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휘발유를 쓰는 신차를 2030년대 중반께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쿄에서는 2030년부터 휘발유 신차의 판매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탈(脫)탄소’ 전략의 일환으로 이 같은 전략들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020년 10월 국회연설에서 ‘2050년 온실가스 실질 배출 제로’를 선언한 후 후속 대책·대응들에 탄력이 붙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 일본은 이 분야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였고 국제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9년 아베 총리가 유엔 기후변화회의 때 연설하려다 거절당한 게 이런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움직임은 아베 내각 때와 다르다. 스가 총리가 일관된 메시지를 내고 있고 이에 따라 관료와 기업들도 서두르는 모습니다. 일본 정부는 탈탄소 전략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2050년 온실가스 실질 배출 제로’ 목표를 법제화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장기 목표를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국내외에 일본의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요타 자동차는 12월 9일 수소전지차(FCV) 2세대 ‘미라이’를 출시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지구 온난화 대책과 관련한 중장기 목표를 온난화대책법에 근거한 ‘실행계획’에 담아왔다. 예를 들어 2016년 작성된 실행계획에는 2030년 온실가스를 2013년에 비해 26% 줄이고, 2050년까지 80% 줄인다고 규정돼 있다.
실행계획은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할 수 있는 데 비해 법에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넣으려면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온실가스 정책’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로 분석된다. 정권교체 등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바꾸려 할 때 각의에서 의결하는 것보다는 법 개정을 하는 절차가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에 일본이 의지를 갖고 선진국의 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스가 총리의 목표에 따라 일본 정부가 우선 검토하고 있는 탈탄소 전략은 ▲휘발유 차량 감소 ▲수소 등 친환경 연료 활용 증가 ▲풍력 등 친환경 발전 증가 등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30년대 중반까지 신차 시장에서 휘발유 차량을 퇴출시키는 정책을 추진한다. 니혼게이자이·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대 중반부터 휘발유·디젤 차량의 신차 판매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자동차 업계 등과 이를 논의하고 있다. 휘발유 신차가 퇴출된 자리는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등이 대체하게 할 방침이다. 일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6% 정도여서 ‘탄소 실질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차 전략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의 신차 판매 중 휘발유·디젤의 비율은 61%이고 하이브리드가 30%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휘발유·디젤차의 판매 비중을 30~50%로 끌어내린다는 방침이다.
도쿄도는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휘발유의 신차 판매를 정부 계획보다 빠른 2030년부터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2030년부터는 신차를 전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에 한정하겠다는 얘기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이 같은 방침에 대해 “대도시의 책무”라고 밝혔다.
자동차 메이커도 탈탄소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도요타는 2020년대 전반에 차세대 전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신형 전기차를 시판한다는 계획을 잡았다. 전기차 시장의 대세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음극에서 양극으로 리튬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로 가연성 액체를 쓰는 데 비해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를 활용한다. 이에 따라 배터리의 수명·안정성·성능 등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도요타가 개발 중인 전기차의 경우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하면 리튬이온 전지의 두 배 이상을 주행할 수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보도이다. 충전시간도 기존 배터리에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에서 수천 개의 특허를 보유하는 등 이 분야를 이끌고 있다. 미쓰이금속 등 일본 부품소재 업체들도 관련 소재 생산을 위해 나서고 있다. 닛산도 전고체 배터리 탑재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중국·한국 등이 앞서가고 있는데, 전고체 배터리를 통해 전세를 역전해 보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전략이고 이를 위해 수천억엔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친환경차를 조기에 확산함으로써 탈탄소 트렌드 속에서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친환경차의 주력 모델로 전기차와 전기·휘발유 등을 같이 쓰는 하이브리드차를 밀고 있는 데 비해 유럽 등 주요 지역에서는 하이브리드도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준’과의 괴리로 향후 일본 차업계의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영국은 2030년 신차 판매 금지대상으로 휘발유차를 넣고 2035년에는 하이브리드에도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일본의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제철 업계에서도 탈탄소 움직임이 보인다. 일본제철은 2050년 온실가스 실질 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철강산업은 대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업종이다. 2019년 일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억3000만t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게 3억6400만t에 달한다. 특히 철강 산업의 배출은 1억5500만t에 달했고 그 중에 일본제철의 배출량은 9400만t으로 일본 내 기업 중 최대수준이었다.
일본 치바 해안에 있는 해상 풍력 발전 시설
일본제철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활용할 방법의 2가지 축은 수소 활용을 높이고 전기고로를 늘리는 것이다. 일본제철은 수소철강 방식을 2030년까지 적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30%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코르크를 환원제로 활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하고 쇳물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이 환원제를 수소로 바꾸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석탄을 활용하지 않는 전기고로의 설치를 늘리고 성능도 개선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가 탈탄소 전략으로 추진하는 또 다른 방향은 수소 등 친환경 연료 사용이다. 일본 정부가 2030년까지 국내 수소연료 이용량을 연간 1000만t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닛케이가 최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수소연료 사용량을 2030년까지 30만t으로 높인다는 전략을 세웠었다. 이것과 비교하면 목표량을 33배가량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수소 연료를 발전과 연료전지차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단순 계산하면, 연간 1000만t의 수소연료로는 100만kW급 발전소(원자력 발전소 1기 정도)를 30기 이상 가동시킬 수 있고 이는 일본 전체 전력설비의 10%에 해당한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수소연료 활용 확대에 맞춰 연료전지차의 보급에도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탈탄소와 관련해 조성될 것으로 보이는 2조엔의 기금에서 수소연료 관련 설비투자 등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 등 관련 업체들은 수소관련 인프라 조성에 협력하기 위해 ‘수소밸류체인추진협의회’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제로 전략으로 풍력발전도 늘린다. 일본의 해상풍력 목표는 2030년 1000만kW인데, 이를 2040년에는 최대 4500만kW로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다. 일본에는 해상풍력 발련과 관련한 기간 부품을 만드는 곳이 별로 없다. 일본 정부는 해상풍력 발전 관련 부품업체를 육성해 장기적으로 부품의 60%를 국내에서 조달하고 이를 통해 고용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