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계가 한국의 기준에 맞출 시간입니다”
정사무엘 한문화진흥협회장의 말은 선언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지난 20년간 쌓아온 결과에 대한 담담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한복이라는 전통적 상징을 앞세워 117개국과 연결된 민간 문화외교의 거대한 지도를 그려 나가고 있다. 그가 이끄는 협회는 연간 3000 건 이상의 국내외 문화행사를 소화하고 있으며, 대사관·국제기구·지자체·청년 인재를 유기적으로 엮는 민간문화 플랫폼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1983년생 40대 초반, 아직 젊은 협회장임에도 오랜 경험을 갖춘 그의 접근방식은 여느 단체와는 다르다. 문화가 단지 전시의 대상으로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외교는 형식이 아니라 공감의 기술이라는 믿음이 그를 움직인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세계 곳곳에서 실제 무대와 퍼포먼스로 입증되고 있다.
협회는 1984년, 故 정재민 초대 회장이 문화선교 목적으로 창립한 단체에서 출발했다. 해외선교나 외국 사절들에게 한국의 전통음식과 복식을 소개하며 작은 교류를 이어가던 조직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정난과 가족의 부도까지 겹치며 협회는 존속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바로 그 시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3세 청년 정사무엘이 운영을 맡겠다고 나섰다. 그는 곧장 이상봉 디자이너를 찾아가 무작정 패션 기획과 연출을 습득하며 세계에 우리문화를 알리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2009년 그는 ‘세계의상페스티벌’을 기획하며 첫 국제 행사를 열었다. 50개국 주한 외교단이 참석했고, 그 중 일부는 “이 청년의 말에는 무언가 진심이 있다”며 다른 외국 대사들에게 행사 소식을 전달해 참석을 독려하기도 했다. 외교부나 문체부의 공식 초청 없이, 맨몸으로 외교단을 움직인 그 첫 무대는 “민간문화외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그때 한 코스타리카 대사님이 중남미 대사들한테 직접 전화를 돌려줬습니다. 덕분에 외교단 스노우볼이 굴러갔어요. 저로서는 생애 첫 국제외교 성사였죠.”
비영리단체인 한문화진흥협회는 2008년부터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 정 회장은 이를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외부 재정에 기댈수록 본질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정 회장의 판단이었다. 대신, 외교 의전 행사, 수교 기념 콘텐츠, 문화 브랜드 컬래버 기획 등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협회 활동에 다시 투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른바 ‘민간형 선순환 시스템’이다.
단체가 자체적으로 행사 기획과 실행을 도맡고, 참가비·입장권·기념 굿즈 등으로 소액 수익을 창출하며, 다시 그것을 인재 육성·해외 진출·국내 콘텐츠 투자로 환원하는 이 구조는 “문화 단체도 자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 회장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먼저 움직이면 오히려 협력이 붙는다”라며, “우리는 정부 지원 없이 국제행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협회는 현재까지 100개국 이상의 외교 사절단과 1:1 실무 채널을 구축했고, 주요 국가와는 수교 기념일 마다 ‘전통복장 런웨이’ ‘수교 기념 합동 전시’ ‘대사관 개방형 리셉션’ 등을 정례화해 운영 중이다. 이 모든 네트워크는 자력으로 개척된 것이다.
협회가 ‘문화외교의 지속성’을 위해 가장 공을 들이는 영역은 의외로 ‘교육’이다. 여름·겨울방학마다 열리는 ‘유스앰버서더(Youth+Ambassador) 외교 아카데미’는 전국에서 선발된 중·고교생 100여 명을 3일간 초청된 권역별 대사들과 1:1로 토론하고 현장 의전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게 한다. 정사무엘 회장은 “23살에 대사를 처음 만난 뒤 시야가 완전히 열렸다. 이 경험을 더 어린 세대가 접한다면 한국의 문화외교는 10년은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참가 학생 전원은 각국 대사 명의의 표창장을 받고, 이후 국제기구·외교부·해외대학 등으로 진출한 선배들이 멘토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자리잡았다.
아카데미와 맞물려 운영되는 전문 의전교육 과정도 협회의 숨은 동력이다. 단순 통역을 넘어 ▶국기·좌석 배치 ▶종교·식문화 금기 ▶포멀 인사법 등을 체계화한 ‘프로토콜 매뉴얼’을 가르치며, 수료생들은 외교부·대사관·중앙정부 및 지자체 대규모 행사에 투입된다. “의전은 상대국에 대한 존중이자 국가 경쟁력”이라는 철학 아래, 협회는 국립현충원 참배 의전부터 APEC 개최국 문화투어 까지 민간단체로는 이례적인 범위의 실무를 맡아왔고, 그 과정에서 청년 의전요원들이 즉시 ‘글로벌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훈련장을 만들어냈다.
정 회장은 이를 “문화가 경제로, 교육이 외교로 이어지는 완결형 생태계”라고 정의한다.
협회가 펼친 해외 프로젝트들은 한복을 단지 ‘옷’이 아닌 ‘국가 브랜드의 핵심’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앙코르 프로젝트’다.
2025년 캄보디아 정부와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내부에서 최초로 열린 전통 의상 런웨이였다. 한국의 한복과 캄보디아 크메르 의상이 같은 무대에 서며, 의복을 통한 역사적 연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 개선문~에펠탑 구간의 한복 퍼레이드 및 공식촬영, 미국 존F.케네디센터 최초의 한복패션쇼, 독일 월드컵 경기장 한복 패션쇼, 세계4대박물관 대만 고궁박물원 한복패션쇼, 중국 올림픽 경기장 한복퍼레이드, 두바이 최대규모 전시회 주빈국 초청 한복전시, 카타르 한복전시 등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개최할 때, 현지인들이 음악을 끄고 경찰에 항의하던 행사였던 행사였지만 이제는 협조를 받아가며 개최되는 공식행사로 진행된다. 정 회장은 이 과정을 ‘문화외교의 진화’라고 본다.
“처음엔 우리가 세계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세계가 한복의 미학에 감동하면서, 우리의 리듬에 맞춰주기 시작했죠.”
정 회장은 문화 외교인이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산업 전략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의 한복 산업을 ‘생산보다 연출이 무너진 산업’이라고 본다.
“원단은 좋고 기술도 훌륭한데, 그걸 어떻게 세계 무대에 입히느냐는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우리는 아직 ‘한복 연출력’이 부족해요.”
그는 백화점 명품관에 일정 비율 이상 한국 문화 브랜드 의무 입점을 요구하거나, 전통혼례·공예 체험 등을 관광 패키지화해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를 위한 소비 동선을 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공공기관 예산 일부를 한복 관련 스타트업, 공예 소상공인, 장인 공방 지원으로 전환해 실질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문화는 감상이 아닌 ‘수익이 발생하는 산업’이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 회장의 가장 큰 비전 중 하나는 ‘세계 한복모델 월드파이널’이다 170여개국 모델들이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합창하고, 자국 언어뿐 아니라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 그것은 단지 패션쇼가 아니라, 한복이 ‘문화교류의 언어’이자 ‘한국의 정체성’으로 확립되는 순간이다. 그는 이 로드맵을 위해 ‘유스앰버서더(Youth+Ambassador) 아카데미’ ‘글로벌 한복모델 선발대회’’디지털 전통복식 콘텐츠 플랫폼’ ‘세계 각국 문화네트워크’ 등을 병렬로 구축하고 있다. 그 모든 노력의 핵심은 하나다. 한국문화를 통해 세대와 국가, 언어와 감정이 통하는 공감의 무대를 만드는 일.
“문화외교는 결국 사람을 잇는 일이에요. 어떤 공식보다 오래가고, 어떤 무기보다 강한 건 결국 진심에서 나오는 감동이죠. 그게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9호 (2025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