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내외 언론들에서 ‘리코노믹스’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중국어로는 일명 ‘커창 경제학’이라고 하는데 현임 총리인 리커창이 전임 총리와는 다른 경제정책을 현재 추진하고 있거나 혹은 향후 추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만들어 낸 용어이다. 중국 경제가 최근 들어 성장률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중국이 새로운 개혁을 통해 계속 세계경제 성장의 중요한 엔진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나라들이 많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입장에서 향후 중국 경제정책의 행방이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자연히 ‘리코노믹스’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리코노믹스’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아직 확실한 정답은 없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국내외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리코노믹스’를 해석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관점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향후 계속 강력한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 ‘리코노믹스’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정부 역할을 줄이고 시장 기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사실 정식으로 총리로 부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공개 석상에서 한 몇 차례의 발언과 최근 수개월간의 중국 경제 동향만을 가지고 리커창 총리의 내심세계를 모두 읽어 낸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리코노믹스’라는 용어가 성행하는 배경에 과거 후진타오 시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과 현재 새로운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깔려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상당수의 중국 개혁파 학자들은 ‘리코노믹스’를 새로운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계기로 삼고 그 해석에 자신들의 정책 주장들을 끼워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중국 내에서 ‘리코노믹스’에 대한 대표적인 관점은 대체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향후 정부가 시장 역할을 강화해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정부가 도맡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정부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심사 절차를 줄이며 지방정부와 기업들의 적극성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감세 및 사회복지 정책 강화를 통해 정부와 국유부문의 이익을 상당부분 민간에 양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심지어 ‘리코노믹스’가 영국 대처 수상이나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했던 공급학파의 정책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 중국 은행들에서 ‘돈 가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처음에 중국정부가 과거처럼 돈을 풀지 않고 콜 금리가 대폭 상승하는 것을 방치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외국 연구기관에서는 중국정부가 앞으로 ‘임시 경착륙’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 심지어 경제성장률이 분기별 수치로 3%대까지 하락하더라도 경기부양 조치를 지양하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중국이 단기적인 고통을 대가로 장기적인 고통을 피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리커창 총리가 중국 경제지표에 물가상승률의 상한선과 경제성장률의 하한선을 그어 놓고 만약 경제성장률이 7%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정부가 과감히 경기부양책을 펼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리코노믹스’라는 용어가 성행하는 배경에는 또 과거 주룽지 총리의 경제개혁에 대한 향수가 깔려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의 많은 국민들은 리커창 총리가 과거 주룽지 총리가 했던 것처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 심지어 지금 리커창 총리가 처한 환경이 주룽지 전 총리가 부임했던 상황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중국의 개혁파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가운데서도 주룽지 전 총리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다. 물론 모두 주룽지 전 총리의 공로라고 할 수는 없지만 1994년 주룽지는 사상 처음으로 부총리가 친히 중국 인민은행 행장을 겸임하면서 과감히 인민폐 환율의 단일화를 단행하고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시켜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
또 유명한 ‘분세제’ 개혁을 추진해 시장경제 활성화의 기반을 닦았으며 WTO 가입을 성사시켜 ‘세계공장’의 기초를 마련했다.
주룽지가 경제를 이끌던 90년대 후반에 국유기업 민영화가 급속히 추진되고 민영기업들이 크게 성장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비록 주룽지 총리 시절에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성장률이 7.6%까지 하락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의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평가다.
결국 주룽지가 퇴임한 후 후진타오 집권 1기인 2007년까지 중국 경제는 역사상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발전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후진타오 지도부는 주룽지 전 총리가 마련한 개혁 기반의 덕을 툭툭히 본 반면, 이렇다 할 경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중국 개혁파 학자들의 평가다.
개혁파 학자들의 소원 같아서는 이른바 ‘리코노믹스’가 주룽지 시대의 개혁과 같은 상징이기를 바라겠지만 향후 중국 경제개혁이 과연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전개될 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중국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며 지난 정권하에서 어떤 것들이 문제점으로 되어 왔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밝혀내는 것이다.
즉 비록 현재 중국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해 이미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후진타오 시대에 선진국을 본받아 ‘신노동법’을 제정하고 ‘최저 임금제’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민영경제의 활력을 크게 손상시켜 저소득층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이익을 해쳤다는 비판이 있다.
또 지난 10년간 국유기업의 민영화가 정체되고 국유기업의 독점적인 경영방식이 국민경제 효율성을 크게 손상시켰다는 비판도 많다. 심지어 후진타오 지도부가 큰 성과로 자랑하는 사회보험제도의 보급 역시 중국의 상황을 무시하고 성급히 선진국의 복지제도를 모방한 실패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과거 후진타오 시대에 어떤 태도와 역할을 했는지는 불분명하고 지금도 역시 태도가 선명하지 않다. 우리가 ‘리코노믹스’를 주목할 때 단순히 중국정부가 향후 경기부양책을 내놓느냐 마느냐 하는 것보다 과연 중국에 필요한 근본적인 개혁이 무엇이며 향후 구체적으로 어떤 개혁이 이루어지는가를 눈여겨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