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스물다섯살의 나이에 창업했다. 20대 창업자가 많지 않던 시절, 무엇보다 어린 나이가 무기였다. 물론 실력보다 나이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있었다. 그로 인해 사업 전개가 어그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젊었다. 8년여가 지난 현재, 스물다섯이던 청년은 30대 중반의 CEO가 됐다. 그가 창업한 APR코퍼레이션(이하 에이피알)은 뷰티 브랜드 ‘에이프릴스킨(Aprilskin)’,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널디(NERDY)’, 뷰티 솔루션 브랜드 ‘메디큐브(Medicube)’,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포멘트(Forment)’, 건기식&헬스케어 브랜드 ‘글램디(Glam.D)’, 즉석 포토부스 브랜드 ‘포토그레이 오리진(Photogrey Oreazin)’ 등 6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에이피알의 매출은 전년 대비 17.8% 성장한 2591억원, 올 매출 목표는 4700억원이다.
창업 이후 사업에만 매진하며 성장을 이끈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자사몰을 통한 D2C(소비자직접거래) 사업이 주효했다”며 “유통혁신과 좋은 제품이 만나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젊음이 무기였던 김 대표가 그동안 준비한 신무기는 ‘널디’와 ‘메디큐브’. 스트리트패션의 대장주로 떠오른 ‘널디’는 지난해 매출 900억원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약 80%나 성장했다. 올 1분기엔 중국에서만 약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 폭이 전년 대비 약 70%나 상승했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메디큐브’는 지난 3월부터 ‘디지털 클리닉’ 프로젝트를 전개 중이다.
뷰티기기 브랜드 ‘메디큐브 AGE-R(에이지알)’을 론칭하며 3종의 기기를 선보인 데 이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AGE-R’을 개발해 피부 타입과 관리방법은 물론 비대면 상담까지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클리닉’을 구현했다. 경락, 리프팅, 토닝의 효과를 담은 에이지알 제품은 강력한 자극과 효과가 알려지며 3월 론칭 당시 2만5000대가 판매됐다. 김 대표는 “에이지알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며 “이를 통해 내년에 상장을 마무리하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니콘 너머 데카콘을 향해
▶사무실이 굉장히 멋집니다. 석촌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요. 이게 성공의 향기인가요.
▷성공이요? 당연히 아니죠. 저는 중간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사가 얼마나 잘 되느냐를 바라보는 척도는 여러 가지인데, 그게 기업가치나 시가총액이라면 저희 목표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원) 이상, 설립한 지 10년 이하의 스타트업)이나 그걸 넘어서는 데카콘 기업(기업가치 1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의 신생 벤처기업)입니다. 일단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성공과는 거리가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입주하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꽤 빠른 성장세예요.
▷처음엔 낙성대역 앞 건물 반지하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강남역으로 이전했고, 다시 삼성역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이 네 번째 사무실이네요. 20대 중반에 창업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업계를 혁신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도했던 게 유통혁신이었어요. 자사몰이라고도 하는데, D2C라는 사업 모델이 주효했습니다. 중간 유통상이나 온라인 구매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구축한 온라인몰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죠. 자사몰이 중요한 이유는 구매 데이터가 쌓이면서 자가발전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고객 후기를 보고 기존 제품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요. 그렇게 고객을 연구하며 만들어야 소비자에게 다시 선택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현재는 유통혁신의 다음 스텝을 밟고 계신 것 같은데요.
▷한 단계 점프하기 위한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이젠 유통혁신을 넘어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디바이스와 디지털클리닉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현재 가장 집중하는 분야인데, 국내 뷰티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뷰티 시장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존의 시스템을 혁신하려면 그 시스템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20대 중반에 창업했다는 사실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때로 단점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혁신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어리다는 게 단점일 때가 수도 없었죠.(웃음) 뷰티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무조건 백화점이나 오프라인 매장에 넣어야 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공부밖엔 답이 없었어요. 지금도 사업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배웠던 것 중 하나가 업계 관행이었어요. 경력이 오래될수록 자칫 그 관행을 당연시할 수 있거든요. 오히려 새로 진입한, 시작한 이들의 눈에 혁신의 가능성이 더 잘 보일 수 있는 것이죠. D2C에 매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일면이 에이피알 성장의 원동력인가요.
▷그렇죠. 저희는 업계 관행을 당연시하지 않습니다.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두툼해질수록 혹여 그런 관행에 고착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좀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는데요.(웃음)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과 제품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설명하면 ‘화장품은 결국 보습’이란 말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저희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등 글로벌 업계에선 피부에 갖가지 효과를 주는 성분들을 생각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거든요. 실제 효과를 주는 성분과 제품의 콘셉트를 잡아주는 성분은 분명 다른데, 너무 콘셉트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었어요. 쉽게 말하면 제품은 거기서 거기이니 마케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데, 저흰 마케팅은 이미 자신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좋은 제품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자신 있다고 하셨는데, SNS 등 바이럴마케팅부터 빅모델까지 마케팅 방식이 다양합니다. 특히 개그맨 유재석, 배우 김희선처럼 빅모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타깃 소비자가 1000명일 때와 1만 명, 10만 명, 100만 명일 땐 규모가 달라지니 당연히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규모를 키우면서 더 많은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선 그분들을 설득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체험단이나 리뷰 등으로 제품의 신뢰를 높일 수도 있고, 빅모델을 쓰는 것도 방법이죠.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기 위한 추가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유재석 씨가 처음 메디큐브 제품을 광고했을 땐 직접 투자한 것 아니냐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어요. 유재석 화장품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투자요? 아이고,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일단 저희도 광팬이었고, 그분의 생활이나 행동, 태도가 많은 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잖아요. 단순히 인기만이 아니라 그런 여러 가지 면을 고려했습니다. 그분을 신뢰하는 만큼 저희 제품도 신뢰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할까요.
▶현재 에이피알에선 메디큐브, 널디를 포함해 6개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주력 브랜드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각각 전략은 다르지만 모든 브랜드가 잘되고 있어요. 올해 목표인 매출 4700억원, 글로벌 기업 도약 측면에선 메디큐브와 널디의 선전이 관건입니다.
▶단순히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희 목표는 ‘소비재 업계의 BTS’예요. 아미 분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BTS가 한국 아이돌이라서 열광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한국 가수일 뿐이죠. 저희 제품도 K뷰티라서가 아니라 글로벌 제품 중 제일 좋아서 구매하는 제품이고 싶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브가 저희 목표 중 하납니다.
▶글로벌 1등 제품이 되고 싶단 말이군요. 그럼 현재 주력하고 있는 메디큐브의 뷰티기기 AGE-R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직접 써보기 전까진 모르실 겁니다.(웃음) 요즘 정말 뷰티 디바이스 관련 리뷰를 많이 봅니다. 뷰티 디바이스 분야는 어떤 표준이나 기준이 없어요.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10여 개 브랜드가 있는데 각각 적용된 기술도 다르고 작동되는 원리도 다릅니다. 그러다보니 효과를 주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죠.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저희 제품이 주는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은 현재 없습니다. 한번 사용하면 사용하지 않던 시기로 되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는 이유도 단기적인 매출 상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많이 알리려는 게 목적이에요.
▶해외 시장 공략도 함께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일단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 전개하고 있는데, 판매량이 점차 올라오는 게 느껴집니다.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제품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다보니 입소문이 빨라졌어요. 5월 말부터는 해외배송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Let's Grow Together
▶에이피알은 대표님처럼 직원들의 연령대도 비교적 낮은 기업으로 알려졌는데요.
▷현재 35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9년과 2020년에 성장세가 커지면서 같이 일하는 분들이 늘었어요. 이직률도 업계에선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직원라운지에 ‘같이 성장하자’라는 문구의 구조물이 있던데요.
▷모든 분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돈도 많이 벌고 하는 일도 가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피알에서 근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저희가 중시하는 건 ‘메이크잇’ ‘그로업’ ‘워크투게더’예요. 많은 제약이 있더라도 혁신과 창의적인 방식으로 목표한 바를 달성하고, 무조건 성장해야죠. 모두 다 똑같이 고등학교 3년을 보내지만 수능 성적은 제각각이잖아요. 같은 기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중요한 거죠. 절대 경험을 흘려보내선 안 됩니다. 움켜쥐어야죠. 그래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잘해야 합니다. 지금껏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이 다른데 갈등이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아요.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년 목표 중 하나가 상장입니다.
▷사실 상장 자체를 목표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는데, 업계를 혁신하고 점프할 수 있는 AGE-R이란 무기를 갖게 됐고, 이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과 확장도 가능한 시기가 됐다고 확신합니다.
▶최근엔 10대부터 고령층까지 창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그분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하신다면.
▷생각보다 포기해야 할 게 많습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업에 완전히 매진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거든요. 얼마 전에 사업 관련 모임이 있었는데, 참석하신 대표님들께 하루 일정이 어떠시냐고 물어봤어요. 정말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다 비슷했습니다. 일 외엔 관심이 없었어요. 나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일 외에 다른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He is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수학했다. 2014년 에이피알을 창업하고 에이프릴스킨을 론칭했다. 2016년 메디큐브와 글램디를, 2017년 널디, 포멘트, 포토그레이 오리진을 론칭했다. 2020년 에이피알 단독대표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