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최첨단 달리는 中 감시 시스템, 공안이 휴대폰으로 얼굴 찍자 ‘개인정보’ 줄줄… 무단 횡단하면 대형 스크린에 얼굴·신분 노출
김대기 기자
입력 : 2019.11.01 16:11:59
수정 : 2019.11.01 16:28:20
10월 6일 베이징시 경계에 위치한 공안 검문소. 중국 허베이성에서 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 공안이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을 했다.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관행을 알고 있었기에 여권을 소지한 채 검문소 안에 들어가 공안 앞에 섰다. 여권을 건네자 무심하게 한 번 훑어보고는 바로 돌려줬다. 솔직히 자세히 보지 않는 것 같았다. 형식적으로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공안은 “잠시 서 있어라”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기자의 얼굴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1~2초쯤 지났을까. 공안 스마트폰 화면에는 두 명의 사진이 나란히 떴다. 공안은 기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뒤 우측 사진을 터치했다. 그러자 기자의 이름, 생년월일, 여권번호, 비자 정보, 현 주소지, 직업 등 개인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화면으로 전환됐다. 문득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너를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성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검문소 안을 짧은 시간에 훑어보니 곳곳에 폐쇄회로(CC)TV 감시 카메라와 크고 작은 스크린들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마음에 용도를 물어보니 공안은 “호기심이 많군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교통 통제 시스템이에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 중국인 운전기사인 천타오 씨는 차창 밖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베이징 출신인 천 씨는 “외국인이 보기엔 아직도 베이징의 교통상황이 무법천지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서는 정말 비약적으로 변했다”고 운을 뗐다. 천 씨의 설명은 이렇다. 중국의 최첨단 감시 시스템이 중국인의 교통질서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불법 유턴, 역주행, 무단 횡단 등에 대해 위법 인식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CCTV의 확산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공안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상관이 없었는데 요즘엔 위법 운전을 하다 CCTV에 찍히면 벌금과 벌점이 매겨지기 때문에 위법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고 말했다. 이날 베이징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는 많이 막혔다. 갓길 차선으로 달리는 차량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5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갓길로 운행하던 차량들이 일제히 도로 쪽으로 끼어 들어왔다. 이에 천 씨는 “전방에 CCTV가 있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고 재빨리 대응하는 것”이라며 “자발적으로 교통 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얌체 운전자들도 많아 CCTV를 통해 규제하는 것도 준법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도심으로 진입해 신호등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잠시 차가 섰다. 천 씨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요즘엔 보행자들도 CCTV를 의식한다”며 “특정 지역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CCTV에 걸리면 얼굴을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천 씨가 언급한 특정 지역인 차오양취 진퉁동루로 가봤다. 횡단보도 앞을 기준으로 10미터 전방에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스크린에 무단횡단을 한 사람들의 얼굴과 신호를 어긴 장면이 공개되고 있다는 것. 중국의 CCTV와 안면 인식 기술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론 중국이 빅브라더 시대를 빠르게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중국 당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CCTV 기술에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까지 융합시켜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당국은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더욱 촘촘하게 CCTV를 설치하고 있다. 영국 보안업체 켐페리테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감시카메라가 가장 많은 도시 ‘톱10’ 가운데 8개 도시가 중국에 있다. 1위는 중국 충칭시로 인구 1000명당 CCTV 평균 대수가 169.03대로 집계됐다. 선전(159.09), 상하이(113.46), 톈진(92.87대), 지난(73.82대) 등 도시가 2~5위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중국 공안은 감시 카메라 시스템을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보다 정교한 감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중국의 첨단기술 기업들과 긴밀한 제휴 및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5월 중국 공안은 5만 명이 운집한 콘서트장에서 수배범을 체포했는데 이때 중국의 안면인식 선두기업인 ‘센스타임’의 기술이 활용됐다. 센스타임 관계자는 “설립 초기부터 중국 공안 당국을 비롯한 지방정부와 제휴를 맺고 사업을 시작했다”며 “공공기관, 언론사에서 축적한 영상 데이터베이스(DB)를 빠르게 스캔하고 분석하는 기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선 첨단기술을 실생활의 편리성을 제고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안면인식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돼 활용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금융결제 업체인 앤트파이낸셜(알리페이)은 지난해 얼굴인식 결제 시스템인 ‘칭팅’을 보급하기 시작했고, 텐센트 역시 안면인식 지불 시스템인 ‘칭와’를 선보였다. 지난 9월 말 개항한 세계 최대 규모 공항인 베이징 다싱국제공항은 얼굴인식 수속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프라이버시와 인권 침해 소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강의실에 얼굴인식 기술을 갖춘 감시 카메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대학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이에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낭만으로 가득해야 할 대학이 감시와 통제의 그늘이 진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서 감시와 통제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위구르족 이슬람교도 1100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중국 당국에 오랫동안 인권 탄압을 받아온 곳이다. 그동안 중국 공안은 모바일 앱, 안면인식 기술 등을 활용해 이 지역 무슬림을 추적 감시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10월 7일(현지시간)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인민정부 공안국과 감시카메라 제조업체 하이크비전 등 중국 기관·기업 총 28곳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각종 첨단기술을 활용해 신장 위구르족을 감시하는 것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당국의 감시에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자오하이리(41) 씨는 “20대 젊은 세대는 감시로 인한 사생활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을 띠는 것 같다”면서도 “13억 대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당국의 감시와 통제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고 느끼는 중국인들도 제법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감시 체제와 개인 프라이버시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과도기 시점”이라고 개인 의견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