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텍쥐페리는 신화다. 전 세계 청춘남녀들은 그의 <어린왕자>를 통과의례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는 단 한 명이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의 어린왕자를 키운다.
작가 생텍쥐페리 개인의 삶도 너무나 신화적이다. 그는 다른 행성에서 누군가 왔다 간 것처럼 불현듯 왔다가 황망하게 사라졌다.
비행기를 잠시 떠났던 생텍쥐페리가 다시 조종사가 되어 전쟁터로 떠나던 날 부인 콩쉬엘로는 그를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당신을 잘 알아요. 당신은 갈망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해서 나는 당신이 떠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당신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깨끗해지기를 바라죠.”
이 수수께끼 같은 말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우선 생텍쥐페리가 본능적으로 ‘떠남’을 갈망해 온 나그네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부인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역마살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텍쥐페리가 집중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하늘’이었다. 생텍쥐페리는 기질적으로 의무나 목표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이런 저런 임무를 띤 비행기 조종사로 살았지만 그가 비행기에 오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날아오르면 ‘하늘’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을 위해 비행기를 탄 게 아니라 깨끗한 하늘과 조우하기 위해 조종관을 잡은 것이다. 1944년 7월 31일. 생텍쥐페리는 그렇게 하늘로 떠났다. 정찰임무를 띠고 자신이 사랑하던 비행기 라이트닝 P38에 몸을 실은 생텍쥐페리의 품속에는 “나를 잃지 마세요. 당신을 잃어서도 안돼요”라는 콩쉬엘로의 기원이 적힌 사진이 있었다. 그날 콩쉬엘로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하늘로 날아간 어린왕자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생텍쥐페리가 사랑한 유일한 실존인물 콩쉬엘로
콩쉬엘로의 책이 국내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녀가 생텍쥐페리와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 회고록이었는데 제목은 <장미의 기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미 엘살바도르 출신인 콩쉬엘로는 1930년 아르헨티나에서 우연히 한 프랑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의 이름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였다. 곧 결혼을 했지만 하늘만 그리워하면서 사는 어린왕자와의 결혼생활이 순탄했을 리는 만무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냅킨에 왕자그림을 그릴 정도로 생텍쥐페리는 무엇엔가 홀린 듯 다른 세상을 사는 남자였다.
별을 좋아하고 비행기를 사랑하는 생텍쥐페리의 방랑벽으로 인해 그녀가 생텍쥐페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생텍쥐페리의 그늘에서 기다림만으로 살아야했던 콩쉬엘로의 삶은 힘겨웠다. 콩쉬엘로는 마치 행성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이 남자를 어느 누구도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 심정을 책에서 이렇게 털어 놓는다.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없으면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한탄인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남자를 사랑한 죄, 지상이 아닌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남자를 사랑한 죄가 이렇게 크다. 콩쉬엘로는 생텍쥐페리의 아내로 사는 것을 하나의 ‘성직(聖職)’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생텍쥐페리가 실종됐을 때 콩쉬엘로가 느껴야 했던 슬픔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같은 기다림이라 해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은 하늘과 땅 차이였을 것이다. 그녀는 생텍쥐페리를 기다리면서 외쳤다.
“이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이륙을 했던 날 지중해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조종사 생텍쥐페리는 저공비행으로 니스 상공을 넘어 해안선 밖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날 기지로 귀환하지 못했다.
우리들의 어린왕자는 그렇게 우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의 비행기가 독일 공군에 의해 격추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1998년. 그러니까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이륙을 한 지 54년이 지난 어느 날 지중해에서 넙치를 잡던 어선 그물에 P38 라이트닝 비행기 잔해와 팔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 팔찌 안쪽에는 ‘콩쉬엘로’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책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는 21세 때인 1921년 공군에 입대한 후 죽는 날까지 군대와 민간항공사를 오가며 조종사로 살았다. 따라서 그가 남긴 모든 문학작품은 파일럿이라는 정체성 위에 쓰인 것들이다. 생텍쥐페리의 상상력이 누구와도 닮지 않은 건, 그의 경험이 속세가 아닌 하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 대표작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린왕자>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부가 팔렸다는 이 책은 문학작품을 넘어 하나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가장 생텍쥐페리다운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인간의 대지>라는 소설이다. 일종의 자전소설이다. 소설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문장이 하나 등장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익숙한 이 경구는 바로 <인간의 대지>에 나온다. 생텍쥐페리는 인간다움의 바탕이 되는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의내리기 위해 이 문장을 쓴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떠올렸던 것이다.
콩쉬엘로
소설에는 또 이런 문장도 나온다.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야. 자신의 탓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을 마주했을 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야.”
생텍쥐페리는 거대한 하늘을 날면서 왜소한 인간의 내부에 숨겨진 위대함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생텍쥐페리가 평생을 바쳐 추구한 문학적 가치였다. <인간의 대지>는 잠들지 않는 작가로서, 미지의 하늘에 길을 연 개척자로서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늘과 인간을 사랑했던 생텍쥐페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막 항공회사에 입사한 ‘나’다. 작품은 주인공이 항공회사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야간비행 중 만나는 별들을 보면서, 무한하면서도 고요한 하늘을 날면서 인생에는 물질적인 것 이상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사막에 비행기가 추락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사막에서 베드윈 원주민과 사막여우를 만나기도 하고, 선인장과 바오바브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했던 동료들을 잃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생텍쥐페리는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된다. 그렇다. 소설 <인간의 대지>는 <어린왕자>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인간의 대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것이다.
“저 나무들, 저 꽃들, 저 여인들, 저 미소들, 우리들에게 주어진 평범한 것들의 합주(合奏),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