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공사 재개한 둔촌주공, 남은 이슈는… 7천억원 조달 비상, 분양가 인상 불가피
홍장원 기자
입력 : 2022.10.28 15:00:25
수정 : 2022.10.28 15:01:43
공사 중단 사태까지 갔던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재개됐다. 상가단체의 총회 일부 안건 상정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고 공사비 증액 등 조합의 총회 안건이 모두 통과되면서 공사가 재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분양 시기는 이르면 내년 1월이다. 다만 조합원 분담금이 크게 늘어나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부동산 시장 침체 상황에서 분양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10월 15일 서울 강동구 동북고등학교에서 열린 임시총회에서 공사 재개를 위한 23개 안건 전부를 통과시켰다. 시공단과 공사 재개 합의문 추인 및 공사비 증액, 새 집행부 선출 등 안건이 올라갔다. 공사 재개를 열망하는 조합원 열기는 뜨거웠다. 총 조합원 6150명 중 5436명(94.7%)의 찬성으로 가결됐을 정도다. 한때 조합 전체가 똘똘 뭉쳐 시공단을 맹비난할 때와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조합원들이 “빠른 공사 재개만이 살길”이라는 의견일치를 봤다는 뜻이다.
정상화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박승환 조합장 직무대행이 91%의 찬성을 얻어 새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정상화위원회는 조합 내 비상대책위원회 격이었다. 사실 정상화위원회가 출범한 초기만 하더라도 정상위가 이렇게 빠르게 조합원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이라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기존 조합의 행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민심이 크게 요동치며 90%가 넘는 조합원 찬성을 이끌어 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 연합뉴스>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위원회는 조합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금일 총회는 둔촌 역사상 최다 서면, 최다 참석의 기록을 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17일 공사가 다시 시작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공정률 52%를 찍고 중단됐던 공사가 반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큰 틀에서 조합이 파산할 위기는 넘겼지만 이제부터는 디테일의 싸움이다. 큰 전쟁을 끝내고 전후 복구 과정이 어쩌면 전쟁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전쟁 중에 정신이 없어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일단 앞으로의 대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다. 조합은 오는 11월 일반분양 승인을 신청하고 12월에 관리처분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 1월에 일반분양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보낼 수 있다.
▶입주권 6억원 넘게 하락한 상황
이 과정에서 일단 조합원들의 민심이 한차례 요동칠 수 있다.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담금 인상을 각각의 가구가 감내해야 한다. 시공단은 지난달 조합에 공사 중단에 따른 손실 보상금액 등을 반영한 변경도급금액으로 약 4조3677억원(부가가치세 별도)을 요청한 바 있다. 산술적으로 조합원 1인당 추가로 내야 할 금액이 약 1억8000만원에 이른다. 손실 비용을 반영한 최종 공사비는 한국부동산원에서 검증을 거쳐 약 2개월 뒤 확정된다. 검증 결과에 따라 조합원이 집단으로 볼멘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흉흉한 민심을 달랠 거의 유일한 카드는 일반분양가 인상이다. 분양가를 올린 만큼 조합원이 짊어져야 할 분담금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복잡하게 얽힌 고차방정식이 자리하고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늘어난 공사비를 분양가 인상으로 어디까지 충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분양가는 크게 택지비(땅값)와 건축비(공사비)를 더한 값으로 산정된다. 둔촌주공의 경우 분양가 인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비용(3644억원)과,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손실금액(1125억원) 등을 보전할 길이 사실상 없다. 건축비와 택지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분양가상한제 개선 방안에는 택지가산비 항목에 조합원 이주를 위한 금융비, 주거이전비, 명도소송비 등을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가산비 항목이 올라가면 둔촌주공 분양가도 평당 3600만~4000만원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3.3㎡당 분양가를 3600만원 이상으로 높이면 25평(전용면적 59㎡) 이상 아파트부터는 분양가 9억원을 넘긴다. 분양가 9억원이 넘어가면 중도금 대출이 하나도 안 나온다. 서울 안에서는 그동안 둔촌주공 분양 하나만 기다리며 청약통장을 아낀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가면 대출 없이 자기 돈으로 분양대금을 치러야 한다.
가뜩이나 전국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는 상황이다. 10월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10년 1개월여 만에, 수도권과 전국 아파트값은 2012년 5월 시세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10월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22% 떨어졌다. 지난주(-0.20%)보다 낙폭이 커졌다. 2012년 8월 마지막 주(-0.22%) 조사 이후 10년 1개월여 만에 최대 하락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1715건으로, 일주일 전에 비해 2.4%, 한 달 전에 비해 7.0% 증가했다. 매물이 늘며 노원·도봉구 아파트값은 이번 주 각각 0.40% 떨어졌다. 노원구 아파트값은 2012년 6월 마지막 주(-0.48%) 이후, 도봉구는 2013년 2월 둘째 주(-0.62%)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권에서는 송파구가 지난주 –0.27%에서 이번 주 -0.31%로, 강남구는 -0.13%에서 -0.15%로 낙폭이 확대됐다.
경기도와 인천 아파트값도 0.30%, 0.38% 하락하며 지난주(-0.26%, -0.31%)보다 낙폭이 확대됐다. 수도권 전체 아파트값이 0.28% 떨어지며 2012년 5월 한국부동산원의 시세 조사 이래 10년 5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한 것이다. 경기도에서는 광명시 아파트값이 0.44% 떨어졌다. 지난주(-0.40%)보다 낙폭이 확대됐다. 김포(-0.43%), 화성(-0.35%), 안산(-0.33%), 시흥(-0.32%) 등지도 매수가는 뚝뚝 떨어지는 분위기였다.
지방은 최근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해제에도 불구하고 하락폭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주 -0.39%로 낙폭이 다소 줄었던 세종시 아파트값은 이번 주 다시 0.45%가 떨어졌다. 대구(-0.26%), 부산(-0.20%), 대전(-0.31%) 등 주요 지방 광역시 아파트값도 지난주보다 더 많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전국 아파트값은 0.23% 내리며 지난주(-0.20%)보다 낙폭이 0.3%포인트 커졌다. 역시 2012년 5월 부동산원의 시세 조사 이래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것이다.
심지어 강남 핵심 지역인 반포에서 입주에 어려움을 겪는 단지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더샵 반포 리버파크’는 9월 26일까지 입주를 마쳐야 했지만 10월 15일 기준 총 140가구 가운데 20여 가구만 입주한 상황이다. 이 단지는 도시형생활주택이다. 2020년 분양 당시 3.3㎡당 분양가 7990만원을 기록하고도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던 곳이다. 올해 초만 해도 분양권 전매 호가가 25억원까지 올랐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한 것이다. 문제는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이 나오지 않으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거주 중인 주택도 팔아야 잔금을 낼 수 있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세금은 뚝뚝 떨어지고 있어 세입자 구하기도 쉽지 않다.
단지의 입주자예정협의회가 자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약 40% 이상이 계약 해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부동산 시세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왜 둔촌주공 분양가만 올라가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전용 59㎡ 분양가가 10억원으로 나올 때 시세차익은 얼마를 볼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둔촌주공은 완공 이후 송파구 헬리오시티와 비슷한 시세를 형성할 거란 예상 목소리가 많았다. 10월 기준 헬리오시티 전용 59㎡는 호가 기준 16억원대 후반에 나와 있다. 2021년 9월 기준 20억9000만원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이것만 보면 둔촌주공 전용 59㎡를 10억원에 분양받아도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헬리오시티 전용 84㎡가 지난 9월 13억8000만원에 직거래된 바 있다. 직전 달 공인중개사를 통해 거래된 같은 면적의 매매금액(22억원)보다 8억원, 작년 10월 최고가(23억8000만원)에 비해서는 10억원이나 낮게 거래됐다. 시세를 무시한 직거래라서 이 가격을 바로 시세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년 뒤 헬리오시티 가격이 이 부근까지 내려온다고 시장 참여자가 예측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용 84㎡가 13억8000만원까지 내려온다고 가정하면, 전용 59㎡가 10억원 부근까지 내려오지 말란 법이 없다. 당장 시세가 이렇게 급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수년 뒤 상황을 예측한다면 시장 참여자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재건축 공사를 다시 시작한 둔촌주공 아파트에서 건설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주변 시세 하락도 리스크
둔촌주공 재건축은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를 짓는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이다. 일반분양 물량은 4786가구에 달한다. 시공사업단은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로 이뤄졌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5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이후 순탄치 않았다. 2017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긴 이주 작업 끝에 2019년 12월 착공신고를 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분양가를 둘러싼 논쟁이 커져 당초 2020년 예정이었던 일반분양이 지연됐다.
HUG와 분양가 갈등을 벌이다 조합원 지지를 받지 못한 조합장이 중도 퇴임했다. 새로 임명된 조합장이 시공사와의 극한 갈등으로 사업 구도를 몰고 가며 급기야 공사가 중단됐다. 갈등 해결을 위해 서울시와 강동구청도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대로라면 공멸한다”는 조합원의 불안감이 커지며 사업에 정상화의 길이 열렸다. 이번 공사재개 이후 큰 변수가 없다면 입주는 2025년 본격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오랜 기간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온 셈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앞으로는 큰 갈등이 벌어지지 않기만 바라는 마음”이라며 “수차례 많은 문제가 불거지며 악재가 노출됐기 때문에 이보다 더한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