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물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m investor)이자 억만장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의체면이 말이 아니다. 손을 대는 기업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10여 년 만에 막대한 부를 쌓아 헤지펀드 업계를 대표하는 스타매니저로 성장한 그가 최근 잇따른 무리수로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내면서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퍼싱스퀘어를 설립한 애크먼은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기업 경영진의 역할이라는 투자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주주행동주의 투자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기업가치를 높여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기업 경영진이 주주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주가를 올리기 위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투자자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주가를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기업 CEO 교체나 기업 분할을 요구하고 배당금 증액과 자사주 매입을 주문한다. 이 같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곧바로 공매도를 통해 기업 주가를 떨어뜨리거나 적대적 M&A를 통해 기업 경영권을 빼앗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게 다반사다.
실적이 좋지 않거나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기업 경영진들은 혹시나 “내가 당신 회사 지분을 대거 매집했는데 앞으로 이런 식으로 경영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최후통첩을 전하는 애크먼의 전화가 올지 몰라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정도다. 그런데 이처럼 미국기업들을 들었다놨다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애크먼의 입지가 최근 확 쪼그라들고 있다. 기업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무리한 요구로 인해 해당기업 경영진과 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히려 해당 기업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매도를 친 뒤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해당기업 주가 폭락을 초래, 쉽게 큰돈을 벌어들였지만 최근에는 다른 헤지펀드들이 반대포지션을 취하는 등 반격에 나서는 바람에 오히려 공매도를 친 주식의 주가가 급등해 손실을 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공매도 무리수 두다 공매도로 역풍
최근 허벌라이프 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크먼은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과 다이어트 제품을 판매하는 다단계 회사인 허벌라이프 주식을 지난해 12월 대규모로 공매도 했다. 공매도 규모는 허벌라이프 전체 주식의 20%에 달하는 2000여만주(10억달러)에 달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처럼 허벌라이프 주가 하락에 베팅하기 위해 공매도를 친 뒤, 그는 지난해 12월 18일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공매도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허벌라이프를 ‘피라미드 사기회사’로 규정하고 감독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주가 폭락을 초래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애크먼이 공매도를 쳤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벌라이프 주식은 실제로 폭락했고 애크먼이 또 한번 대규모 이익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른 헤지펀드들이 끼어들면서 애크먼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 애크먼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애크먼의 공매도 규모에 육박하는 1696만6485주(16.46%)의 허벌라이프 주식을 사들였고 소로스펀드, 서드포인트 등 다른 헤지펀드들까지 폭락했던 허벌라이프 주식을 저가에 거둬들이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애크먼의 공매도로 지난해 12월 24일 장중 26.06달러까지 떨어졌던 허벌라이프 주가는 9월 중순 현재는 66달러 수준이다.
두 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이로 인해 애크먼은 현재 5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면초가에 처한 애크먼은 최근 허벌라이프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허벌라이프 회계감사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허벌라이프 회계장부에 대해 적정의견을 낼 경우 나중에 상당한 배상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나선 것. 애크먼은 지난 8월말 PwC에 서한을 보내 “만약 허벌라이프가 피라미드 사기업체란 우리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회사 파산 후 PwC가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허벌라이프 회계 문제를 다시 들여다 볼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허벌라이프 바브 헨더슨 대변인은 “애크먼이 무절제한 10억달러 공매도 투자에 대한 손실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필사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회계법인을 걸고 넘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연이은 악재 JC페니 투자도 큰 손실
악재는 연이어서 터진다는 증시 격언을 증명하듯 애크먼은 JC페니 투자에서도 큰 손실을 봤다. 애크먼과 JC페니간 악연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JC페니 주식을 매집해 지분율을 17.74%로 끌어올린 뒤 최대 주주에 등극한 애크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JC페니 경영진 교체. JC페니 지분을 사들인지 1년도 안 된 지난 2011년 11월 애크먼은 당시 JC페니 마이클 울먼 CEO를 쫓아냈다. 대신 애플스토어를 만들어 애플 바람을 일으켰던 애플 출신 마케팅 귀재 론 존슨을 JC페니 CEO로 영입했다.
그런데 존슨 CEO 영입후 JC페니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애크먼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으로 존슨 CEO는 할인쿠폰을 폐지하는 등 영업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꿨지만 할인쿠폰에 익숙한 고객들이 JC페니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JC페니 매출이 25년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주가가 폭락하는 위기상황에 빠지자 JC페니 이사회는 지난 4월 존슨CEO를 경질하고 울먼 CEO를 다시 불러들였다.
애크먼이 몰아냈던 인물을 다시 CEO로 재추대하는 역쿠데타가 일어나자 애크먼이 발끈했고 결국 JC페니 이사회에 울먼 CEO를 다시 자르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사회는 한 명의 JC페니 이사에 불과한 애크먼이 JC페니 경영 월권을 하고 있다며 정면충돌했다.
주변 여론도 애크먼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헤지펀드 전설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 펀드 회장이 JC페니 주식을 추가적으로 사들이면서 JC페니 이사회 손을 들어준 것. 결국 애크먼은 보유하고 있던 JC페니 지분 18%(3900만주)를 주당 12.50~12.90달러에 다 팔아버렸다. 이는 평균 매입가격(25달러)의 절반수준으로 애크먼이 4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