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에서 대형 IPO(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로 꼽히는 이벤트는 밀레니얼·Z세대(1989~2006년 출생자)의 인터넷 증권사로 꼽히는 로빈후드의 상장이었다. 로빈후드의 기업가치는 423억달러로 약 49조원이 넘는다. 또 국내에서는 카카오뱅크가 IPO에 성공해 국내 1등 금융사인 KB금융을 밀치고 시가총액 36조원을 돌파했다. 그만큼 주식시장의 눈이 네오뱅크로 쏠리고 있는 셈이다.
핀테크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토대로 금융의 편리성을 높이고 있다. 번거로운 암호 절차를 축소하고 은행 점포를 없애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할 수 있다. 거대한 은행보다 더 민첩하고 빠르게 경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핀테크들을 도전자 은행(Challenger Ban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상장을 앞두고 있는 거대 핀테크 스타트업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대 초반에 주로 생겨났다. 금융권에 대한 불신이 커진 데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성장하면서 시장이 커졌다.
이러한 핀테크들은 에어비앤비가 호텔을 혁신하고 우버가 택시업계를 혁신하는 방법처럼 금융권 시장을 침투한다. 프랑스 금융 컨설팅업체인 엑스톤컨설팅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256개의 네오뱅크가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에 매경럭스멘이 로빈후드와 같은 핀테크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와 2021~2023년 IPO를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대표 핀테크 스타트업을 살펴봤다.
3100만 명이 사용하는 인터넷 증권 로빈후드
▶금융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초대형 핀테크, 금융포털로
일반적으로 핀테크는 환전, 송금, 대출, 증권, 직불카드, 신용카드 같은 특정업무로 서비스를 시작하지만 고객 수가 불어나면서 궁극에는 인터넷의 포털처럼 금융 전 영역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로빈후드마켓이다. 올해 7월 29일에 상장한 로빈후드는 34.82달러로 거래를 시작한 뒤 일주일도 안 돼 70달러까지 솟구쳤다가 현재는 5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로빈후드를 서비스하는 로빈후드마켓은 2013년 스탠퍼드대 출신인 바이주 바트와 블래디미어 테네브가 ‘부유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모토로 의적 로빈후드에서 이름을 따 만든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청년 둘이 8년 전 설립한 이 스타트업은 오늘날 고객 3100만 명(활성사용자 1800만 명), 고객자산 규모 800억달러(약 91조원)라는 초대형 핀테크로 발돋움했다.
이들 핀테크의 가장 큰 특징은 편리함이다. 로빈후드마켓이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도 손쉽게 주식을 접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일반적으로 부과하던 증권거래 수수료를 없애고 게임처럼 손쉬운 유저 인터페이스(UI)를 구축했으며 소수점 단위로 주식을 살 수 있도록 주식 분할거래 기법을 도입했다.
로빈후드 사용법은 마치 게임과 유사하다. 가입은 이메일 입력만으로 이뤄진다. 18세 이상으로 미국 내 주소지와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면 PC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바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특히 초대 링크를 통해 가입하면 랜덤으로 주식 1주를 받을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애플·테슬라 같은 값비싼 빅테크 주식을 받기도 한다. 앱은 게임 같다. 주식 계좌로 돈을 이체하면 바잉파워 레벨이 올라간다. 또 매수·매도는 주식을 검색해 수량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성공을 발판으로 로빈후드는 현재 주식을 비롯해 펀드·옵션·가상화폐까지 영역을 넓힌 상태다. MZ세대 눈높이에 맞는 UI와 친절함에 급속도로 성장세를 달렸다. 올해 기준 평균 사용자 연령이 31세로 낮고 중위 잔액은 240달러에 그칠 정도로 소액이다. 앱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활성사용자는 2015년 50만 명에서 이듬해 2배로 성장했고 2019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 현재 1800만 명에 달한다.
로빈후드가 수수료 없는 중개 앱을 운영하고 있지만 매출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해 매출은 9억59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매출 원천은 크게 부분 유료 서비스, 투자자 주문 정보 판매(PFOF·Payment For Order Flow), 고객 예치금을 활용한 대출 장사다. 만약 로빈후드 사용자들이 시간 외 거래, 마진 거래, 고급 주식시장 정보를 얻으려면 월 5달러를 내고 로빈후드 골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또 로빈후드는 1800만 명 고객이 어떤 종목을 사고파는지 실시간 주문 데이터 정보를 다른 증권거래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내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고객 정보를 활용해 돈을 벌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그럼에도 로빈후드는 의적을 지향하고 있다. 상장을 앞두고 연 투자자 설명회에선 35%에 달하는 공모주 물량을 로빈후드 앱 사용자에게 할당한다고 밝혀 주목을 끌기도 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투자은행(IB) 등이 공모에 참여하지만 일반 투자자 물량을 최대한 배정해 로빈후드가 ‘금융 민주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였다. 테네브 공동창업자는 CNBC와 인터뷰에서 “오늘날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은 예전 미국인이 주택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면서 “수수료 제로 시스템을 통해 모든 미국인을 위한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 무대를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1800만 명이 선택한 챌린저뱅크 차임(Chime)
▶1800만이 선택한 챌린저뱅크 차임(Chime)
대표적인 핀테크들 역시 로빈후드와 버금가게 높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편리하고 저렴하고 접근성이 좋다. 미국에서 로빈후드를 이을 핀테크 IPO의 대표주자로는 차임(Chime·대표 크리스 브리트)이 꼽힌다. 차임은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디지털 전용 뱅킹 스타트업이다. 올해 8월 총 7억5000만달러(약 8767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현재 IPO를 준비 중이다. 특히 이번 투자 유치로 기업가치는 250억달러(약 29조2250억원)에 달했다. 앞서 로빈후드가 기업가치 350억달러(약 40조3000억원)를 목표로 상장한 것을 고려할 때, 차임이 상장을 하면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스타트업의 분위기다.
크리스 브리트 차임 대표는 창업 당시 미국 뱅킹 시스템이 낙후됐다고 판단하고 철저히 고객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가 금융 분야에서 근무한 것이 계기였다. 은행계좌를 열어주는 업무를 하면서 불편한 점을 절감한 것이다.
한국에선 통장을 보유하고 직불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해도 별도의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미국은 다르다. 다른 통장으로 이체만 해도 수수료가 10달러 이상 발생하고 신용이 없다면 일정 규모의 금액을 예치해 두지 않을 경우 매달 수수료가 발생한다. 또 은행 간 이체는 며칠이나 걸리기도 한다.
차임이 노린 것은 바로 이러한 페인포인트다. 차임은 수수료 무료, 급여 조기 지급 서비스, 수수료 없는 마이너스 통장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일반 은행과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 인허가를 받지 않아 은행이라는 타이틀은 아직 달지 못했지만 ‘도전자 은행’이라는 별칭은 있다.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제로 금리에 가까운 미국에서 연이율 1%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한다. 이는 미국 내 이자율 기준으로 상위 6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전국 평균은 0.06%다. 또 미국 3만8000개 ATM과 연동돼 있어 지정 ATM에서 무료로 인출이 가능하다.
또 다른 공략 지점은 신용이다. 차임은 신용이 없는 미국인들을 위해 신용 빌더(구축)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신용에 따라 차량을 구입할 때 이자율이 달라지고, 월세를 구할 수 있는 집이 달라지기도 한다. 차임은 이런 점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신용 빌더 서비스를 내놓았다. 차임을 이용할수록 일반 은행보다 더 빨리 신용이 쌓이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차임에서 계정을 만들고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그만이다. 예금을 한 뒤 지출 한도를 설정하고 사용하면 된다. 매달 납기일까지 잔고가 비지 않으면 신용이 올라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연회비나 유지비·보증금·수수료 등은 없다. 소비자가 신용카드를 쓴 결과는 신용조사기관인 트랜스유니온·익스페리언·에퀴팩스 등에 보고가 되고 그 결과 신용점수가 쌓인다.
이러한 사용자 만족에 현재 사용자 수는 1310만 명으로 전년에 비해 30.78% 급증했다. 2025년에는 2270만 명이 사용할 것이라는 핀테크 업계의 분석이다.
크리스 브리트 차임 대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더 많은 디지털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도 현금을 직접 만지기를 원치 않죠. 또 온라인 쇼핑 관련 지출이 늘어나면서 관련 산업이 증가하고 있고요.”
차임이 수익을 내는 방식은 환전 수수료와 ATM 수수료 등 두 가지다. ATM의 경우 차임과 가맹을 맺지 않은 지점에서 인출을 할 때 인출액의 2.5%를 청구하는데, 전체 매출의 21%가 ATM 수수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작년 매출액은 6억달러(약 7014억원)로 전년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했다. 고객이 가맹점에서 쓰는 돈 중 1.5%는 비자카드로 흘러가는데 이 금액의 일부를 차임이 나눠 갖는다. 현재 차임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상반기 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는 브라질의 1등 핀테크 누뱅크
▶미국 상장을 노리는 남미의 빅테크 핀테크 ‘누뱅크’
금융권을 흔드는 핀테크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카카오뱅크로 꼽히는 누뱅크(Nubank·대표 데이비드 벨레즈)가 대표적이다. 누뱅크는 2022년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등을 IPO 자문사로 선정한 상태다. 올해 6월에 7억5000만달러(약 8767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만 300억달러(약 35조700억원)에 달한다. 브라질의 1등 핀테크로 꼽히는 누뱅크는 콜롬비아인 데이비드 벨레즈가 2012년 설립했다. 벨레즈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캐피탈의 상파울루 지점에 취업을 약속 받았지만 계약 취소로 창업자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사례다.
누뱅크가 네오뱅크를 설립한 계기는 브라질의 낙후된 금융 환경이었다. 살인적으로 높은 대출 이자율에 저신용자들을 나 몰라라 하는 은행의 고압적인 태도로, 저신용자들을 위한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5개 대형 은행의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해 저소득층을 공략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차임이 공략한 것이 직불카드라면 누뱅크는 신용카드를 먼저 공략했다. 2014년 신용카드 발급을 시작했는데 당시 브라질 신용카드의 이자율은 최대 400%에 달할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누뱅크는 가입비도 없애고 이자율도 크게 낮췄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2016년까지 100만 명에 달하는 고객을 유치했고 2017년 마침내 디지털 은행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누뱅크는 지난해 매출 9억6300만달러, 사용자 수 4000만 명에 육박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객 4명 중 1명은 처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사람들이며, 630만 명은 최저임금 생활자로 은행 문턱이 높았던 이들이다.
누뱅크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은행인 만큼 채용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존중한다. 직원 4000명 이상이 있는데 이들의 국적은 43개국에 걸쳐있다. 또 여성 직원이 전체 43%에 달하며 성소수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설의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웰스파고 지분 상당수를 매각하고 누뱅크에 투자한 것은 이러한 핀테크의 부상과 무관치 않다.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보험을 찾고 가입할 수 있는 N26
▶유럽 금융권의 우버 ‘레볼루트’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레볼루트(Revolut)는 해외 환전에 집중하다 영역을 넓힌 핀테크다. 올해 7월 55억달러(약 6조4295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해 현재 기업가치만 330억달러(약 38조5770억원)에 달한다. 창업자인 니콜라이 스토론스키는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방크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며 금융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고 또 다른 창업자 블라드 예첸코는 리먼 브라더스 크레디트스위스에서 수수료 시스템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도 앞서 다른 핀테크 창업자처럼 낙후된 금융 서비스 환경을 개혁하기 위해 창업을 택한 사례다.
둘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막대한 환전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졌고 2015년에 금융계의 우버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레볼루트 서비스를 선보였다. 레볼루트 앱은 현지에서 손쉽게 환전과 송금을 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현재는 영역이 무척 넓어졌다. 서비스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무료 서비스는 해외 카드 결제, 해외 송금 서비스, 영국 은행으로 송금, 비트코인 이더리움 사용 서비스 등이다. 또 한 달에 9.99달러인 프리미엄 서비스를 구독할 경우 해외여행 시 의료보험을 지원하며 항공사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다. 또 글로벌 특급 배송이 가능하다.
레볼루트가 다른 핀테크와 다른 점은 어느 한 국가에서만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30개 국가에서 레볼루트를 사용할 수 있다.
영국은 핀테크의 본고장답게 레볼루트 외에 다양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400만 회원을 보유한 몬조(Monzo)가 대표적이다. 은행 계좌, 저축, 대출 등을 모바일로 제공하고 있으며 마스터카드와 연동해 신용카드를 제공하고 있다. 몬조는 현재 런던에서 IPO를 준비하고 있다. 스탈링뱅크도 네오뱅크로 꼽힌다. 영국뿐 아니라 해외에서 대출을 신청할 수 있으며 송금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스탈링뱅크는 최근 플릿모기지스(Fleet Mortgages)를 인수하며 모기지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22년 IPO가 목표다.
유럽으로 시선을 넓히면 2023년 IPO가 목표인 베를린에 본사를 둔 N26이 있다. 개인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레볼루트와 유사하게 무료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다만 N26는 앱 내에서 보험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심플슈어런스와 손잡고 다양한 보험 상품을 맞춤형으로 추천해주고 있다. N26는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이 투자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