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 서울시는 신반포2차 아파트 재건축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했다. 이곳은 반포대교 남단 한강변 최고의 입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재건축이 끝나면 낡은 아파트를 허문 자리에 최고 50층 2050가구 대단지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한강과 이어지는 산책용 숲길과 문화공원을 조성해 한강변의 대표 주거단지로서의 수변 여가문화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최고 층수 50층을 배치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서울시가 밀어주는 신통기획을 통해서다. 서울시 이번 행보가 주는 메시지는 강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확고하게 자리 잡은 한강변 층수규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만큼 확실하게 고층으로 아파트를 지어 주거상품성을 강화하고 대신 공공기여를 받아 혜택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안의 내용과 재건축 배경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준공 40년이 넘은 신반포2차 아파트는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한 곳이었다. 하지만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한강 조망권 확보와 평형배분 문제로 주민 간 갈등이 심각했다. 사업을 앞으로 끌고 나갈 동력을 쉽사리 찾기 힘들었다. 이에 서울시는 6개월 만에 층수 완화 등 한강변의 입지적 강점을 살린 신속통합기획안을 마련해 주민들의 공감대를 얻어냈다. 그러면서 사업은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조합 측이 내건 목표는 2024년 이주, 2028년 완공이다. 한강변 최고의 아파트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복안이다.
서울시와 조합 측이 합의한 계획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대원칙은 ‘수변 특화단지’다. 특화 디자인을 통한 한강변의 매력적인 경관을 창출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한강변 입지 특성을 고려한 녹지·보행네트워크를 만들고 주변을 도심 활력이 되는 생활가로 활성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하는 시설을 조성한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혁신적 디자인을 적용하는 조건으로 초고층 재건축 계획을 서울시가 허용한 것이다.
또 한강과 접한 주동 15층 높이 제한도 20층 내외로 완화했다. 한강변 주동 저층부에 필로티 구조 또는 개방형 커뮤니티 시설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서울과 한강을 상징하는 입체적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조합은 커뮤니티 안에 고급 영어유치원을 둔 영어 특화 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수립 중이다.
이용이 저조한 단지 북측 녹지를 정비 구역 내로 편입시킨 것은 이례적이다. 정비사업 과정에서 사업지가 기부채납을 통해 공유지로 편입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공유지가 정비사업 예정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역시 단지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복안이다. 걷기 편한 산책 숲길로 녹지를 가꿔 주변 지역주민 누구나 한강으로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업지 북측 녹지와 단지를 연계해 산책숲길을 조성하고 한강으로 연결되는 3개의 보행축을 마련할 예정이다. 기존의 반포나들목에 더해 서릿개 공원 쪽으로 나들목(입체보행교)을 추가 신설한다. 보행 잠수교와 연결되는 문화공원을 계획해 순환 녹지·보행네트워크를 완성한다는 구상도 세웠다.
서울시는 최근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잠수교를 전면 보행교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연계해 새로 생기는 문화공원이 한강 조망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수변 여가문화 거점이 될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또 주요 보행 동선을 따라 커뮤니티시설과 연도형 상가를 배치해 가로활성화를 유도해 수변으로 열린 단지를 조성한다. 이 단지가 한강을 접하고 있는 길이가 매우 길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신반포2차 아파트 재건축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되면서 연내 정비계획 결정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속통합기획의 절차 간소화에 따라 도시계획위원회 수권분과위원회 심의, 사업시행계획 시 관련 심의 통합으로 사업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론 일각에선 잡음도 들리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지나치게 많은 공공기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신통기획을 통해 단지를 재건축할 경우 높은 분담금과 임대주택 비율, 소형 아파트 위주의 설계가 확정적인 데 반해 공공기여분은 너무 많고 상가만 살리는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부 주민들이 하고 있다. 상당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신통기획을 통해 따낸 50층 최고 층수를 골자로 한 정비계획 전부가 사라지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한강변 층수 높이기 시도는 이미 재건축 진도를 많이 뺀 단지에서도 나오고 있다. 서울 반포주공 1·2·4주구는 최고 35층으로 정해진 층수를 49층으로 변경할지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이 단지는 과거 아파트 최고 층수를 42층으로 올리려다가 박원순 체제 서울시와 협의 끝에 뜻을 꺾고 35층으로 내렸다. 하지만 지난 1월 5일 서울시가 35층 높이 규제 전면 폐지를 담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확정 공고하며 ‘우리도 층수를 올리자’는 내부 움직임이 일었고 이제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이 단지가 층수를 높이려면 기존에 통과한 정비계획과 건축심의, 사업시행인가 등을 또 한 번 받아야 한다. 층수를 높이려면 지반도 더 튼튼하게 다져야 해서 여기서도 돈과 시간이 더 든다. 당연히 입주 시기도 늦어진다. 하지만 주거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업계에서는 이 단지가 최고층 갈아타기를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서울시 대치동 미도아파트는 강남 최초 50층 재건축 단지가 될 공산이 크다. 1983년 준공된 미도아파트는 지난해 11월 1000가구 이상 대단지 가운데 처음으로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을 신청해 사업이 확정됐다. 때마침 35층 규제 폐지 방침은 신속통합기획안에 반영됐고 미도아파트는 최고 50층, 3800가구 규모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강남권 ‘신속통합기획 1호’ 사업지 타이틀을 따낸 것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미도아파트는 초고층과 중저층이 섞여 있는 다양한 유형의 건물을 도입하기로 했다. 조망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다. 최고 50층으로 단지를 조성하지만 19만5080㎡ 부지 중심부에 타워형의 50층 주동을 배치하고 그보다 좀 더 낮은 아파트를 주위에 배치하며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 예정이다.
높은 용적률에도 빽빽해 보이지 않기 위해 통경축을 최대한 확보하는 내용도 계획안에 담겨있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에는 단지 방향으로 출입구가 신설되고, 역 출입구에서 보행자 동선을 따라 남부순환로 방향으로 가로변 상가도 들어간다.
이 밖에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는 65층,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와 여의도동 한양아파트는 50층을 추진 중이다. 부동산 시세가 높은 단지 곳곳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이에 더해 연신내 역세권 등 노후 도심을 공공 주도로 재개발하는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도 초고층을 지향하고 있어 앞으로 초고층 아파트는 더 쉽게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재건축 외에 공공재건축으로 지은 단지도 최고 49층으로 고밀 개발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7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서울 6개 도심복합사업 선도지구 밑그림이 되는 기본설계 공모 결과 당선작을 공개했다. 이번에 설계가 나온 곳은 증산4구역과 신길2구역, 도봉구 방학역 인근,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 도봉구 쌍문역 동·서측 등 6곳이다.
이곳은 지난 2021년 2월 문재인 정부 2·4 공급대책의 핵심사업인 도심복합사업으로 개발되는 곳이다. 도심복합사업은 공공(LH)이 주도해 노후 도심(역세권·준공업지·저층주거지)을 재개발하는 사업인데 용적률을 올려 받고 통합심의에 따른 절차 간소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역세권 유형인 연신내역, 방학역, 쌍문역 동·서측 등은 기본설계에 역세권을 고밀 개발하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개념이 들어갔다.
도심복합사업 지구의 용적률은 지난 2021년 9월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으로 법정 상한의 최대 1.4배까지 완화 가능하도록 적혀 있다. 고층을 올리기 쉬운 구조다. 연신내역 지구(392가구)는 용적률 650%를 적용해 최고 49층, 방학역 지구(424가구)는 용적률 600%에 최고 39층으로 지을 계획이다. 쌍문역 동(639가구)·서측(1428가구)은 각각 최고 39층(용적률 500%)과 45층(용적률450%)으로 들어선다.
주목할 점은 증산 4구역(3550가구)은 역세권이 아닌 저층주거지 유형인데도 최고 45층 높이로 설계된 점이다. 용도지역이 일반주거지역(1·3종)인 1블록(2449가구)은 300%의 용적률로 최고 40층, 준주거지역과 3종 일반주거지역이 혼재돼 있는 2블록(1101가구)엔 500% 용적률을 적용해 최고 45층으로 올라간다. 저층주거지 유형인데도 최고 층수 45층으로 설계된 것은 그만큼 고층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공공도 인정한 셈이 된다.
다만 단지별로 다양한 불만 목소리가 있어 사업이 순탄하게 흘러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초고층으로 지어준다고 주민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초고층으로 지으면서 혁신적인 설계가 들어가야 만족할 만큼 주민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뜻도 된다. 증산4구역 주민이 LH 설계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을 낸 게 대표적이다. 이에 당초 계획한 연내 착공은 이미 어려워진 상황에서 연내 사업시행인가조차 불투명한 상태가 됐다.
증산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40층 주동이 외곽에 배치돼 주변과의 단절을 초래한다는 점, 실거주 선호도가 낮은 북동향·북서향 세대가 많이 배정된 점, 세대 간 마주보는 ‘ㅁ’자 단지 배치로 사생활 보호가 어렵다는 점, 저층 위주 설계로 조망권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점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사업계획승인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이 설계안을 바꿔달라고 주장하면 불가능한 일이 된다. 국토부는 그간 수차례 “주민대표회의를 통해 주민의 정확한 의견을 반영하겠다”라고 밝혀왔다. 설계안 재검토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다만 서울시 총괄기획, 사전자문 등이 반영된 설계안이므로 원안을 아예 갈아엎은 전면 재검토까지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주민 의견을 반영해 세부적인 수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주민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