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실현하면서도 개발도상국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슬럼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큰 성과로 자랑해 왔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사실상 현재 중국에도 도시 슬럼가가 없는 것은 아니며 역시 다른 나라에서 도시화를 추진할 때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중국에서 도시의 외곽지역을 돌다보면 간혹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주변 환경과는 조화가 전혀 되지 않는 거주지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눈에도 도시 발전규획에서 소외된 감을 주는 이러한 지역들은 일반적으로 도로가 비좁을 정도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섰는데 노점상들이 많고 환경위생 등 공공 서비스도 열악하다. 지역 내 대부분의 건물들은 주로 외지 농민공들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임대주택과 영세 서비스업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비록 외관상으로 1970년대 서울의 판자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지만 비슷한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이런 곳들은 보통 중국에서 ‘도시 안의 농촌마을(城中村)’이라고 하는 지역들이다.
현대화된 도시 안에 농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있다는 자체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각 도시의 지방정부는 흔히 이런 지역에 현대화 도시 인프라 시설을 들여와 주변 지역과 조화롭게 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장기간 시간을 끌어왔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중국의 특유한 호구제도(戶口制度)와 농촌 토지의 집단소유제도(土地集體所有制)를 모르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중국에서 주민들은 태어날 때로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분 즉 농민과 비농업 주민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농민 호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여전히 농민으로 분류된다. 중국에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른바 ‘농민공’ ’농민 기업가’들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에서 토지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지와 헌법상 지역 농민들의 공동소유로 되어 있는 집단소유제 토지로 나뉘어져 있고 개인 소유는 금지되어 있다. 건국 후 개혁개방 전까지 중국 도시주민들은 국유지인 도시지역에서, 농민들은 집단소유제 토지가 있는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간의 이동이 거의 없었다.
개혁개방 이후 농촌에서 가정을 단위로 한 ‘생산경영책임제’가 실시되면서 집단 공동노동제도가 해체되고 가정별로 집단소유제 토지의 경작권이 할당되었다. 이러한 획기적인 개혁 덕분에 농민들의 노동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어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1인당 경작지가 적은 상황에서 농민들도 개혁 전까지 크게 제한되어 있었던 공상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농민들이 자주로 설립한 ‘향진기업’이 중국 고도성장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 소득 증대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농업개혁의 더욱 중요한 결과는 집단소유 토지의 소재지인 농촌을 떠나 국유지인 도시지역에 가서 2,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수억명의 ‘농민공’들을 양산했다는 점이다. 도시지역에서 이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공장’의 토대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교통, 주택, 상하수도 등 도시 공공시설의 건설에 종사하면서 중국의 도시화를 촉진하는 주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공업화, 도시화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기존 도시지역의 국유지가 크게 부족하게 되자 각지의 지방정부는 자연히 도시 주변에 있는 농민들의 집단소유제 토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는 저렴한 보상비용과 고가의 토지경매 사이에서 막대한 차익을 거두어 도시 인프라 건설을 포함한 정부 지출에 사용해 왔다. 이것이 이른바 지방정부의 ‘토지재정’이라는 것인데 국유 토지 경매수입이 지방정부 재정수입의 절반을 초과하는 지역도 있다.
중국에서 도시 부동산 개발은 국유지에 한해서만 추진할 수 있다. 문제는 농민들의 택지가 지상건물 때문에 보상가격이 일반 경작지보다 엄청 높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경작지의 보상가격은 정부가 농민들의 대표인 촌민위원회와 협상하면 되지만 택지와 건물은 가정에 따라 보상액과 협상 난이도가 크게 다르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도시개발을 빨리 추진하기 위해 일단 농촌 택지지역은 그대로 보류한 채 주변의 경작지부터 국유화하여 도시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의 택지와 건물로 구성된 이러한 농촌마을들은 국유지에만 적용되는 교통, 환경위생 등 도시개발 계획에서 제외된 채 주변의 고층건물들에 둘러싸인 외로운 ‘섬’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정부가 도시개발계획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러한 마을들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 아파트 가격의 시세를 아는 농민들은 도시규모가 확대될수록 자신들의 택지 가치가 급등하고 언젠가는 정부가 높은 보상비용을 치르더라도 이 지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도시 중심부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외지 농민공들은 보통 소득이 낮고 저축성향이 높아 도시주민들이 경영하는 임대 아파트에 입주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이 점을 노린 ‘도시 안의 마을’ 농민들은 기존의 택지에 최대한 용적률이 높은 간이건물을 지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사업을 벌여 왔다. 그러나 정부는 농민들이 택지에 가정 거주용 외의 건물을 짓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농민들의 주택도 외지인에게 매매할 수 없으며 국유지에 건설한 주택에 한해서만 이른바 재산권을 행사하여 매매할 수 있는 주택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민들의 자금력이 제한되어 있고 또 정부의 도시개발 계획에 위반되는 일이기 때문에 농민들은 택지에 임대용 건물을 지을 때에도 향후 재개발 시의 보상 범위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건물이나 기타 시설투자의 품질도 주변지역 고층 아파트들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아 비록 정도는 다르지만 개발도상국의 슬럼가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농촌마을과 주변 국유지 개발지역 간의 환경조건 격차가 늘어나는 반면 농민들이 받고 있는 임대수익도 늘어나 철거 시 요구하는 보상비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간 중국에서 이른바 한국의 ‘알박기’와 비슷한 주민 철거 거부 현상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이러한 ‘도시 안의 농촌마을’을 재개발할 때 지방정부가 제시한 택지 국유화 보상조건이 농민들의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와 농민들 간에 재개발 보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지역들은 향후에도 여전히 도시의 ‘암’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