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MEN 기자의 일본 북알프스 나홀로 등반기…3000m 고봉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어떨까
입력 : 2014.10.17 17:29:20
수정 : 2014.10.17 17:40:30
나카다케 등정 중 돌아본 야리가다케
야근을 거듭해 한 달 마감을 끝내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고 눈은 침침했다. 몸의 신호에 따라 자투리 여름휴가에 주말을 더해 백두산으로 떠나고자 했으나 받아주는 여행사가 없어 일본 북알프스로 방향을 돌렸다.
일본 중서부의 북알프스는 후지산(3776m)보다는 낮지만 영국인들이 ‘일본 알프스’란 이름을 붙였을 만큼 험하면서 빼어난 산세가 유명한 곳이다. 특히 야리가다케(槍ヶ岳·3180m)에서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3190m)로 이어지는 3000m급 연봉 종주코스는 등산 마니아라면 꼭 가볼 만한 도전적인 코스. 일본 쇼와천왕의 동생까지 종주했을 만큼 일본인들에겐 꿈같은 루트이기도 하다. 게다가 등반 기점인 마쓰모토 시 가미고치(上高地)의 울창한 원시림은 일본 정부가 1934년부터 산악국립공원으로 정해 보호했을 만큼 뛰어난 힐링 코스이다.
그런데 여행사마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오기가 발동해 혼자 가기로 했다. 먼저 나고야(名吉屋)행 항공권부터 예약했다. 나고야에서 가미고치(上高地)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갈 요량으로 먼저 첫날 숙소를 잡았다. 인터넷을 뒤지니 마쓰모토(松本)시에서 운영하는 도쿠사와(德澤=德沢)롯지가 나와 예약을 부탁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답신이 왔기에 점심 도시락(800엔)도 주문했다. 등반 후 귀국할 공항이 있는 나고야도 돌아볼 요량으로 그곳 비즈니스호텔도 예약했다. 시간이 촉박해 인터넷에서 간단한 정보만 얻고 세세한 정보는 현지에서 더 얻자며 일단 떠나기로 했다.
일단 나고야로 떠나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이라 대충 꾸렸지만 갈아입을 옷과 겨울옷(기상급변 대비)에 비상식량까지 챙기니 배낭은 15kg 가까이 됐다. 오전 7시 55분 인천을 떠난다.
비행기는 오전 9시 45분 나고야중부국제공항에 내렸다. 입국 수속은 간단했으나 짐 찾아 나오다보니 30분가량이 흘렀다. 부랴부랴 나고야역 가는 메이테쓰(名鐵) 기차를 탔다. 티켓은 비싼 지정석 대신 자유석(870엔). 특급 열차는 37분 만에 나고야역에 도착했다.
잽싸게 메이테쓰나고야역에서 JR나고야역으로 이동해 마쓰모토 행 JR시나노특급 티켓(5510엔)을 역시 자유석으로 샀다. 일본 열차는 대부분 좌석이 충분해 굳이 6000엔(약 5만8100원) 이상 주며 지정석을 살 까닭이 없다. 마쓰모토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다.
마쓰모토로 가는 나가노(長野)행 특급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 기차에서 먹을 점심용 샌드위치와 물을 샀는데 나중에 보니 도시락과 맥주를 살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에 올라보니 옆 사람 도시락이 훨씬 훌륭했다.(기차에선 팔지 않는다.)
나고야를 떠난 기차는 잠시 시골 마을을 지나는가 싶더니 곧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협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엔 맑은 물이 넘쳐 흘렀고 삼나무나 대나무 등이 가득 찬 삼림이 끝없이 이어졌다. 두 시간 기차여행 자체가 힐링이었다.
중간 기착지 마쓰모토(松本)
마쓰모토에 도착하면 가미고치는 지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미고치는 그리 가깝지 않았다. 마쓰모토역에서 신시마시마(新島島)역까지 전차로 가서 가미고치행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승차요금만도 2450엔(약 2만3700원)이나 됐다.
오후 2시 7분에 전차가 출발하기에 쉴 틈도 없이 승차권을 산 뒤 뛰다시피 해서 전차를 탔다. 신시마시마에서 가미고치까지는 계곡을 따라 좁고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비까지 뿌려 아슬아슬한 길을 버스는 쉬엄쉬엄 올라갔다.
롯지엔 3시쯤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줬는데 가미고치에 도착하니 벌써 4시 30분이나 됐다. 해발 1505m 가미고치에 내리니 서늘했다.
묘진이케
예상보다 좋았던 산장의 하룻밤
도쿠사와롯지까지는 다시 6.4km를 더 가야 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1시간이 빠른 데다 깊은 산속이라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빨리 숙소로 향했다. 비가 그친 숲 속 길은 상쾌하기가 그지없었다. 등산로가 아니라 평탄한 산책로였다. 초입 야영장엔 캠핑객들이 붐볐고 이어 아름드리, 삼나무, 호두나무, 자작나무 등이 빼곡한 숲길이 이어졌다.
롯지에 도착하니 6시가 가까웠다. 안내원이 반겨 맞으며 마침 저녁시간이니 먼저 식사를 하고 씻으라고 했다. 일본의 롯지(산장)에선 정해진 시간에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저녁식사는 근사했다. 이름 모를 생선구이와 된장조림 고등어, 야채를 곁들인 닭요리, 팽이를 넣은 된장국(미소시루), 맛보기 소바 등 모두가 깔끔했다. 밥은 맘껏 먹으라고 밥통째 주었다.
그게 고마워 반주로 작은 사케 한 병(450엔)을 시켰는데 맛이 산뜻했다.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 전 산으로 떠난다니 종업원이 아침, 점심 도시락을 미리 챙겨줬다.
욕실은 대여섯 명이 들어갈 크기의 욕탕과 세면시설 정도가 있었지만 아주 깨끗했다. 다만 대부분 일본 욕실이 그러하듯 수건은 비치하지 않았다. 침실엔 2층 침대를 설치했는데 커튼이 있어 옆 사람 방해를 받지 않고 편히 잘 수 있었다.
가슴까지 시원한 원시림 속 공기
이튿날 새벽 5시. 모두가 일어났다. 아침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일찍부터 챙겼다. 전날 도시락을 받아둔 터라 5시 50분께 배낭을 메고 나섰다. 롯지 앞은 전날 밤과는 전혀 다른 풍광으로 다가왔다. 안개 자욱한 고목 숲에선 노란 불을 켜놓은 듯 많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촉촉한 공기가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등산로는 원시림 숲속으로 이어졌다. 골마다 깨끗한 물이 흘러내렸다. 삼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 어떤 나무도 렌즈 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컸다. 두 아름 세 아름 되는 나무들이 수두룩했다. 군데군데 쓰러진 고목을 파란 이끼들이 덮었고 곳곳에서 잔나비걸상버섯이니 말굽버섯 같은 버섯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계곡 건너편 깎아진 절벽을 안개가 감싸며 올라갔고 그 위에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눈인지 빙하인지가 하얗게 빛났다. <원령공주>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창작력도 이런 숲이 있었기에 가능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쯤 걸으니 요코오(黃尾)산장이 나왔다.
야리가다케(槍ヶ岳)와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날도 밝았기에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롯지에선 친절하게 일기예보를 칠판에 내걸었다. 다음 날 정상부는 흐리다 비가 올 수도 있다기에 이날 최대한 많이 걷기로 했다.
요코오산장을 지나도 원시림 지대는 이어졌다. 공기가 너무나 상쾌해 몸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 며칠 여기서만 머물러도 좋을 것 같았다. 요코오산장에서 4km 쯤 올라가니 야리사와(槍沢)롯지가 나타났다. 롯지에선 10시부터 카레라이스나 우동 등을 팔지만, 시간이 이르기에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린 뒤 산행을 이어나갔다. 야리사와 롯지를 지나자 나무들의 키가 갑자기 낮아졌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새 고도가 높아졌고 흙길은 돌길로 바뀌었다.
900m가량 올라가니 시야가 확 트였다. 바바다이라(ババ平)캠핑장(1990m)이다. 돌로 쌓은 비상 대피소엔 지난해 실종된 이를 찾는 안내판이 걸려 긴장감을 자아냈다. 관목지대 사이로 이어진 길의 끝엔 정상부 능선이 구름이 흩어질 때마다 얼핏얼핏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 작은 빙하지대에 섰다. 한여름이지만 시원함을 넘어 서늘하기까지 했다. 오죽 추웠으면 빙하 옆 자작나무들은 막 새순을 내밀었고 그 밑엔 취며 당귀싹들이 뾰족이 고개를 들었다. 지나가는 일본 아주머니에게 “여긴 봄이네요”라고 하자 “아! 봄꽃이네. 당귀도 있고. 이걸 썰어서 요리하면 맛있는데”라며 칼질하는 시늉을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엔 가을꽃과 철 이른 단풍까지 보였다. 사계절이 한곳에 있었다.
빙하지대를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자 멀리 병풍처럼 드리운 절벽 아래까지 널따란 평원이 펼쳐졌다. 텐구하라(天狗原)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늘을 나는 개(영물)가 뛰어노는 들판이라. 그 주위엔 누운 소나무가 빼곡히 군락을 이뤘다. 소나무 군락 근처에 마지막 샘이 있어 한 모금 마시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지대가 높고 가팔라서인지 금세 숨이 가빠왔다. 텐구하라 분기점을 지난 뒤부턴 풀도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거친 너덜지대가 펼쳐졌다. 바람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냉기가 돌았다. 그래도 땀나는 게 싫어 반팔에 바람막이 하나만 더 걸친 채 산행을 계속했다. 멀리서도 뾰족해 보여 창(槍)이란 이름을 얻은 야리가다케가 손에 잡힐 것 같았지만 가파른 길은 꼬불꼬불 멀기만 했다. 가까스로 야리가다케산소(槍ヶ岳山莊)에 도달했다. 시계를 보니 12시 10분.
200m 절벽 위의 야리가다케 정상
야리가다케 정상까지는 200m를 더 올라가야 했지만 시시각각 몰아치는 차가운 구름 속에서 얇은 바람막이 하나로 버틴 터라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급히 산장으로 들어가 뜨끈한 오뎅을 주문했다. 3000m급 산장의 오뎅 맛이 한국 도시의 어묵 이상이었다. 그 국물을 밑천삼아 도시락까지 비우고 나니 기운이 솟았다. 다들 그러하듯 배낭을 산장 모서리에 내려놓고 야리가다케를 올랐다. 수직 사다리 밑에서 벌벌 떠는 이들을 격려하며 밀고 끌고 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야리가다케 정상은 20여 명이 비집고 올라설 정도로 좁았다. 거기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사방 어느 곳을 봐도 아찔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바닥까지는 수백 길은 족히 돼 보였다. 한여름이지만 북서 사면 골짜기엔 하얀 눈이 그대로 있었고 그 뒤로 보이는 산들은 언제 사태가 났는지 손톱으로 할퀸 양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겨우 인증사진을 찍고 하산하는 길은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다.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바위를 이리저리 돌아서 산장으로 돌아가니 2시가 됐다. 다음 산장인 미나미다케고야(南岳小屋)까지 3시간가량 이 걸리니 서둘러야 했다.
야리가다케와 미나미다케(南岳·3032.7m) 사이엔 오오바미다케(大喰岳·3101m)와 나카다케(中岳 ·3048m) 등의 고봉이 있으나 오르막 내리막이 적어 비교적 쉽고 넓은 길이 이어졌다. 편하게 걸으면서 사방을 보는 기분이 괜찮았다. 그 기분에 취해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지체됐다. 게다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원시의 새 뇌조를 만나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은 더 흘러 다섯 시가 넘어서야 미나미다케고야에 도착했다. 산장 직원에게 예약을 하지 않았다며 하룻밤 자겠다고 하니 “일본산은 3시까지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다음엔 미리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군소리 않고 자리를 정해준 뒤 6시에 식사가 시작된다고 알려줬다. 짐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가니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은 물론이고 러시아 사람도 여럿 보였다.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했다. 능선의 산장은 아래 롯지와는 달리 군대 내무반처럼 평상에 나란히 누워 자야 했다. 옆의 젊은 친구가 간간이 뒤척이며 잠을 깨웠지만 고단한 몸은 그래도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이틀째 아침 난코스를 넘다
다음날 아침 5시. 약속한 것처럼 모두 일어났다. 3000m급 산장이라 씻을 물은 없었다. 수통의 물을 수건 끝에 묻혀 겨우 얼굴을 닦고 밖으로 나가니 찬바람이 쌩 불었다. 서리가 온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얼른 배낭에서 오리털 점퍼를 꺼냈다. 그새 태양이 솟아 사방을 비췄다. 전망 좋은 언덕에 서니 이날 가야 할 기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 직벽이 병풍처럼 다가왔다. 그 뒤로 멀리 북알프스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도 눈에 들어왔다. 운해에 덮였던 동남쪽 하늘에 무언가 솟아올라 자세히 보니 후지산이었다. ‘직선거리로 200km는 떨어졌을 후지산이 보인다니…, 3000m급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장에서 간단한 아침을 들고 6시 10분에 길을 떠났다. 미나미다케~기타호다카다케 구간은 지도에도 위험하다는 표시가 둘이나 있을 만큼 험하기로 소문난 코스다. 산장을 나서 작은 언덕을 오르자마자 곧바로 험난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은 물론이고 잡을 곳이 없어 5m 높이 수직 사다리를 설치한 곳도 있었다. 배를 끌어도 될 만큼 굵은 쇠사슬을 설치한 곳도 있어 일본인들의 안전의식을 생각하기 전에 그 굵은 사슬을 어떻게 끌어올렸을까 하는 궁금증부터 들었다. 짧은 내리막이지만 30분 정도 걸려서야 바닥에 닿았다. 내리막이 끝나 한숨 돌렸지만 긴장은 다시 이어졌다. 안부의 작은 봉우리 하세가와(長谷川)피크까지는 오가는 사람들이 비켜서기도 힘든 좁은 암릉지대가 이어졌다. 밑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암릉을 넘어 잠깐 숨을 돌린 뒤 기타호다카다케(北橞高岳·3106m)로 오르는 절벽 구간에 붙었다. 수직 고도 300여m를 올라야 했다. 미나미다케에서 건너다볼 때 독수리 둥지처럼 보였던 기타호다카다케고야(北穗高岳小屋)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을 오르면서 사람이 네 발 달린 짐승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워낙 힘든 구간이라 오가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뒤에 오던 사람들은 계속 처져 나중엔 장기판의 졸보다 작아 보였다. 낙석 우려까지 있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아가니 마루턱이 눈에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35분. 아침 식사 후 2시간 25분 동안 이어진 긴장을 잠시나마 풀었다.
오쿠호다카 정상서 본 능선 멀리 야리가다케가 보인다.
사방이 발밑, 오쿠호다카다케
커피 한 잔으로 숨을 돌린 뒤 최종 목적지 오쿠호타카다케를 향했다. 기타호다카다케 남봉을 넘어서니 길은 두 갈래로 갈렸다. 왼쪽은 가라사와고야(涸沢小屋)로 이어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고 오른쪽이 가라사와다케(涸沢岳· 3110m)를 거쳐 호다카다케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지도에 위험 표시가 있을 만큼 방심하기 어려운 구간이지만 이미 미나미다케에서 기타호다카다케로 오르는 험난한 코스를 거쳤기에 오히려 완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쉬엄쉬엄 바위를 타고 넘어 가라사와다케 정상에 서니 발밑에 호다카다케산소(穗高岳山莊)가 보였다. 잽싸게 산장까지 달려가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산장에서 밥을 사먹을 수도 있었지만 배낭 무게를 줄여야 했다. 물도 보충했다. 물 500ml에 100엔. 화장실 요금 100엔. 당초 산에서 2박하고 3일간 산행을 하려 했으나 첫날 강행군 덕에 이틀이면 종주를 마칠 것 같아 서두르기로 했다. 호다카다케 산소에서 북알프스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빠르게 오르니 30분이 채 안 걸렸다. 드디어 해발 3190m 정상. 일본 사람들이 신사처럼 세운 정상 기념비를 내려다보며 섰다.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저 멀리 야리가다케에서 시작해 미나미다케 기타호다카다케로 이어지는 봉우리와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오른쪽 니시호다카다케(西穗高岳·2908.6m)의 가파른 봉오리와 왼쪽에 병풍처럼 솟은 마에호다카다케(前穗高岳·3090.2m) 사이로 다케사와(岳沢)계곡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계곡 상부엔 만년설이 쌓여 있었지만 그 밑 평원은 아늑해 보였다. 평원 중간부터 개천이 가미고치 마을까지 이어진 듯했다. 하산은 마에호다카다케를 거쳐 다케사와 계곡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택했다. 마에호다카다케까지 가는 길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순탄하게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서 다케사와 계곡까지 이어지는 평이해 보이던 내리막이 장난이 아니었다. 워낙 경사가 급해 스틱을 사용하기조차 어려웠다. 울창한 숲속 길조차 곳곳에 쇠줄과 철사다리를 설치했을 정도였다. 오후 3시 30분에 다케사와고야(岳沢小屋)에 도착했다. 산장에서 물을 받으려다 돈 내라는 표시를 보고 ‘다 내려왔는데 샘물에 무슨 돈을’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다. 다케사와고야에서 가미고치까지 4km 구간은 산마루에서 볼 때는 평탄해 보였지만 끝까지 너덜지대가 이어졌다. 아직 저녁 숙소조차 예약하지 못했으니 서둘러야 했다. 가미고치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가미고치와 도쿠사와롯지 사이에 있는 묘진칸(明神館)롯지로 전화를 걸어 방과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그 길로 다시 3.4km를 걸었다. 가미고치에도 롯지는 있었으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옳았다. 묘진칸 롯지의 저녁은 훌륭했다. 생선요리는 기본이고 돼지고기와 버섯을 넣은 샤브샤브, 고비나물 무침, 한천 조림, 야채샐러드 등 보기에도 푸짐했다. 사케 한 잔(600엔)을 곁들여 만찬을 즐겼다.
신비로 남은 묘진이케(明神池)의 추억
사흘째 아침. 역시 5시에 모두들 일어났다. 간단히 얼굴만 씻은 뒤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일본 최고의 비경이라는 가미고치에서 묘진칸에 이르는 숲길의 새벽 풍광을 보고 싶었다. 어스름 안개에 싸인 숲길로 들어서자 신선한 공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기온이 서늘한 데다 맑은 물에서 올라온 안개까지 더해져 상쾌함이 배가됐다. 호다카신사 뒤 묘진이케(明神池, 흐르는 물이 쉬어가며 형성된 작은 연못)를 구경하고 싶었다.신사의 문을 여는 6시가 가까워지기에 발길을 재촉했다. 신사의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국 산사의 북소리가 이럴까. 입장권을 사들고 들어갔다. 어떤 연못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다가간 제1연못에선 물안개가 피어올랐는데 침염수림이 둥그렇게 에워싸 흡사 은쟁반을 연상케 했다. 순간 아침햇살이 연못 뒤로 우뚝 솟은 묘진다케의 암벽을 비췄고 거기서 반사된 햇살이 묘진이케 연못 위로 쏟아져 내렸다.
피어오르던 물안개는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아름다운 빛이 마음에 남았다.
식사 시간이 다가와 묘진칸롯지로 돌아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원숭이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갔다. 롯지를 나서면서 주인 나시다 미쓰루 씨에게 인사를 하니 “한국 사람들은 단체로 오는데 가급적 가족 단위 등 소그룹으로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묘진칸을 나와 신사에서 가미고치 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숲길을 아주 느리게 걸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숲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었다. 거목들이 이룬 숲과 그 속에서 자라는 이끼와 버섯 말풀들은 마음을 오래 전 옛날로 이끌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개는 자꾸 가미고치로 돌아갔다.
롯지, 산소, 고야…
산장을 영어로 롯지(lodge)라고 하는데 일본에선 롯지(ロッジ)라고 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큰 곳은 산소(山莊), 작은 곳은 고야(小屋)라고 부른다.
일본 북알프스 어떻게 가나
야리~호다카 종주코스는 설악산 공룡능선과 서북능선을 동시에 완주할 정도 체력이면 도전할 수 있을 듯. 거기에 더해 미나미다케~기타호다카다케 구간 암벽코스를 넘는 데는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기자는 이틀 만에 종주를 마쳤지만 야리가다케산소(산장)에서 1박, 호다카다케산소에서 1박 등 2박을 권한다. 미나미다케~기타호다카다케 암벽구간이 부담된다면 야리가다케나 오쿠호다카다케만 따로 올라갔다 내려와도 좋다. 중간 산장을 적절히 이용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온다면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3000m급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산장마다 공중전화가 있지만 모두 일본 국내용이므로 일본 내 비상전화는 메모해 두는 게 좋다.
가미코치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데 워낙 산이 깊은 데다 눈이 많이 와 11월 16일부터 4월 하순까지 계곡 자체를 닫아버린다. 등산을 한다면 가급적 10월 말 이전에 갈 것을 권한다. 정상까지 밟을 요량이라면 겨울옷과 비옷을 겸한 방풍점퍼, 수건을 가져가야 한다. 식사는 산장에서 해결해도 되므로 최대한 간편한 비상식량만 준비하는 게 배낭 무게를 줄이는 요령.
가는 코스
나고야중부국제공항~나고야역(메이데츠 전철 이용), 나고야~마쓰모토역(JR시나노특급 나가노행 열차), 마쓰모토~가미고치(전차&셔틀버스).
인접관광
거쳐 가는 도시 마쓰모토(松本)도 돌아볼 만하다. 마쓰모토성은 규모는 작지만 1500년대 지어진 일본 국보. 마쓰모토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 자전거로 돌아봐도 된다.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는데 마쓰모토역 관광안내소에 가면 자전거 빌리는 곳을 가르쳐준다.
중간 도시 나고야는 도요타자동차의 출발지이기도 한데 나고야성과 아쓰다신궁, 백화점 거리 등이 볼 만하다. 나고야 시는 지하철이 잘 갖춰져 있어 지하철 하루 패스(740엔)를 사서 다니면 유용하다. 일본 지명을 한자로 기억하면 현지에서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