 오르며 연 상승률 45%를 넘기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주가가 조금 오른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도 올 들어 4%넘게 주가가 올랐다. 우리금융지주는 올 들어 4.31% 주가가 상승했는데, 3월 15일 고가 기준으로는 19% 넘게 올랐던 바 있다. 신한지주는 28.27%까지 상승하다가 4월 15일 종가 기준으로는 연 상승률 4.98%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크게 오른 데 대한 반발로 일시적인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된 탓에 상승폭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지만, 여전히 주가는 오른 상태다. 게다가 투자자별 누적 순매수 현황을 보면 외국인들의 지분 상승폭이 상당하다는 점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실제 신한지주의 외국인 누적 순매수 현황을 보면 4월 15일을 기준으로 최근 3개월 동안 외국인들은 141만 9177주를 순매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금융지주도 마찬가지다. 개인투자자들이 최근 3개월 동안 800만주 가까이 처분할 때 외국인은 502만 2682주를 순매수했다. 기관과 연기금도 각각 500만여 주, 230만여 주를 순매수했다.
KB금융도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3개월 동안 개인이 740만 주 가까이 순매도할 때 외국인은 585만 8289주를 순매수했고, 우리금융지주는 개인이 1217만주를 순매도할 때 외국인이 2352만 9157주를 순매수했다.
KB금융도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3개월 동안 개인이 740만 주 가까이 순매도할 때 외국인은 585만 8289주를 순매수했고, 우리금융지주는 개인이 1217만주를 순매도할 때 외국인이 2352만 9157주를 순매수했다.
당연히 외국인들의 지분율도 높아졌다. 4월 15일 기준 우리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41.83%로 연초 기록된 37.96%에 비해 4%포인트 가까이 올라갔다.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도 68.57%에서 2%포인트 가까이 올라간 70.41%로 높아졌다.
KB금융은 72.02%였던 외국인 지분율이 75.49%로 3.5%포인트 가까이 껑충 뛰었다. 올 들어 금액 기준으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산 우리 주식 종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KB금융은 6번째에 위치했고 우리금융지주는 11번째에 위치했다. 올 들어 외국인이 KB금융을 순매수하는 데 쓴 돈은 6070억원이 넘는다.
상대적으로 외국인의 매수세가 덜했던 신한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연초 60.24%에서 시작해 4월 15일 기준 61.26%로 1%포인트 남짓 올랐다.
계속해서 주가가 오를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주주환원이 계속될지 여부다.
이미 2023년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수치로도 이들 금융지주 종목은 높은 주주환원율을 보였다. 주주환원율은 당기순이익에서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쓰인 돈의 비중을 말하는데, KB금융이 가장 높은 37.5%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신한지주가 36%, 우리금융지주 33.8%, 하나금융지주는 32.7%를 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 및 자사주 매입에 지출했다. 2024년에는 주주환원율이 더 높아질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요구에 따라 주주환원에 대한 의지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4대 금융지주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35% 정도였는데, 시장은 2%포인트 정도 개선된 37%의 주주환원율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투자증권은 KB금융의 주주환원율을 지난해보다 1.8% 포인트 높아진 39.3%로 전망했고, 신한지주는 2.4%포인트 올라간 38.2%로 내다봤다. 우리금융지주는 1.2%포인트 개선된 35%로 봤고, 하나금융지주는 무려 4.2%포인트나 개선된 37.2%의 당기순이익을 주주들에게 돌려줄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금융지주사들은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 등을 통해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나금융은 중장기적으로 주주환원율을 5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로 내세웠고, 신한금융도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주주환원율 목표를 40%로 잡고 있다.
KB금융은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13%를 초과하는 자본을 주주환원의 재원으로 활용한다고 했고, 우리금융은 주주환원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면서 CET1이 13% 이상이 될 때 주주환원율을 35% 이상으로 상향한다는 방침이다.
CET1은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의 비율로, 납입자본과 이익잉여금 등 곧바로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위험도에 따라 평가한 자산 대비 몇 %나 쌓여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다. 위기 상황에서 금융사가 지닌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은행 주주환원율은 20%대 중반에서 50%로 가는 여정의 중간 단계”라며 “주주환원율이 중기적 시계에서 점진적으로 상향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에 걸맞은 밸류에이션 추가 개선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 전망도 좋다. 증권가에서는 KB금융의 올해 당기순이익은 4조9099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한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4조7793억원으로 같은 기간 6.7% 늘어나고, 하나금융지주(3조7434억원), 우리금융지주(3조1105억원)도 각각 7.9%, 18.4%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ELS 배상금의 경우 경상 이익에 포함되지 않아 배당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4대 금융지주 모두 분기 배당금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추가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올해 1분기 주당 배당금은 KB금융 550원, 신한금융 540원, 하나금융 620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분기 배당금은 각각 510원, 525원, 600원이었다.
증권가에서는 3월 하순 잠시 하락했던 금융지주 종목에 대해 비중을 확대할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은행주는 연초 이후 주가가 약 17.9% 상승해(카카오뱅크 포함 시 14.1% 상승) 동기간 KOSPI 상승률 1.9% 대비 큰 폭의 초과상승세를 보였다”면서 “이는 민생금융과 보수적 추가 대손충당금 적립 등으로 2023년 실적이 매우 저조하게 마무리되면서 2024년 중 기저효과에 따른 이익 개선 기대감이 컸던 데다, 대표적인 저 PBR 업종으로 정부 주도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따른 밸류업 모멘텀 등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외국인의 대규모 매수세에 힘입어 30% 넘게 파죽지세로 상승하던 주가는 3월 하순 이후 10% 이상 하락해 조정 국면에 진입했는데, 최근 주가 약세는 총선 결과에 따라 법 개정이 필요한 밸류업 세제 지원 혜택 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밸류업 모멘텀을 받았던 저 PBR 종목들이 전반적으로 조정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는 “최근 주가 조정 국면은 오히려 비중 확대의 기회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은행종목 전체의 평균 PBR이 아직도 0.37배로 밸류에이션 측면에서의 가격 매력은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최정욱 연구원은 “은행주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들도 여전히 국내 은행주에 대해 매수세를 지속하는 등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은행주의 흐름이 크게 부정적이지 않을 전망”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최희석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