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실질적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문민정부 2기를 여는 데 성공하면서 미얀마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50년 군부 독재를 끝내고 2016년 문민정부 1기가 출범할 당시 미얀마는 국제 사회에서 신엘도라도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경제 성장 등 여러 잠재력이 커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까지 방문하며 미얀마 새 정부에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1기 문민정부는 이 같은 기대와 달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정 안정부터 경제 문제까지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국가지만 인권탄압국이란 오명까지 받은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미얀마의 문민화 과정에서 2기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지 언론과 외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연방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 집계 결과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20년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연방 상하원 의석 476석 가운데 396석을 확보했다. 이는 전체 의석 중 83.2%에 해당하는 수치로 지난 2015년 총선 때보다 6석이 더 많은 것이다. 이는 NLD가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수치로 의미가 남다르다.
이에 반해 군부와 연계된 제1야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5년 전 총선 때 획득한 42석보다 9석이 적은 3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나머지 47석은 소수민족 등이 결성한 군소정당이 가져갔다.
NLD는 이와 관련해 “이번 압승은 국민이 수치 고문의 리더십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총선이 미얀마 최초로 출범한 문민정부에 대한 평가의 성격이 짙었던 것을 감안하면 일단은 국민들은 긍정적 평가를 보낸 것이다.
그렇다고 문민정부 2기가 마냥 안심하기에는 안팎의 사정이 녹록지 않다.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미얀마 문민정부 2기 또한 미완성된 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미얀마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게 될 새 정부의 과제들을 짚어보면 먼저 소수민족 문제를 들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가 치안 불안을 이유로 소수민족 강세지역인 서부 라카인주(州)를 중심으로 22개 선거구의 투표를 취소할 정도로 내부 갈등은 여전하다. 1기 문민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도 소수민족 문제 해결이었지만 해법을 전혀 찾지 못했다.
특히 로힝야족 문제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 미얀마 문민정부 1기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도 로힝야족에 대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응이 논란에 오른 것이 한몫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아 인권을 최우선시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지만 로힝야족에 대해서만은 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로힝야족을 상대로 자행된 미얀마군의 집단학살 의혹에 대해 침묵하거나 군부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고,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 든든한 우군이었던 미국 영국조차 등을 돌릴 정도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 같은 서방의 태도에 대해 적잖이 당황하면서 측근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로 이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문민정부 2기의 국정과제 상단에도 이 소수민족 문제 해결이 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법의 일환으로 2기 정부 출범에서 소수민족 출신의 내각 진출 확대 등이 점쳐지고 있다.
이와 함께 내정 중 헌법 개정도 매듭지어야 할 문제다. 1기 문민정부 때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정부는 군부가 만든 헌법에 대한 개정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큰 군부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군부의 동의 없이는 헌법 개정과 관련한 작업을 한걸음도 뗄 수 없다. 상하원 의석의 25%가 군부에 할당돼 있기 때문이다. 개헌에 필요한 찬성표는 75% 이상이다. 2020년 NLD는 이 숫자를 줄이려 했지만 군부의 방해로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단독정부 구성이 가능해진 문민정부 2기에는 운신의 폭이 넓어져 헌법 개정을 둘러싼 군부와의 싸움은 더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성장 동력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국가 경제 회복도 시급한 과제다. 사실 문민정부 1기의 경제 정책은 낙제점 수준이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은 NLD 집권 첫해인 2016년 5.75%를 기록한 후 줄곧 내리막이다. 2019년에는 2.89%로 떨어졌고, 2020년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이보다 더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민정부 1기가 시작할 당시인 2016년 세계은행이 미얀마의 실질 GDP를 평균 8%대로 예측한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수치다. 1기 문민정부 집권 기간 내내 6%도 넘기기 버거웠던 점을 감안하면 너무 높은 기대치였던 셈이다. 원인으로 문민정부 1기의 경제 정책이 투자 친화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아시아는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규제 개선은 요원했고, 개혁 작업도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집권당을 향해 “국가 경제 정책을 제대로 운용할 능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라며 “정부 당국이 세세한 것까지 다 챙기려 하는데 기업들의 활동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뼈아픈 지적까지 나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외국인 투자도 급격히 줄었다. 미얀마 투자청에 따르면 문민정부 1기가 들어선 직후인 2016~2017년 투자청에 의해 승인된 총 투자액은 66억5000만달러로 직전 회계연도(2015~2016년) 94억8500만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7~2018년 회계연도에 승인된 외국인 투자액도 57억1800만달러에 불과했다. 아웅산 수치 2기 정부가 경제 성장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를 늘리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됨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미얀마 내에서는 2기 정부의 초기 내각 구성에 경제 회복의 의지를 담은 인선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얀마가 당면한 과제는 외교 노선의 확립이다.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한 미얀마는 예로부터 외세가 난립하던 곳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미·일·중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문민정부 1기 출범 당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미얀마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의 일환이었다.
미얀마 문민정부 2기가 맞닥뜨린 외교환경은 과거보다 더 복잡해졌다. 역내 자국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려는 중국, 미국 새 정부의 미얀마를 포함한 아세안 내 대중국 견제 정책, 이로 인한 미중 갈등 심화, 그리고 아세안 초기 맹주 격이었던 일본의 영향력 회복 시도, 여기에 벵골만을 사이에 둔 인접국이면서 최근 커진 경제 덩치로 아세안 내에서 입지를 마련하려는 인도 등 4개국이 벌이는 각축전에 미얀마는 어려운 외교적 선택들을 해 나가야만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들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자국 성장을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미얀마로서는 이들을 마냥 피해 다닐 수만은 없는 상황. 그래서 미얀마 2기 문민정부는 자국의 경제에 대한 지원을 고리로 줄타기 외교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분석이 많다. 표면적으로 중립 외교를 표방하겠지만 철저하게 실리 위주로 외교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방콕포스트는 “무역 촉진, 투자 확대 등 경제적인 요인이 외교정책 결정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미얀마 외교가 재조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 외교도 유의해서 봐야 할 대목이다. 신남방정책 이후 우리 금융기관들이 대거 미얀마 진출에 성공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미얀마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외교적 행보가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