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기 위해서 지난 2월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에 있는 슈퍼마켓인 ‘스톱&숍’을 찾았다. 계란 코너에서 시선이 멈췄다. 가격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계란 1팩(12개) 가격이 9.39달러로 써 있었다. 유기농 제품이긴 하지만 1년 전에는 5~6달러였으니 60% 이상 오른 것이다. 계란 1알에 1000원 꼴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렇게 계란 가격이 오르며 계란 1팩(12개) 가격 평균(4.82달러)이 쇠고기 1파운드 평균 가격(4.64달러)을 추월했다. 계란값 폭등은 지난해 조류 독감 영향이 크다. 4300만 마리 암탉이 폐사됐다. 이에 따라 작년 말 계란 재고는 연초 대비 29%가 감소했다.
조류 독감이라는 특수한 요인에만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계란 가격 상승에는 인건비, 운송비 등 다른 요소들까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계란 가격 인상은 빵, 과자 등 관련 식품 물가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했던 미국의 물가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모두 전년 대비 상승률이 시장 전망치를 훌쩍 넘어섰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7%, 전년 동월보다 6.0% 각각 상승했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높았다.
생산자물가는 일종의 도매물가로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슈퍼 인플레이션’이 ‘시즌2’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고삐가 풀리며 2년 전 대비 40% 안팎 상승했다.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물가’도 크게 올랐다. 뉴욕 맨해튼 레스토랑에서는 이제 기본 팁으로 18~20%를 요구하고 있다. 보통 점심에는 15% 안팎을 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제 저녁에는 20% 이상을 달라고 하는 레스토랑도 늘어났다.
최근 뉴욕 맨해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업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인건비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실사례다. 맨해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 웨이터들의 연봉은 이제 10만달러를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다. 기본급은 낮지만 팁(봉사료) 때문이다.
저녁에 와인이 포함된 식사를 할 경우 1인당 식사비는 150달러 안팎이 든다. 4명이면 식사비만 600달러. 여기에 팁 20%가 추가된다. 테이블당 팁이 120달러가 생긴다. 3~4개 테이블을 담당하면 하루 저녁에 팁으로만 360~480달러를 번다. 한 달에 20일만 근무해도 7200~9600달러를 가져간다. 문제는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자리가 널려 있지만 사람을 구하기가 여전히 힘들다는 점이다.
매월 발표되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구직자 1명당 1.9개의 구인 공고가 있다. 일부 IT 기업과 금융권에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지만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뉴욕의 호텔에서 만찬 행사를 할 때 기본 팁이 20~25%에 달하고 있다. 워낙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서다. 팬데믹 이후 밀렸던 행사들이 쇄도하면서 호텔 행사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전쟁이다.
약 150명을 초대해 고급 호텔에서 리셉션을 겸한 만찬 행사를 하려면 최소 7만~8만달러가 든다. 여기에 1만5000~2만달러는 팁으로 추가 비용이 붙는다. 이 정도 행사에는 20~25명의 웨이터가 투입되는데, 고참급 웨이터는 하루 저녁 행사로 팁으로만 1000달러 이상을 가져간다. 월급은 별도다.
계란부터 인건비까지 상상 이상으로 폭등한 뉴욕 일대의 물가 현실이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나타난 40여 년 만의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폭등과 공급망 붕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동시에 만들어냈다.
미국 슈퍼인플레이션 ‘시즌1’의 전반부는 상품 부문에서 초래됐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푼 막대한 유동성 탓이다. 후반부는 백신 보급이 마무리되고 집단 면역이 생기며 이동의 자유가 확보된 뒤에 나타났다. 서비스 분야에서다. 여행 등 서비스업 물가가 폭등했다. 앞서 소개한 호텔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즌2’는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징은 무차별적이라는 점이다. 상승세가 꺾인 것으로 생각했던 상품 물가가 다시 오르고 있다. 지난해 예상과 달리 올해 미국이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며 사람들이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 고질병이 된 구인난에서 야기된 인건비 상승은 아직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16일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에서도 이런 점이 확인됐다. 12월에는 서비스업 생산자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1% 상승했지만 상품 생산자물가지수가 -1.6%를 기록하며 상승 폭을 제한했다. 하지만 1월에는 서비스 지수가 0.4% 상승한 데 이어 상품 지수가 1.2% 상승했다. 스튜어트 폴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1월 PPI 상승률은 올해 내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됐던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지워버렸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4일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12월 7.0%(전년 동월 대비), 1월 7.2%로 되레 높아졌다. 이런 통계들이 연이어 발표되자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관계자들은 매파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 매파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3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50bp 인상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제는 통화정책으로 제어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급등 원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파월 연준 의장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재급등은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면밀하게 예의주시해야 할 시기가 됐다. 볏짚 사이에 던져진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는 언제든 다시 초가삼간을 태울지 모른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