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한·중 반대에도 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 왜… 美 등에 업고 국내외 논란 잠재우려는 노림수
김규식 기자
입력 : 2021.04.28 17:44:08
수정 : 2021.04.29 09:45:54
일본 정부가 주변국의 염려 등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25만t(3월 중순 기준)가량 쌓여있는 오염수가 2년 후부터는 태평양으로 흘려보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지역 어민, 시민단체 등이 일본의 일방통행에 대해 ‘정보공개와 국제적 검증’ 등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거나 ‘국제적 관행’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정화하고 바닷물로 희석해 방사능 물질 농도를 ‘방출 기준치’ 이하로 낮춰 내보낼 예정이어서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방출 후 200일이면 제주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이 있는 만큼 한국 입장에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전문가들도 IAEA 등과 함께 국제적 검증·감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일본 정부는 4월 13일 관계 각료(장관)회의를 열고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의 탱크들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한다는 계획을 담은 ‘처리수 처분에 관한 기본 방침’을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을 결정한 가운데 1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에서 직원이 일본산 가리비의 방사능 측정을 하고 있다.
▶“2년 후 방류 개시” 방사능 오염수 하루 140t 생겨
스가 총리는 “해양 방출은 설비 공사와 규제에 대응해 2년 정도 후에 시작한다”며 “트리튬(삼중수소) 농도를 국내 규제 기준(1ℓ당 6만 베크렐(㏃))의 40분의 1,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식수 기준(1ℓ당 1만 베크렐)의 7분의 1까지 낮춘다”고 설명했다. 그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가 전면에 나서 안전성을 확실히 확보하는 동시에 ‘후효(風評, 풍문·소문)’ 불식을 위해 모든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지진해일)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냉각수 순환이 멈추면서 수소폭발과 핵연료가 들어있는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했다. 이때 냉각을 위해 다량의 해수를 부었고 이후 빗물·지하수가 스며들며 오염수가 생기고 있다. 2014년에는 하루 500t 이상 발생했지만 그 양이 점차 줄어 최근에는 하루 140t가량이 생기고 있다. 1000여 개의 탱크에 보관할 수 있는 물량은 137만t이고 3월 중순 기준으로 125만t가량이 찼다. 지금 추세면 내년 가을 모든 탱크가 가득 찬다.
오염수에는 세슘·스트론튬·삼중수소 등의 방사능 물질이 들어있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62종의 방사능 물질을 정화한 뒤 ‘처리수’라는 이름으로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삼중수소는 ALPS로 제거되지 않는 데다, 정화된 오염수의 70%가량에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정화된 후에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물질이 남은 오염수는 ALPS로 다시 정화할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방출 전에 바닷물을 부어 오염수를 100~1700배 희석시키고 삼중수소 등을 기준치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삼중수소를 해양에 방출할 때의 농도 한도를 1ℓ당 6만 베크렐(㏃)로 정하고 있는데 기준치의 40분의 1(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면 북태평양 해류와 구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국 인근 해양에 도달한다. 과거 연구에선 오염수가 한국 해양에 도달하는 기간이 길게는 4년, 이르면 1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이 기간이 당겨졌다. 지난해 10월 독일 킬대 헬름홀츠 해양연구소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약 200일 만에 제주도에, 280일 만에 동해 앞바다에 도달한다는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일본이 한국·중국 등의 반발과 지역 어민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을 강행한 것은 도쿄올림픽과 중의원 선거 등의 정치일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의 자민당 총재임기가 9월, 중의원 임기가 10월이어서 그 전에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직전이나 총선직전에 이 문제를 꺼내 국내외에서 논란이 생기면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인접한 국가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한국·중국을 포함해 세계에 있는 원자력 시설에서도 국제기준에 기초한 각국 규제에 따라 트리튬이 포함된 액체 폐기물을 방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해양 방출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건 한국·중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14일 신임장 제정식에서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3월 14일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와 함께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잠정 조치’란 국제해양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일본이 방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가처분 신청’을 의미한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설명했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은 3월 13일 “강한 유감을 표하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해 나갈 것”이라며 “오염수 처리과정 전반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와 검증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인접국 국민에 대한 폭거”라며 제주를 비롯해 부산·경남·울산·전남 등 5개 지자체 차원에서 ‘오염수 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한국, IAEA와 국제적 검증·감시 나서야
중국은 “주변 국가에 되돌릴 수 없는 손해를 끼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3월 13일 홈페이지에 올린 담화문에서 “일본의 결정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국제 건강 안전과 주변국 국민의 이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또 “바다는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원전 사고 오염수 처리 문제는 일본 국내 문제가 아니다”라며 “일본이 책임을 인식하고 과학적 태도로 국제사회, 주변 국가, 자국민의 심각한 관심에 대해 응당한 대답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중뿐 아니라 일본의 시민단체와 지역 어민 등도 오염수 해양 방출 결정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일본 정부의 결정이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지지 입장을 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Treated Water) 결정을 위한 일본의 투명한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며 “일본 정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계속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가 IAEA와 긴밀히 협조해 방사능 감시, 폐기물 처리, 원전 폐로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며 “특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이 여러 선택지와 효과를 잘 따져보고 투명하게 결정했으며,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핵 안전 기준에 대한 접근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표명에 대해 16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사전에 일본의 결정을 양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가 총리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대면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13일 성명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저장돼 있던 처리수의 처리 방안을 결정했다는 일본의 발표를 환영한다”며 “IAEA는 이 계획의 안전하고 투명한 이행을 추적 관찰하고 확인할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