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했니?”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자녀들의 삼시 세 끼다. 이 때문에 일이 바빠 한 끼 거를라 쳐도 어머니의 확인전화에 종종 메뉴까지 지어내 착한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일상에서도 서로 식사 여부를 묻는 것은 하나의 인사가 됐고 “아직 전”이라는 답에 “어쩌다?”라는 반응이 어색하지 않다. 100여년 전부터 관습으로 자리 잡은 세 끼 식사는 대중의 심리에 ‘건강’ 또는 ‘무병장수’와 강력한 연관검색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종교적인(?) 믿음에 가까운 명제를 뒤집는 절식요법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일주일에 1~2회, 16~24시간동안 공복상태를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법이 주인공이다. 이 단식법은 끼니때마다 칼로리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먹고 싶은 것을 충분히 먹으면서 다이어트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져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의 주 목적은 사실 다이어트가 아니다. 정원석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단식을 시행하게 되면 전체 섭취 칼로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체중감량이 일어나지만 그 이외에 다양한 생리적인 효과가 뒤따르게 된다”며 “알려진 효능으로는 노화 예방,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의 발생 위험성 저하 등이 있고 생체 리듬이나 자율신경 균형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단식법은 우리의 몸이 스스로 균형을 찾고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한다. 음식의 중단을 통해서 몸이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현대인의 질병은 사실 영양의 부족보다 과잉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활동량은 줄고 음식을 과다 섭취하여 잉여 에너지가 생기게 되면 간, 신장 등은 대사 부산물의 처리와 배출에 지치게 된다.
간헐적 단식은 호사스러운 삶을 누린 몸에 긴장감을 주고 독소를 빼내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단식을 하면 제거되는 대표적인 독소가 장내에 존재하는 내독소인데 이는 장벽이 약해지면 각종 염증성 질환을 유발한다”며 “간헐적 단식과 더불어 식사 교정, 유산균 복용 등의 방법을 사용하면 장벽의 회복과 함께 장내에 기생하는 나쁜 세균들의 번식을 억제하고 면역기능·에너지 대사기능이 조절돼 각종 염증에서 벗어나기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간헐적 단식은 불면증이나 시차적응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체리듬과 균형을 바로잡아 일종의 리셋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생체리듬과 관련된 여러 현상 중에는 수면 주기(불면), 여성의 생리주기 등 각종 중요한 생리현상들이 포함되는데 간헐적 단식을 수행하게 되면 이러한 어긋난 일주기들이 포맷되면서 다시 정상화될 수 있다”며 “예를 들면 해외생활을 오래하다 귀국하여 시차적응이 안 될 때, 간헐적 단식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굶기만 하면 되나? 아침도?
끼니를 거르기만 하면 된다니! 이렇게 편한 건강법이자 다이어트 요법이 또 있을까. 밥 대신 아침잠을 택하던 싱글족들은 행여 건강에 이상이 있을까 하던 찜찜함을 벗어던지고, 모든 음식에 칼로리 수치가 겹쳐보이던 다이어트족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그렇지만 세상에 까닭 없는 공짜가 없듯 간헐적 단식에도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간헐적 단식의 가정에 주의해야 한다. 몸이 스스로 균형을 찾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경우에만 단식법은 유효하다. 따라서 질병이 있거나 기력이 없는 사람은 간헐적 단식에 적정치 않다.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행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단식시점이 있을까? 일각에서는 끼니때가 돌아왔을 때 포만감을 느낄 경우 단식 시점이라 주장한다. 공복감, 포만감 등은 심리적인 요인이나 신체활동, 기온 등 다양한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규칙적인 일상의 생활패턴과 신체 반응을 먼저 파악해 보고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주말 등 여유로운 시간에 단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부터 바로 무리한 단식이 부담이 되는 경우 식사 대신 가볍게 과일 등으로 끼니를 대체해 공복감과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행여 공복에 과일이 부담되는 경우에는 과일을 갈아 기호에 맞게 스무디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다음으로 아침을 거르는 것 역시 적절치 못하다. 정 교수는 “한 끼만 남기고 단식을 해야 한다면 아침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침식사는 뇌를 깨워주는 작용을 할뿐더러 아침 햇빛과 더불어 신체 리듬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에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이 간헐적 ‘폭식’으로 변질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단식으로 인한 공복감이나 보상심리가 폭식으로 이어질 경우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간헐적 단식과 폭식이 반복될 경우 체중은 이전보다 증가하고 지방은 축적돼 건강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불규칙한 단식보다 규칙적인 단식이 효과적”이라며 “불규칙한 단식 스케줄은 신체 리듬을 망가뜨려 자율신경 부조, 내분비 기능장애 등 만성 스트레스상황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있는 날을 정해 규칙적으로 단식을 수행하는 것이 신체리듬을 망가뜨리지 않는 효과적인 단식법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간헐적 단식은 운동과 병행하고 균형 있는 식단이 필수다. ‘굶어서 기력도 없는데 무슨 운동이냐’고 할 수 있지만 단식을 통해 줄어드는 체중은 주로 근육의 감소에서 기인한다. 이는 기초대사량을 저하시키고 몸의 구성성분비가 나빠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정교수는 규칙적인 단식과 함께 고강도의 운동을 권장했다.
고른 영양섭취 역시 중요하다. 제한적인 식사라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 편식할 경우 영양불균형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서은경 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사할 때 고열량의 탄수화물 위주 식단보다는 단백질·비타민·무기질이 풍부한 채소류를 섭취하면서 정기적인 근력운동을 병행한다면 간헐적 단식의 이로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헐적 단식을 할 경우 에너지 대사와 생리과정에 필요한 자원들은 음식물 섭취를 통해 영양결핍을 방지해야 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이나 당뇨환자 등의 경우, 균형 있는 식단을 통한 간헐적 단식이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 교수는 “적절하지 않은 간헐적 단식은 불규칙적인 속쓰림, 복통 등의 위장장애, 영양 불균형, 폭식과 그로 인한 체중 요요현상, 청소년의 성장저해 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성장기의 청소년, 임산부, 수유부, 당뇨환자 등 만성 질환자는 간헐적 단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