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서울 산사에서 누리는 고요한 시간… 마음의 정원, 북한산 진관사 산책
안재형 기자
입력 : 2021.01.07 14:26:27
수정 : 2021.01.07 14:31:49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자리한 진관사는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사찰로 손꼽히는 명찰(名刹)이자 명승지(名勝地)다. 최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방한 당시 찾은 인연과 재계의 거목이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49재가 치러졌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물론 이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도와 산책이다. 진관사가 ‘마음의 정원’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옥마을에서 시작되는 산책길
대부분 산사의 둘레길이 등산코스의 곁길인데 반해 진관사로 향하는 길은 은평구 한옥마을에서 시작된다.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 한옥마을과 비교해 현대적인 감성이 더해진 이곳은 은평 뉴타운 개발 당시 한옥지정 구역을 조성하며 기와를 올렸다. 카페와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전시관 등이 이어져있는데,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서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실제 주거공간이 펼쳐진다. 내부를 현대적으로 개량했다고는 하지만 외부의 정취는 옛것 그대로다. 사각형의 두면이 만나 서로 배를 맞대고 있는 맞배지붕, 지붕의 양쪽이 화려한 팔작집, 집의 뼈대를 받치고 있는 주춧돌까지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게 없다. 여기에 시선을 멀리두면 어디서든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2층 한옥의 지붕에 걸린 봉우리는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여기서 잠깐 북한산을 언급하면,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은 서울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고양시에 걸쳐 자리했다. 북한산성을 축조한 뒤 북한산으로 불리고 있는데, 산 정상인 백운대(白雲臺)는 835.6m에 이른다. 그 동쪽에 인수봉(仁壽蜂·810m), 남쪽에 만경대(萬景臺·779m) 등 세 봉우리로 이뤄진 산이라 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불린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인 구파발역에서 버스로 약 5분이면 산 입구에 닿아 늘 등산객이 붐비는데, 한옥마을을 거쳐 가는 등산코스도 있어 평일에도 등산복을 입은 이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한옥마을에서 들러야 할 곳은 ‘셋이서 문학관’과 ‘삼각산 금암미술관’이다. 한옥마을의 첫 한옥인 셋이서 문학관은 천상병, 중광스님, 이외수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모두 은평구를 거쳐 간 문인들이다. 1층은 북카페, 2층은 작가들의 개인공간이 자리했고, 작가들이 직접 썼다는 원고지와 집기들이 전시돼 있다. 한옥 속 미술관이란 테마로 운영 중인 삼각산 금암미술관에선 우리 문화와 관련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한옥마을을 한 바퀴 휘휘 돌아 나와 다시 진관사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면 ‘백초월길’이란 이정표가 선명하다. 2009년 사찰을 전면 보수할 당시 칠성각 내부 해체 과정에서 불단과 기둥 사이에 한지로 된 큰 봉지가 발견됐다. 그 안엔 태극기를 보자기처럼 사용해 싸여있는 독립신문 등 20여 점의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있었다. 보자기 역할을 한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그린 것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제작했고, 발견된 사료들은 당시 진관사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칠성각 벽 속에 숨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극기의 형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지정한 태극기의 모양과 정확히 일치한다. 빛이 차단된 밀폐공간에서 90여 년간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백초월길은 당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백초월 스님을 기리기 위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진관사 일주문에 도착한다.
일장기 위에 그린 진관사 태극기
▶마음의 정원에서 즐기는 겨울
일주문을 지나면 살짝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가 진정 진관사다. 고려 제8대 현종(顯宗)이 서기 1010년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해 창건했다는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명령으로 고려 왕 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봄·가을로 큰 제사인 ‘수륙대재(水陸大齋)’를 베풀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된 이곳을 다시 살린 이는 1963년 주지로 부임한 비구니 진관(眞觀) 스님이었다. 30여 년간 진행된 복원 작업으로 현재 진관사는 현재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독성각, 나가원, 홍제루, 동정각, 동별당, 요사체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진관 스님은 외형적인 복원과 함께 1977년부터 수륙대제 복원에도 나섰다. 진관사하면 떠오르는 정갈한 사찰음식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극락교를 건너기 전 해탈문을 바라보고 서면 다리 옆에 나무데크로 만든 길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데크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꼭 들러야 할 산책코스다. 겨울인데도 아직 얼지 않은 물이 많고 맑았다. 길 끝의 세심교를 건너 홍제루에 들어서면 나가원과 대웅전, 명부전이 가지런하게 자리했다. 아쉽지만 대웅전은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대신 대웅전 앞에 기도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나가원의 뒤편에는 수많은 항아리들이 도열하듯 차례를 지키고 섰다. 도심에선 쉬이 보기 힘든 광경이다. 템플스테이나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이곳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찰 안 처마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겨울이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정겹다. 이렇게 계절이 오고 가며 한 해가 가고 다시 시작된다는 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느껴진다. 그래서 이곳이 마음의 정원이던가…. 진관사 산책코스가 성에 차지 않는다면 사찰 뒤편으로 향로봉에 오르는 코스가 이어진다. 해발 535m로 쉽게 보다가 큰코다칠 수 있는 봉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