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나만의 예술 작품 찾는 日소비자 작가·후원자 이어주는 스타트업 인기
정욱 기자
입력 : 2019.02.13 16:08:29
수정 : 2019.02.13 16:08:45
# 도쿄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오카 요스케 씨(43)는 지난해 난생 처음으로 그림을 샀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접속한 트위터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다츠미 나오 씨가 그린 풍경화다. 다츠미 작가는 구글 스트리트뷰에 찍힌 전 세계의 풍경 중에서 맘에 드는 곳을 골라 이를 회화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카 씨는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며 “바로 다츠미 씨에게 트위터로 연락해서 5만엔에 그림을 샀다”고 자랑했다.
# 지난해 문을 연 도쿄 히비야 공원 인근의 대형 상업시설 ‘미드타운 히비야’. 이곳 3층엔 ‘옐로코너’란 매장이 있다. 옐로코너는 전 세계 27개국에 100여 개 매장을 둔 사진 전문 매장이다. 200여 명의 전속 사진작가의 한정수량 작품들을 판매한다. 일본에는 지난해 미드타운 히비야 완공과 함께 첫 진출했다. 다나카 아이코 옐로코너 이사는 “매출이 당초 목표의 2.5배에 달한다”며 “이렇게 잘 팔릴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문을 연 도쿄 히비타운 미드야의 사진 전문 매장 ‘옐로코너’.
전속작가들의 한정판 사진을 판매한다. 예상보다 2배 이상 많은 판매가 이뤄졌다.
미술품을 직접 소장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
미술관을 찾고 즐기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직접 소장까지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사야하는지를 모르고 또 사려는 가격이 적정한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미술 작품이라면 일반인들이 가까이 하기엔 가격이 높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품을 직접 구입하는 사람이 늘게 된 것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해결된 덕분이 크다. 꼭 화랑이나 전문적인 매장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쇼핑의 현장에서 미술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기에 일반인이라도 ‘한번 사볼까’란 생각이 들 정도의 수준의 가격대에 정가까지 표시돼 있어 거부감이 줄었다. 처음 미술작품 구매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난해한 작품 보다는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일러스트, 사진, 조각 등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옐로코너만 보더라도 이런 부분을 파고 들었다. 다나카 이사는 “CD나 책을 사는 것처럼 가볍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매장을 열 때부터 누구나 들를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격이다. 흔히 ‘아트샷’이라고 불리는 작품(세로 40㎝, 가로 50㎝ 크기)의 경우엔 1만엔 정도에 판매한다. 여기에 사진틀까지 더해 2만엔 미만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나카 이사는 “슬쩍 한번 둘러보러 왔다가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후지 사토시 씨는 자택에 일본 작가인 나카무라 잇세이의 작품을 10여 개 가량 걸어놓고 있다. 일본 전통 종이에 담담한 색채의 작품 위주다. 가장 큰 돈을 들인 것은 지난해 사들인 작품으로 30만엔(약 300만원)을 썼다. 후지 씨는 “옷 등은 잘 사지 않지만 그림은 계속 사들이게 된다”며 “작품 한 점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 브랜드의 커피메이커를 사는 것과 같은 식”이라며 “약간의 부담으로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이다.
사실 인테리어의 측면에서는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명 작품의 복제품(레플리카)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트렌드가 바뀌어 이제는 유명하지 않더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분위기다. 일본 문화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미술품 시장은 2437억엔(약 2조4370억원)으로 전년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유명 제품의 복제품 시장 규모는 전년에 비해 24%나 줄었다. 한 점을 사더라도 진품을 택한다는 얘기다.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작가들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자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모델을 갖춘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메세로(mecelo)’다. 예술가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스타트업이다. 후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월 100엔(약 1000원) 이상이면 얼마든 가능하다. 기부를 받은 아티스트는 매달 답례 차원에서 엽서나 자신의 작품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후원자와 소통한다.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을 경우엔 메세로를 통한 구입도 가능하다.
미술품 거래가 생소한 것은 고객이나 아티스트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메세로가 중간에서 가격을 조율해주고 필요한 서류 등을 준비해주는 등의 작업을 대행해준다. 또 작품을 구입한 고객이 직접 평을 남기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몰의 고객 후기가 다음 고객의 구매결정의 근거가 되는 것을 활용해 신규 고객들의 저항감을 낮춰주기 위해서이다. 지난해 4월 시범 운영을 시작하여 아직 규모는 크지 않다. 현재 등록된 아티스트는 총 22명. 모두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다. 메세로에서는 앞으로 후원자들과 작가들 간 네트워킹 이벤트를 비롯한 교류의 장을 더욱 늘려나갈 계획이다.
메세로 외에도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스즈리 피플 바이 GMO페파보’나 ‘픽시브(pixiv)’ 등도 모두 사업 내용 등은 비슷하다.
스즈리를 운영하는 GMO페파보는 도쿄증시 1부(코스피 시장에 해당)에 상장된 기업인 GMO의 자회사다. 스즈리는 먹을 가는 데 사용하는 ‘벼루’를 뜻하는 말이다.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스즈리 피플 등의 경우에는 아예 작가에 대한 작업 주문이 가능하다. 픽시브의 경우 만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내걸고 있다.
다카시마야 니혼바시점에서는 ‘아트 애비뉴’란 이름으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쇼핑하듯 미술품을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고객들 반응도 좋다.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곳도 늘고 있다.
도쿄 중심부인 니혼바시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여성복 매장 곳곳에 미술품을 배치해 놨다. ‘아트 애비뉴’란 이름을 붙인 미술품들은 전시 목적도 있지만 주 목적은 판매다. 다카시마야 니혼바시점에 있는 기존 화랑에서는 수백만엔짜리 고가 작품들이 중심이지만 아트 애비뉴엔 1만엔 전후의 작품들이 많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2개월 단위로 작품을 바꿔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주변의 매장에서 판매하는 옷이나 가방 등과 어울릴 것 같은 작품들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반응도 좋아 지난해 8~10월 실시한 유리공예 작품은 ‘완판’을 기록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프랑스 패션브랜드인 ‘아그네스비’는 지난해 12월 도쿄 명품거리인 아오야마 거리에 매장을 내면서 2층에 갤러리를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