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투자자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확대 정책과 몇 년 전부터 심화되던 탈세계화 기조로 인해 글로벌 물가 상승 요인이 누적됐다. 여기에 올 초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트리거(방아쇠)가 되며 오랫동안 잊혔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이례적인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급격히 이루어졌으며 그 폭과 강도는 매번 예상을 뛰어넘어 투자 자산의 큰 손실이 일어났다. 수십 년간 저물가, 저금리에 익숙한 투자자들이 이제는 고물가, 고금리의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자산배분 관점에서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주식, 채권의 동조화로 시장 충격에 같이 노출되며 인플레이션 충격을 피해갈 수 있는 투자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대체투자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렇지만 원자재는 높은 변동성 때문에 부담스럽고, 부동산도 고금리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이미지에서 변동성이 커진 자산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올해 비교적 선방한 ‘자산배분펀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산배분펀드는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자산의 투자 비율을 조절하는 전략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주식·채권 비율을 조정하는 혼합형 펀드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그 대상도 글로벌 주식·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 원자재, 통화 등 다양한 배분 전략을 사용하는 펀드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주요 자산배분펀드를 비교·설명하고, 특히 좋은 성과를 낸 자산배분펀드의 투자 철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내년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TDF는 Target Date Fund의 약자로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시점(target date)으로 하고 펀드가 생애주기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조정하는 자산배분펀드다. 최근 연금펀드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 주식·채권의 자산배분을 글라이드패스(glide-path·생애주기에 따라 사전에 정한 자산 배분 곡선)에 맞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높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생애주기에 맞춰 운용하는 TDF 전략이 연금에 적합해 현재 연금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TDF는 투자 전략도 다양해졌고, 투자 자산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EMP펀드는 ETF Managed Port folio의 약자로, 전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d Traded Fund) 등에 분산 투자하는 펀드를 뜻한다. 운용사의 판단으로 운용하는 액티브펀드부터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빅데이터 기반의 자산배분펀드가 이에 해당한다.
EMP펀드들은 투자 대상이 ETF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다양한 전략에 따라 그 성과도 천차만별이다. 액티브 EMP펀드의 경우 운용사에서 정한 자산배분 비중에 따라 ETF 비중을 조정하는 기본적인 EMP펀드에서부터, 리스크 관리 전략을 넣어 특정 시나리오에서 위험자산을 줄이는 펀드도 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이나 딥러닝을 이용하는 등 AI를 활용한 펀드들이 나와 그 성과를 증명하고 있는 단계이다.
주식, 채권 간 상관관계가 깨진 올해는 EMP펀드 계열의 상품들이 고전했다.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지수초과 성과인 알파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웠고, 과거 자산 간의 상관관계 등을 활용하는 부분이 이례적인 상황에서 작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올해 가장 돋보였던 펀드 유형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액티브 자산배분펀드다. 오랜 역사의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전 세계 현지의 리서치 능력을 바탕으로 펀더멘털(기초체력) 분석으로 운용하여 오랜 성과를 검증받은 펀드들이 이에 해당한다. 차별적인 성과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철학을 알 필요가 있다. 이에 1908년 스코틀랜드에 설립된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의 자산배분 투자철학은 접근방식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첫째, 투자의 유연성(Investment Flexibility)이다.
둘째, 인내심, 펀더멘털 접근(Patient, Fundamental approach)이다.
셋째, 세심한 위험관리(Thoughtful risk manageme nt)다. 과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의 유연성을 갖고, 섹터별로 펀더멘털 중심의 투자를 한 것이 올해 같이 위험이 동조화되어 버린 시장을 이겨낸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의 자산배분 전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에 세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미래 시나리오에 따른 자산배분 전략을 세우자. 올해 미국의 금리 인상은 예상치를 넘으면서 통상적인 리스크 관리로는 대응이 어려웠다. 과거 리스크에 기반한 포트폴리오 관리에서 더 나아가 미래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따라 자산배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펀더멘털 접근이 필요하다. 톱다운 자산배분과 함께 바텀업(bottom-up) 투자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주식의 경우 실적의 변화가 있는지, 채권의 경우 개별 신용 리스크가 있는지, 원자재의 경우 기준지수와 차이(tracking error)가 나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자. 올해 금리 인상의 충격을 피해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단기적 리스크 방어로 포트폴리오 구성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올해 투자환경의 변화는 앞으로 인플레이션 뉴노멀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잘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미래의 포트폴리오 배분에서도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자산배분 전략으로 차별화된 성과를 낸 펀드의 운용방식을 배워 자신의 포트폴리오 관리에 적용해야 한다. 특히 수익에는 장기적인 관점을, 위험관리에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는 방식은 앞으로의 포트폴리오 관리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종걸 신영증권 투자자문부 솔루션 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