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공항에 ‘고피자(GOPIZZA)’ 매장을 열고 고피자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유명한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로봇이 굽는 1인용 피자’로 유명한 푸드테크 스타트업 고피자의 창업자인 임재원 대표(33)는 향후 5년 안에 고피자를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외식 기업으로 키우겠다며 이처럼 밝혔다. 임 대표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1조원이 넘는 외식 기업이 나오지 않았다. 맥도날드가 80년 걸려 4만 개 매장을 냈는데 고피자는 10년 안에 1만 개 매장을 내는 게 목표”라며 “거창한 꿈이긴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맥도날드 정도의 매장 수와 인지도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진지한 눈빛과 차분한 말투 속에는 당찬 포부가 함축돼 있었다.
싱가포르경영대(SMU), KAIST 대학원(경영공학 석사)을 졸업한 임 대표가 물류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중 ‘내 사업을 하고 싶다’며 부모님과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돈을 빌려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투자 혹한기임에도 미래에셋증권과 GS벤처스·CJ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한 25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받은 투자금 대부분은 해외 사업에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자를 좋아했던 임 대표는 창업 당시 일반적인 피자 한 판이 혼자 먹기엔 부담스럽다는 점에서 햄버거처럼 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1인용 피자를 떠올렸다. 집에서 직접 발효시켜 만든 도우로 몇 백 번씩 피자를 구워봤지만 성에 차지 않았고, 그 길로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에 주방 보조로 들어갔다. 평일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피자 가게에서 ‘동네 백수 형’으로 신분을 감춰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다. 스물일곱 살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임 대표는 “당시 사수가 고등학교 3학년인 열아홉 살이었는데 출근 시간이 1분이라도 늦는 날은 어김없이 혼났다. 최저 시급이 얼마인지, 몇 시간을 일해야 주휴수당이 나오는지도 그때 다 배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피자 가게에서 일하면서 임 대표는 피자가 왜 한 판에 2만~3만원씩 할 정도로 비싼 음식인지 깨달았다. 임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는 도우 반죽부터 토핑 전 처리, 오븐에 구워서 자르기, 박스 접기, 박스에 담기까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치는 만큼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 같은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저렴한 1인용 피자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제조 과정을 더 간편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기존의 1인용으로 판매되던 조각 피자는 똑같이 대형 피자를 구워 한 조각씩 파는 방식이었지만, 임 대표는 피자 사이즈를 아예 5조각 크기로 줄이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다.
실전에 돌입한 그는 지인들로부터 십시일반 모은 돈과 신용대출로 2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 300만원은 31만㎞를 뛴 중고 트럭을 사는 데 사용했고 나머지는 트럭을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데 썼다. 첫 데뷔 무대는 보육원이었다. 보육원 협조를 받아 총 100인분을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야시장에 지원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의도 한강공원의 서울밤도깨비야시장에 입성한 고피자는 하루 7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야시장의 피자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피자 1호점의 위치로 임 대표가 지목한 것은 학원가 1번지인 서울 대치동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을 첫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피자를 햄버거처럼 빠르게 만들고 동선을 최대한 효율화하기 위해 직접 개발한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했다. 9개월간의 연구 끝에 탄생한 자동 화덕 ‘고븐(Goven)’이 대표적이다. 5조각으로 이뤄진 1인용 피자 6~8개를 3분 안에 자동으로 구워준다. 도미노피자, 파파존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피자 매장에서는 피자를 굽는 데 8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셈이다.
단순히 시간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임 대표는 “일반 화덕에서 피자를 구울 경우 뜨거운 화덕 앞을 사람이 지키고 서서 피자가 타지 않고 골고루 익도록 피자를 계속 돌려줘야 했다. 고븐은 화덕 안에서 팬이 자동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피자를 넣고 나면 구워 나올 때까지 사람이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며 “이 같은 시스템은 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해 주는 것은 물론, 인건비와 업무 강도를 낮춰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파베이크 도우다. 파베이크 도우는 반죽 후 발효·숙성 과정을 거친 도우를 납작하게 펴낸 뒤 약 70% 구운 상태로 급속 냉동시킨 것을 말한다. 매장에서는 도우를 성형할 필요 없이 파베이크 도우를 꺼내 재료 토핑만 해서 고븐에 넣기만 하면 된다. 고피자는 충북 음성에 2000평 규모의 생산공장인 ‘파베이크 이노베이션 센터’를 두고 파베이크 도우를 자체 생산해 전 점포에 공급하고 있다. 떡볶이 같은 사이드 메뉴도 알루미늄 호일 그릇에 담긴 채로 공급돼 오븐에 구워내기만 하면 된다.
고피자만의 감성을 담은 세련된 디자인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싱가포르에서 광고 회사에 다녔던 임 대표가 고피자 로고부터 피자 박스, 트레이, 인테리어 콘셉트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고피자는 1호점 오픈 후 2년 만인 2019년 해외로 눈을 돌렸다. 사업 초기부터 그가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벌인 것은 국내 피자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였다. 임 대표는 “고피자가 최초의 1인용 피자라는 경쟁력이 있긴 하지만, 국내 시장 규모에 비해 피자 업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해외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피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열심히 해외 곳곳에 매장을 열었다. 특히 홍콩을 제외한 3개국은 마스터프랜차이즈(MF) 계약을 맺은 파트너사를 통하지 않고 본사가 직접 현지 법인을 설립해 시장을 개척했다. 직영점을 통해 가능성을 먼저 입증한 뒤 본사가 가맹점을 내주는 형태다. 임 대표는 “국내의 경우 개인형 점주가 대부분이지만 본사가 직접 진출해 있는 해외 시장에서는 한 번에 10~20개 점포를 계약하는 법인형 점주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매장 관리 역량이나 확장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CJ그룹의 CGV도 고피자의 가맹점주 중 하나다. 한국, 인도네시아 등 국내외 CGV 점포 10곳에 고피자 매장을 연다. 싱가포르의 주유소 브랜드 칼텍스도 2021년 11월에만 고피자 매장 4개를 열었다. 현재 고피자 매장 3개를 운영 중인 싱가포르의 유서 깊은 외식업체 찹스틱스 앤 빕스도 2023년 연내에 매장을 20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2023년 초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허브로 꼽히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터미널2 출국장 내에 새로운 직영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항 시설을 리뉴얼하면서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점하게 됐다. 출국장 한가운데 자리하는 아일랜드식 매장으로 일반적으로는 공간을 덜 차지하는 카페가 들어서던 자리지만, 공항 측에서 먼저 고피자에 출점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대표는 “전 세계 1위 공항이고 보안이 굉장히 까다로운 출국장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창이공항점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매장에는 10여 명의 전문 연구인력을 갖춘 고피자 미래기술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고븐 2.0’ ‘고봇 스테이션’ ‘고봇’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 등 첨단 기기들이 도입될 예정이다. 기존 고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피자를 구워서 내놓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AI와 로봇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어느 매장에서든 균일한 품질의 피자를 갓 구운 상태로 더욱 빠르게 받아볼 수 있게 된다.
고봇 스테이션은 사람이 고븐 2.0에 피자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로봇이 알아서 굽고 순서대로 꺼내 자르고 고객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따뜻하게 보관해주는 전자동 시스템이다. 고븐 2.0은 고봇 스테이션에 맞춰 고븐의 초기 모델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사람이 도우 위에 재료를 토핑할 때 피자의 토핑이 메뉴에 맞게 뿌려졌는지,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배분됐는지 등을 AI가 분석해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로봇팔로 이뤄진 고봇은 고객이 피자를 가져가면 AI가 어떤 피자인지 인식해 자동으로 소스를 뿌려준다. 임 대표는 “고봇은 매장에서 고객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재미 요소를 더해 주는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고봇 스테이션과 고봇은 교대점 등 국내외 일부 매장에서 테스트 중이다. 임 대표는 “모든 매장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각 점포의 특성에 맞춰 고피자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플래그십 매장을 중심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일반 가맹점은 점주가 원하는 경우에 한해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외에는 이전에도 자동 회전식 화덕 기기가 있었지만 7000만원 정도로 고가였다. 반면 고븐은 800만원 정도로 저렴하고 고븐 2.0과 고봇 스테이션 역시 합해도 2000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고븐과 같은 장비도 경기 고양의 일산 공장에서 자체 생산해 공급한다. 고피자는 향후 디지털 전환 단계를 계속해서 고도화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임 대표는 “향후에는 재료 토핑까지 자동화하는 로봇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기술들이 잘 연동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전 세계 모든 매장의 온·습도, 대기 질은 물론, 어떤 피자를 잘 만들고 못 만드는지, 몇 판이 팔리는지 등을 트래킹할 수 있는 빅데이터 대시보드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고피자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2022년 예상 매출액은 본사와 가맹점을 합해 350억원 수준이다. 2023년 1월에는 서울 상수동에 있던 사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 임 대표는 “2023년에는 해외 매장만 100개 이상 오픈한다. 매출액 500억~1000억원 규모로 무리 없이 흑자 전환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스타트업은 큰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혁신적인 솔루션을 내놓는 하나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피자는 여전히 스타트업”이라고 말했다.
▶ 고피자는
고피자는 임 대표가 2016년 서울 여의도 야시장 푸드트럭으로 출발한 피자 프랜차이즈다. 고피자는 임 대표가 직접 개발한 자동 화덕 ‘고븐(GOVEN)’으로 피자 5조각으로 이뤄진 1인용 피자 6~8판을 3분 만에 구워내고, 이를 5400원(클래식 치즈 피자 기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혼밥족’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7년 서울 대치동에 낸 한 평짜리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내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인도, 홍콩, 인도네시아에서 18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점포의 4개 중 1개는 해외 매장이다.
송경은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