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에 다다른 KB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인수에 새삼 아세안 금융 시장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기에 비해 뜸해진 신남방정책 열기와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형 금융기관이 아세안 현지 은행에 대한 인수 의지를 계속 보이는 것은 그만큼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은행이 인수하려는 인도네시아의 부코핀은행은 그 자체로는 별로 매력적인 M&A 물건이 아니다.
현지 자산 기준 14위에 해당되는 중소형 은행으로 부실 건전성이 현지 경쟁 은행 대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유동성 위기에 대한 소문이 현지 SNS를 통해 돌면서 고객들이 현금 인출 소동이 벌어졌다. 은행에 재무건전성 악화 논란은 치명적이다. 부코핀은행의 주가는 2018년 430루피아대에서 지금은 200루피아 선까지 추락한 상태다.
국민은행 측은 은행의 유동성 논란과 관련해 “루머일 뿐이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보이며 노선 이탈은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의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사진은 7월 2일 최창수 KB국민은행 글로벌사업그룹 대표가 참석한 자카르타 현지 미디어 콘퍼런스.
그동안 우리 금융업계에서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에 꽤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러다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힘입어 우리 은행들의 아세안 공략 움직임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우리 은행들에게 아세안서 가장 관심이 큰 시장은 단연 인도네시아다. 2억700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내수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에서 인도네시아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 위기를 넘긴다면 다시 성장궤도에 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 소득수준이 담보돼야 성장할 수 있는 자동차 시장의 글로벌 경쟁이 격심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수 의지를 꺾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금융 인프라 수준이 경제 성장 속도에 비해 취약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5세 이상 인구 중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49%밖에 되지 않는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은 “이는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와 같은 인근 국가보다도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취약한 금융 인프라는 인도네시아의 큰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외부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지 은행 계좌 비율을 높이기만 해도 수익성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측은 “소득 및 생활수준 향상으로 중산층이 크게 늘면서 개인 대출 수요의 증가가 예상된다”면서 “GDP 대비 낮은 여신 비율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했다.
국민은행 측은 “저소득층 또는 중산층이 대출 상환 의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했다. 즉 돈을 빌려줘도 떼일 염려가 적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현지화 작업 등 여러 노력들이 필요한데,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금융 선진화를 위해 부실 금융권의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역관에 따르면 2018년 7월 기준 상업은행은 총 121개나 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중 부실 은행들을 솎아 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자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외국계 은행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국민은행의 부코핀은행 인수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 같은 속내와 맞물려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은행의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 현지 진출이 의외의 호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세안 각국은 자국의 나빠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외부 투자 흐름마저 끊기면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외국계 은행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코핀은행 본사 전경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지 정부는 그동안 외국계 은행이 자국의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 추가로 자국 금융기관을 하나 더 인수하게 하는 조항을 적용해 왔지만 최근 이를 면제했다. 그리고 40%로 제한했던 외국계 금융회사의 지분 취득 규정도 이번엔 적용치 않고 있다. 우리 은행 입장에서는 추가 부담 없이 현지 은행 진출 강화를 해낼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이다.
미얀마서 올 4월 우리 은행들이 대거 현지 진출에 성공한 것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세안 내 외국 투자에 대한 낮아진 진입장벽 흐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얀마는 현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포스트 베트남으로 각광을 받을 정도로 성장성이 부각된 국가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놓여 있으면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정학적 입지는 우리뿐만 아니라 서방국가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이에 우리 주요 은행들은 선점의 일환으로 수년 전부터 미얀마 시장 선점을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한창인 4월 현지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얀마 중앙은행이 IBK기업은행과 KB국민은행에게 현지법인 설립을 위한 예비 인가를 내 준 것이다. 미얀마가 외국계 은행에 현지 법인 인가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지법인의 경우 현지 은행이 하는 업무의 대부분을 취급하면서 지점을 10개까지 둘 수 있다. 외국계 기업은 물론 현지 기업과도 거래할 수 있다.
미얀마가 이처럼 우리 은행들을 다른 국가들의 금융기관과 달리 특별 대우키로 결정한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해 한 아세안 전문가는 “미얀마도 다른 아세안 국가들처럼 중국의 영향력을 크게 받는 입장인데, 국가 발전 차원에서 다변화 전략을 펴는 자국의 실리 차원에서는 효과적”이라면서 “이런 차원에서 최근 코로나19 사태 속 국가적 역량이 돋보인, 신남방정책을 통해 꾸준히 대아세안 정책을 펴온 우리에게 손길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미얀마는 특별한 국가다. 베트남에 집중된 우리의 아세안 정책을 다변화 시킬 전략 차원에서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도 미얀마에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예가 산업은행이 지난 4월 양곤 지점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를 미얀마로부터 따낸 것이다. 산업은행이 실제 지점을 열게 되면 1998년 외환위기 때 태국 방콕지점을 철수한 이후 22년 만에 다시 내륙 아세안에 진출하게 되는 의미 있는 순간이다. 국책 은행의 인도차이나 반도 재진출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정부 차원에서 미얀마와의 관계 강화 및 대규모 투자 등도 있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인 설립에 성공한 국민은행 관계자는 “미얀마는 지정학적 입지부터 성장 잠재력까지 포스트 베트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국가”라면서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 진출에 앞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현지 금융 산업의 선진화에도 기여해 양국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아세안 내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금융에 우리 금융권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지 은행 계좌 비율을 높이는 것보다 디지털 고객들을 잡는 것이 현지를 제대로 파악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자카르타 무역관은 “인도네시아는 인프라가 취약한 도서국가로 영토가 넓어 지점망 확충을 통한 고객기반 확대에 한계가 있다”면서 “온라인 또는 모바일 금융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유통채널을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무역관은 또 “인도네시아의 40세 이하 인구 중 35%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상품 개발, 현지 브랜드 인지도 제고 등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카르타 무역관의 디지털 금융에 대한 설명은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다른 아세안 내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현실적 여건 때문에 은행에 가는 것을 꺼리는 현지 특성은 아세안 각국의 공통분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디지털이란 플랫폼에서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 또한 현지의 주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이미 관련 산업들은 우리보다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우리 은행들의 현지화 전략이 더욱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