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나 절벽 같은 순간을 마주칠 때가 있다. 피하거나 돌아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반드시 올라서야 하는 치명적 장애물. 험난한 절벽을 담담히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를 기를 수 있는 운동이 스포츠클라이밍이다.
스포츠클라이밍은 90도부터 180도에 이르는 각도로 만든 인공 절벽이나 건물 벽면에 구멍을 뚫고 홀드(인공 손잡이)를 붙인 인공 암벽을 오르는 레저스포츠다. 몇 해 전부터 다이어트나 전신근육 단련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알려진 운동이 바로 스포츠클라이밍이다. 김자인 선수가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면서 더 많이 소개됐지만 아직은 보통 사람들이 다가서기엔 벽이 있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운동인데다 암벽이라는 심리적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김자인 선수
보디빌더도 부들부들 전신근육 발달
스포츠클라이밍을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기자가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 봤다. 필요한 장비는 간편한 복장에 8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암벽화와 미끄럼방지를 위해 손에 바르는 초크(8000원), 이를 담을 초크통(1만5000원)이면 충분하다. 초기비용은 클라이밍센터 등록비용(한 달 7만원대부터)까지 총 20만원이 채 안된다.
본격적으로 벽에 붙어봤다. 5m정도 높이의 벽의 홀드(손잡이)를 하나하나 잡고 신중하게 발을 디뎌봤지만 10초도 지나지 않아 손에 힘이 빠지고 등과 복부근육이 당겨왔다. 특별한 등반장비 없이 맨몸으로 손과 발, 허리 근육을 이용해 암벽을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은 칼로리 소모량이 분당 10kcal에 이를 정도로 체력소모가 큰 격렬한 운동이다.
이 때문에 평소 잘 쓰지 않았거나 운동을 게을리 한 근육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균형 잡힌 이소룡과 같은 ‘몸짱’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한 스포츠클라이밍 전문가는 “전신근력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가볍고 밸런스가 좋은 여성들이 더 빨리 고수가 된다”고 귀띔했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점차 암벽에 익숙해지자 꼭대기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조건 빨리 오른다고 고수가 아니다. 같은 코스를 어떻게 오르는가에 따라 난이도도 달라진다.
어느 홀드를 잡고 발을 디디는가에 따라 루트가 달라지는 까닭에 스포츠 클라이밍은 종종 바둑에도 비견된다. 상황 판단에 따라 수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궁무진한 길과 운명이 숨어 있어 완성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바둑판과 인공암벽이 서로 닮아 있다.
전문 스포츠클라이밍 경기는 크게 난이도, 속도, 볼더링 경기 등이 있다. 특히 난이도 경기에서 전문가들은 홀드의 배치를 조정해 ‘문제’를 내고 선수들은 어떻게 오를까 고민하며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루트와 방식의 암벽을 오르는 과정은 고수가 되기 위한 당연한 수련이다.
고수들은 기자가 5분여간 낑낑대며 정복한 코스를 양손 3개 손가락만 사용하고 발도 최소한의 홀드만 디디며 1분 만에 오를 수 있도록 훈련한다고 한다. 전신근육을 사용하지만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을 꼽는다면 단연 손이다. 선수들은 손가락이 휘어지는 변형이 올 정도로 운동강도가 센 편이다. 초보코스는 홀드가 크고 움켜지기 편하지만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크기는 작아져 두 손가락의 한 마디씩을 걸치기 힘든 것도 있다. 정상급 클라이머는 손가락 하나로 턱걸이를 한다.
인공암벽은 높이 15m 이상의 옥외용과 3m 이내의 실내용으로 나뉜다. 내공을 충분히 쌓은 후에는 실외암벽에 도전할 수 있다. 실내암벽은 혼자서 자일 없이 매달리기 때문에 추락에 대비해 바닥에 두꺼운 매트리스를 깔아놓는다. 반면 옥외 암벽은 2인1조가 돼 한 사람이 자일을 잡아 주고 그 자일로 확보를 해 가며 루트를 올라가야 하므로 파트너와의 신뢰가 중요하다.
암벽화는 작은 듯 꽉 조이게
다수의 전문가들은 의욕이 앞선 초보자들이 충분한 준비운동을 하지 않은 채 클라이밍에 뛰어들어 근육이 뭉치고 인대가 늘어나는 사례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움직여 스포츠클라이밍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
초심자들의 경우 근력과 기술 수준에 맞춰 진도를 나가는 것이 실력과 신체능력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고수일수록 운동 전 스트레칭 시간이 길고 무리하는 법이 없이 한차례 코스를 마친 후 충분히 휴식하며 근육을 풀어준다. 쉬는 것도 오르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암벽화는 간신히 발이 우겨넣어야 할 정도로 꽉 조이는 것을 골라야 한다. 대부분 앞쪽에 힘이 몰려 암벽화 뒤꿈치가 뜨게 될 뿐만 아니라 신다보면 신발이 조금 늘어나기 때문이다. 초크는 주로 탄산마그네슘이 쓰인다. 초크백을 허리에 매고 자기 손이 편안하게 들어갈 정도로 입구를 열어 사용하면 된다.
줄에 의지해 높은 실외암벽을 오를 경우 로프와 하네스라고 부르는 안전벨트, 볼트에 거는 기구인 퀵도르, 로프를 잡아줄 확보기구 등의 추가 장비를 갖춰야 한다. 로프는 굵기가 10㎜가 넘고 길이가 최소 40m이상 되는 것을 구입하면 충분하다.(20만원대부터) 안전벨트는 손바닥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이 적당하다(5만~19만원대). 중간에 로프를 통과시켜 추락에 대비하는 퀵도르는 10개가 한 세트인데 개당 2만~3만원대이다.
등반자의 추락에 대비해 로프를 잡아주는 것을 빌레이(확보)라고 한다. 빌레이 장비로는 수동인 8자 하강기(1만5000~3만원대)를 쓰기도 하지만 요즘엔 안전성이 훨씬 높은 그리그리(gri gri)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