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공연 관람 에티켓은? 스마트폰 촬영 놓고 미국서 논쟁 가열
장용승 기자
입력 : 2019.11.01 15:33:41
수정 : 2019.11.03 07:50:01
‘촬영 금지’, ‘스마트폰 전원 OFF’.
흔히 전 세계 어느 공연장에 가더라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안내문이다. 안내문 ‘디테일’이 좀 다를 수 있지만 핵심 메시지는 스마트폰 사용을 삼가달라는 것이다. 이는 아티스트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람객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라는 뜻이다. 또 이는 주변 관람객을 위해서도 당연히 지켜야할 예의이기도 하다. 공연 도중 스마트폰이 울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연의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도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이러한 원칙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 도래로 스마트폰 이용이 대중화되면서 시대에 걸맞은 바람직한 공연 관람 에티켓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이 주제에 대한 기사를 1면에 걸쳐 비중 있게 보도했다. NYT는 ‘스마트폰이 없고 촬영이 없으면 관객도 없다?(No Cellphone, No Recording, No Audience?)’라는 돌발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로선 당연한 ‘스마트폰 금지’ 공연 관람 문화가 앞으로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변화를 몰고 오는 주된 세력은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이들이 경제 중심축으로 점차 부상하면서 이들의 특징을 포용하는 공연 문화를 받아들여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보기술(IT)에 능통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 동영상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에 매우 친숙한 세대다. 공연 기획자들이 흥행을 위해 이를 활용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콘텐츠는 티켓 판매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을 활용하고 있는 만큼 공연 현장에서도 디지털 세대의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클래식 공연의 경우, 고객층이 주로 연장자들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도 있다.
욘더 스마트폰 보관 케이스
즉 저변을 넓히기 위해선 밀레니얼 세대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이들을 고객층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NYT 보도에 따르면 일부 평론가들은 관람객들이 지켜야할 공연 에티켓을 강요하고 단속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고상한 행위라는 비판까지 내놓고 있다.
디지털 시대 공연 에티켓 논란에 대한 책 <합리적 관객(The Reasonable Audience)>의 저자인 커스티 세지먼은 “결국 이러한 논쟁의 본질은 누가 원칙을 세우느냐의 문제”라며 “관객들은 각자 공연장이 어떻게 운영·관리되어야 하는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최근 들어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스마트폰 금지’를 어느 정도 풀어주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NYT 보도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일부 공연을 즐기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앱을 제공하면서 공연 안내를 하는 것이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캐주얼 금요일’ 콘서트에서 특정 좌석에 한해 이를 운영하고 있다.
인기 가수 스프링스틴은 지난 2017년과 2018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록 콘서트에 익숙한 팬들에게 공연 도중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되, 커튼콜(연극이 끝난 뒤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배우들이 무대 위에 나오는 것) 때 팬들이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있도록 오랫동안 무대에 서 있었던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비슷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웹사이트에는 ‘커튼콜 때 사진을 찍어라’라고 안내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스마트폰 금지’에 대해 어느 정도 융통성을 제공하는 움직임이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마트폰 사용을 원천봉쇄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합리적 관객의 저자 커스티 세지먼
링컨센터는 오는 가을 ‘화이트 라이트 페스티벌’에 스마트폰 사용을 막기 위해 ‘욘더(Yondr)’ 서비스를 이용할 예정이다. 욘더가 제작한 특수 보관 케이스에 관객들이 스마트폰을 넣으면 잠금장치가 작동해 공연 중 스마트폰을 쓸 수 없다. 만약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다면 스마트폰 사용 금지 구역 밖으로 나와서 잠금 해제를 요청해야 한다. 특히 공연 도중 스마트폰 사용 문제 때문에 아티스트들과 관객들 간 불미스러운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잘못된 사람(The Wrong Man)> 배우인 조슈아 헨리는 최근 공연 도중에 앞줄에 있는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을 찍고 있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몇 차례 눈치를 줬지만 이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헨리는 3번째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관객 좌석으로 직접 가서 스마트폰을 가로챘다.
앞서 미국 오하이오에서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가 연주를 잠시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앞줄에 있는 관객이 동영상을 찍고 있는 것에 대해 직접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이 관객은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사장의 안내로 퇴장당했고, 공연은 그 이후에 재개됐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선 논쟁이 뜨겁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헨리는 공연 이후에 “나도 그렇게까지 한 것에 대해선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며 “반사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무터는 “(스마트폰으로 나의 공연을 찍으면)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예술적 저작권도 침해받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무터의 행동에 반대 입장을 보인 한 사람은 트위터에 “구식의 콘서트 의식을 강조하는 공연자들은 15년 후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할수록 이러한 논쟁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 ‘스마트폰 금지’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는 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나올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