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1막1장] 콘서트 오페라 <토스카> 사랑의 도시 로마서 벌어지는 하룻밤의 비극 로맨스
입력 : 2019.04.11 10:23:46
수정 : 2019.04.11 10:24:07
▶사랑의 마력에 빠지는 도시 로마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세계역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 고대로마제국은 혁신적인 건축 토목기술로 로마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퍼지는 도로를 만들었다. 그 길을 중심으로 로마의 평화사상, 로마법정신, 기독교가 오색찬란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서로마가 패망하자 게르만족의 약탈로 로마의 100만 인구는 5만 명으로 축소되는 유령도시로 전락해 세계중심 천년도시의 위엄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로서 로마의 외교적 위상은 여전했다. 성스러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근한 도시인 로마는 많은 이에게 신비감을 주었고,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며 찬란한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난다. 로마의 매력에 심취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어디를 가든 어디에 서 있든 발에 차일 정도로 넘쳐나는 로마의 유적은 우리에게 각양각색의 풍경을 선사한다”고 했다. 도시 전체에 넘쳐나는 고대 로마의 찬란한 유적과 르네상스의 화려한 예술 속에서 우리는 영혼의 상상을 꿈꾼다.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앤 공주(오드리 햅번 분)의 사랑일탈도 이러한 로마의 오묘한 판타지에서 출발한다. 거꾸로 읽으면 아모르(Amor, 사랑)가 되는 로마(Roma)는 사랑의 도시이다.
▶프랑스 극작가가 만든 연극, 푸치니가 오페라로 재탄생 시켜
1829년, 노년의 괴테는 30대에 로마·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며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일기를 엮어 <이탈리아기행>을 간행했다. 괴테의 예술적 인문학 소양에 밑거름이 된 로마의 예술, 인간, 자연에 관한 찬미는 전 유럽에 로마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의 인기극작가 ‘멜로드라마의 왕’ 빅토리앙 사르두(1831~1908)에게 전해져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사르두는 무대언어의 연금술사답게 유머와 필력을 바탕으로 도덕적이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상상을 초월하는 흥미진진한 결말로 마무리했다. 다소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그는 희극에서 비극적인 역사물까지 많은 장르를 소화하며 아들 뒤마, 오지에 같은 극작가와 더불어 프랑스 연극계를 이끌었다. 그는 1887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5막짜리 연극 <토스카>를 올려 관객의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 연극을 본 작곡자 푸치니는 차기 작품으로 마음먹고 구상하고 작품 속 1800년으로부터 딱 100년 후인 1900년 1월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에서 3막 오페라로 초연한다.
오페라 <토스카>는 휘몰아치는 정치적인 소용돌이 안에서 정열적으로 사랑하며 미워하고 복수하는 드라마틱한 삶을 로마의 명소를 배경으로 담았다. 괴테는 프랑스대혁명 이전인 1786년 9월부터 1788년 4월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출간한 괴테 여행기 속 로마는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그 사이 로마는 양분되어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1798년,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의 혁명이념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에 침입한 나폴레옹 혁명군은 로마와 나폴리에 새로운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듬해 이집트 원정을 위해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반도를 비우자, 나폴리 왕 페르디난트 4세와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마리 앙트와네트의 동생인 오스트리아 공주)는 오스트리아 군대와 손잡고 나폴레옹이 세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폴리왕국을 부활시킨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로마는 새로운 사상에 희망을 품은 계몽주의 지식인들과 구체제의 군주제를 옹호하는 군주파로 분열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이 된다. 공포정치로 로마의 테베레 강물은 잿빛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민주’ ‘공화주의’ 등으로 허울 좋게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을 현옥시키는 갖가지 미사여구를 이용하여 권력을 탐하는 정치가에 불과했던 나폴레옹에 많은 유럽지식인들은 속아 희생당했다.
▶사랑에 살고 예술에 살던 정열적 청춘들의 삶
오페라 <토스카>는 로마의 유서 깊은 역사적 장소인 산타 안드레아 델레 발레 성당(1막), 파르네제 궁전(2막), 천사의 성(3막)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인기가수 플로리아 토스카의 연인인 화가 카바라도시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이다. 1800년 6월 17일, 산타 안드레아 델레 발레 성당의 벽화를 그리던 카바라도시는 나폴레옹이 세운 로마공화국 집정관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동료 안젤로티를 숨겨준다. 평소와 달리 뭔가 숨기는 카바라도시를 오해한 토스카가 매섭게 질투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카바라도시는 안젤로티에 대해 이실직고한다.
한편 비열한 호색한으로 호시탐탐 토스카를 탐할 기회만 엿보던 경시청 총감 스카르피아는 정치범 안젤로티를 쫓다가 카바라도시를 만나고 이내 음흉한 계획을 세운다. 카바라도시가 체포되어 고문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토스카는 공연을 마치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달려온다. 토스카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안젤로티가 있는 곳을 자백하고 이를 알게 된 카바라도시는 토스카를 강하게 질책한다. 이 광경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스카르피아는 범인은닉죄로 총살형이 확실한 카바라도시를 두고 토스카에게 하룻밤을 제안한다. 토스카는 그 대가로 총알 없는 총으로 거짓사형 집행된 카바라도시와 국외로 도피할 수 있는 출국허가서까지 발급받는다.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스카르피아가 다가오자 경악한 토스카는 과도로 그를 찔러 살해한다. 사형이 집행될 천사의 성에서 카바라도시는 혼자 남겨질 토스카를 그리워하며 인생의 마지막 새벽을 비장하게 맞이한다. 곧이어 등장한 토스카는 희망에 가득 차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이제 쓰러지는 연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준다.
그러나 카바라도시는 총알이 장착된 총을 맞아 쓰러지고, 그의 주검을 확인한 토스카는 울분에 치를 부들부들 떤다. 그녀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천사의 성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슬픔보다 스카르피아의 거짓말이 토스카에게 더 크게 와 닿았던 것일까. 그녀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 “하늘에서 보자”는 연인 카바라도시를 향한 애달픈 인사가 아니라 분노의 복수를 다짐하며 스카르피아에게 남기는 절규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오페라시리즈 <토스카>는 세계적 명성에 빛나는 성악계의 별들이 모여 오페라극장 이상의 감동을 콘서트홀에서 선사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유수 오페라 극장을 넘나들며 폭넓은 오페라 레퍼토리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지휘자 존 피오레가 국내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선택한 토스카’로 불리는 소프라노 제니퍼 라울리(토스카 역),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달콤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음악을 선보일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카바라도시 역), “전설의 지휘자 아바도가 선택한 바리톤”으로 손꼽히는 루치오 갈로(스카르피아 역) 등의 불꽃 튀는 격정의 멜로드라마를 펼칠 출연진들이 어떤 하모니를 들려줄지 기대가 모인다.
▷콘서트 오페라 <토스카>
· 공연일시 : 2019년 4월 30일(화) 오후 7시 30분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출연 : 지휘·존 피오레, 연출·스티븐 카르,
제니퍼 라올리, 마시모 조르다노, 루치오 갈로 등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Anthony Popolo for Nashville Op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