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부동산 규제지역이 해제됐다. 규제지역에서 해제되면 각종 대출, 세제에 대한 규제뿐만 아니라 분양권 전매 제한, 1주택 1순위 제한 등 청약 규제도 느슨해진다.
서울과 수도권 등 주택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서 부동산 규제가 풀리지는 않은 만큼 이번 조치가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기업 배후 효과가 큰 지역인 ‘여·순·광(여수·순천·광양)’과 신축 아파트 공급 갈등이 큰 대전지역 등은 규제 완화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산 해운대구 일대 아파트와 고층빌딩 모습. <사진 연합뉴스>
▶세종 빼고 지방 투기과열지구 해제
지난 6월 30일 정부는 대구 수성구와 대전 동구 등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고 있는 전국 17개 시·군·구를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규제 완화’가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도 이같은 신호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세금 중과, 규제지역 지정 등 수요 억제 정책을 정상화하고 공급 확대와 거래 활성화에 방점을 찍겠다는 전략이다.
이번에 투기과열지구가 해제된 시·군·구는 대구 수성구와 대전 동구·중구·서구·유성구, 경남 창원시 의창구 등 6곳이다. 지방은 세종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모두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됐다. 조정대상지역이 해제된 지역은 대구 동구·서구·남구·북구·중구·달서구·달성군과 경북 경산시, 전남 여수시·순천시·광양시 등 11곳이다.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은 규제를 해제할 경우 아직 시장 불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읍·면·동을 기준으로 안산 단원구 대부동동·대부남동·대부북동·선감동·풍도동 등과 화성시 서신면도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됐다. 이번 결정은 지난 7월 5일 0시를 기준으로 효력이 발생했다.
정부는 금리 인상 등 주택 시장 안정요인과 미분양 증가 등을 고려해 부동산 규제지역 해제를 결정했다. 다만 이번 규제지역 해제는 “주택 시장이 여전히 민감하다”는 이유로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정부가 과감한 ‘규제 철폐’보다는 시장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규제 완화’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국지적으로 집값 과열 여파가 남아있고, 특히 주거선호지역이나 일부 비규제지역의 상승세가 이어지는 추세로 볼 때 이들 지역의 부동산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실제 이번 부동산 규제 완화를 두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금리 인상과 미분양이 쌓이는 문제가 있어 규제를 풀기는 풀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조정대상지역 해제는 분양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하반기 지역별 주택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필요한 경우 연말 이전에라도 규제지역을 추가 조정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일부 지역에 국한됐지만 이번에 해제된 지역의 부동산 시장은 장기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곳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을 땐 실거래가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대출을 받지 못했고 9억원 초과 아파트는 LTV 20%, 9억원 이하 아파트는 40%를 적용받았지만 앞으론 9억원 초과는 30%, 9억원 이하는 50%가 적용된다. 총부채상환비율(DTI)도 40%에서 50%로 완화된다. 주택 분양권 전매제한도 최대 5년이던 것이 최대 3년으로 줄어들며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규제도 받지 않게 된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11개 지역의 규제 완화 폭은 더 크다. 대표적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를 면제받는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추가 과세에서도 자유로워지며 정비사업 지위 양도 제한 등 규제도 완화된다.
▶대기업이 떠받치는 여수·순천·광양
규제지역 해제로 주목받는 곳 중 하나는 이른바 ‘여·순·광’으로 불리는 전남 여수·순천·광양이다. 세 곳 모두 조정대상지역 해제로 완전한 비규제지역이 되면서 큰 폭의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여·순·광은 2~3년 전 지방 침체기에도 홀로 상승세를 보였던 곳”이라며 “원동력은 이들 지역에 들어선 대기업 종사자들의 높은 구매력”이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 롯데케미칼, 포스코 등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덕에 수요가 탄탄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충분히 기반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에 조정대상지역 해제로 시장이 반등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광양의 경우 5월 말 기준 전남 미분양 주택의 절반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입지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여·순·광에 6개 단지, 총 2858가구가 일반분양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분양된 5개 단지, 총 2141가구보다 717가구가 더 많은 수치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 청약통장 가입기간 6개월 이상이고, 지역·면적별 예치금만 충족하면 주택 수와 관계없이 세대구성원도 1순위로 청약할 수 있다. 또한 재당첨 제한이 없어 과거 당첨 이력이 있어도 청약이 가능하고, 계약 이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
이 지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이유는 2019년 11월 부산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후 아파트값이 뜀박질했던 사례가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부산은 2017년 10월 이후 규제지역에서 해제된 2019년 11월까지 25개월간 한 차례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가 상승한 적이 없었지만, 해제 이후 12월 0.55포인트 오르며, 상승 전환했다.
개별 단지를 기준으로도 부산 남구에 위치한 ‘대연 SK뷰힐스’ 전용 84㎡는 규제 해제 전인 2019년 4월 6억4200만원에 거래됐고, 해제 이후인 2020년 3월에는 7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1년 만에 1억5000만원가량 올랐다.
투기과열지구가 해제된 대전 역시 눈여겨볼 만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번 조치로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변경됐다. 완화 효과는 비규제지역에 비해 크지 않지만 최근 대전 주택 시장의 흐름 자체가 견조하다는 것이 분양업계와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전의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고 올해 청약을 진행한 6개 단지 모두 1순위 마감을 기록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대전은 노후 아파트 비율이 높아 새 아파트 대기 수요가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시장 전문가들은 대전 내에서도 세종시와 인접한 유성구와 서구를 주목하고 있다. 세종의 집값 흐름은 하락세지만 여전히 유입인구가 많고 올해부터 입주물량이 큰 폭으로 감소해 배후 지역으로 수요가 넘어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7668가구였던 세종시 입주물량은 올해 2284가구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 역시 1782가구로 집계됐다. 세종시가 여전히 투기과열지구로 묶여있는 점 역시 인접 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불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침체’ 대구는 급반전 무리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는 등 부동산 시장 침체 속도가 비교적 가파른 대구는 다른 규제 해제 지역들에 비해 다소 신중한 전망이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과거 다른 지역의 규제 해제 과정을 보면 당장 시장이 반응을 하지는 않는다”며 “특히 침체기가 길었던 대구의 경우 규제지역 해제로 당장의 분위기가 급반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대구의 KB부동산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6월 기준 64.8로 서울(78.0)은 물론 경기와 5대 광역시, 울산 등 타지역보다 낮다. KB부동산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일선 중개업소들을 대상으로 향후 3개월 후 아파트 매매가격을 전망하도록 해 작성된 지표로 지수가 100이면 ‘보합’을 나타내며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답변이 높다는 의미다.
다만 입지가 좋은 신규 아파트 분양은 노려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권 팀장은 “수성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서 전매 제한이 없어졌다”며 “분양 시장은 매매 시장보다는 조금씩 변화들이 도드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정보 업체 포애드원이 부동산R114의 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오는 7~8월 두 달간 대구에서 분양 예정인 아파트 물량은 총 7883가구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경기(2만3935가구)와 인천(9549가구)에 이어 가장 많은 공급량을 보이고 있다. 한 분양 관계자는 “입지적 측면에서 누가 봐도 괜찮은 단지들로 쏠림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수성구 외 지역이 고분양가 관리지역(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면서 신규분양 아파트들의 분양가가 오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권 팀장은 “현재와 같은 대구 시장 분위기에서 사업자들이 분양가를 올리는 모험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월세 수요를 겨냥한 기존 주택 매매도 고려해볼 수 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매매 시장이 위축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임대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비싼 신축 아파트를 사거나 분양받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를 구매해 전월세를 놓는 식의 투자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 본부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이 커지고 있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부동산 시장 변수는
부동산 규제지역 해제에도 부동산 시장에 신중론이 부쩍 커졌다는 점은 투자 결정에 앞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발생 등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대외 환경 변화에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주택 매수 심리도 급격히 위축된 상태다.
직방이 최근 주택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2022년 하반기 주택 시장에 대한 전망을 설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1727명) 중 61.9%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직방은 지난해 연말에도 2022년 주택 매매가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하락’(43.4%) 응답 비율보다 이번에 시장 하락을 예측하는 응답자 비율이 더 높았다.
지역별로는 서울(63.2%), 경기(63.7%), 인천(61.0%)에서 ‘하락’을 예상하는 전망 응답 비율이 60% 이상을 보였고, 지방 5대 광역시(59.5%)와 지방(58.0%)은 50%대를 보여 미미하지만 지역별로 차이가 나타났다. 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서는 유주택자(51.2%), 무주택자(72.4%) 모두 ‘하락’ 전망 의견이 과반수였다.
2022년 주택 매매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 증가’가 63.9%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현재 가격 수준이 높다는 인식으로 인한 수요 감소(15.0%)와 물가 상승 부담과 경기 둔화(12.1%),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완화에 따른 매물 증가(4.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