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부터 완판됩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가심(心)비’로 바뀐 대한민국 슈퍼리치 ‘럭스맨’들의 돈쓰는 취향이 리조트 판까지 갈아치우고 있다. 그동안 여행·레저계를 지배해 온 2000만~3000만원(회원권)짜리 중소형 리조트 자리에 초고가 프리미엄 리조트가 은밀하게 세를 불리고 있다. 용평에 이어 강원권은 이미 ‘쩐의 전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비싸야 팔리는 뉴노멀 리조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
▶ 양양 설해원
‘세상에 어떤 리조트가 4만 평에 겨우 74개만을 지을까요.’ 이런 ‘발칙한 문구’를 내세운 곳이 강원권 프리미엄 리조트 선두주자 설해원이다.
양양국제공항 뒤편에 자리한 설해원은 골프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고급 숙박시설에다 온천까지 갖춘 리조트가 본연의 모습이다. 이름도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쉼의 정원’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 이름에 걸맞게 숙소 동쪽에는 양양 동호해변, 서쪽에는 설악산 기슭이 자리한다. 설해온천수는 특별하다. 19억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편마암과 2억 3000만 년 전 마그마 활동으로 형성된 화강암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기나긴 세월 지온으로 데워졌다. 이 물이 암석과 반응하며 각종 미네랄을 균형 있게 우려낸다. 그야말로 시간과 자연의 정수(精髓)인 셈이다. 설해수림은 ‘19억 년을 기다려 왔다’고 표현한다.
설해원 안에는 면역공방도 자리잡고 있다. 원적외선 음이온 파동을 이용해 몸 안의 독소를 빼내는 디톡스 온열 요법이다. 설해원 온천과 함께 이용하면 몸이 한층 더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온천수(水)와 소나무숲(林)을 이름에 그대로 담은 ‘설해수림(雪海水林)’은 한마디로 ‘럭셔리’에 미친 곳이다. 일반 택지라면 아파트 3500가구가 들어설 수 있는 면적이지만, 설해수림은 빌라 74실만 짓는다. 전체 부지 중 10만㎡가량은 소나무 숲으로 보존한다. 심지어 온천 직수를 전 객실에 공급해 온천욕까지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도록 힐링 쉼표의 방점을 찍어준다.
설해수림의 74개 빌라는 17개 타입이다. 크게는 380평의 펜트하우스부터 통창을 열면 바로 자연으로 이어지는 10m 길이의 테라스빌라, 8m 길이의 온천수영장을 갖춘 풀빌라까지 다채롭다. 가장 면적이 작은 곳이 108평이다. 설해수림이 설해원 내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2026년 초다. 이미 1차 분양분은 완료. 2차 분양에 착수했는데, 가장 비싼 20억원부터 매진 행렬이다.
▶ 부산 기장도 럭셔리 경쟁
부산 기장도 럭셔리 전쟁 중이다. 럭셔리 터줏대감은 아난티다. 펜트하우스급인 아난티 코브에 이어 최근 ‘빌라쥬 드 아난티’까지 오픈하면서 럭셔리 라인업을 완성했다는 평가다.
‘빌라쥬 드 아난티’는 기존 ‘아난티 코브’보다 2배 더 넓은 대지면적 16만㎡(약 4만8400평) 규모의 역대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아난티는 최강의 프라이빗함을 선사하기 위해 흙 200만 톤을 쌓아 아난티 힐튼의 10층 높이(약 38.5m)로 대지를 올려 눈길을 끌었다.
초고가 리조트를 지향하는 만큼 과거와 미래, 산과 바다, 도시와 전원 등 여행의 시퀀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곳에서 누릴 수 있도록 공간을 기획한 게 매력. 단독빌라와 펜트하우스, 아난티 앳 부산 호텔 등 392개의 다양한 객실을 비롯해 연면적 6000평의 복합문화공간, 5개의 수영장, 11개의 야외 광장을 갖추고 있다.
압권은 단독빌라 형태의 ‘매너하우스’. 완벽한 프라이빗 공간으로 유럽의 조용한 마을에 온 듯한 분위기다. 총 4개 동으로 구성된 ‘클리퍼’는 히노키탕을 갖춘 스프링하우스, 개인 풀에서 바다를 보며 수영할 수 있는 풀하우스 듀플렉스, 복층 구조의 듀플렉스하우스와 오션듀플렉스하우스로 구성돼 있다.
공교롭게도 아난티에 도전장을 던진 곳은 외국계 반얀트리그룹이다. 오는 12월 준공, 내년 4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반얀트리 해운대 부산’ 역시 초고가 럭셔리 콘셉트를 끌고 간다. 오너십 회원인 ‘아너스 회원’에게는 반얀트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특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반얀트리 프라이빗 컬렉션(Banyan Tree Private Collection, BTPC)’ 혜택까지 주면서, 글로벌 슈퍼리치들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반얀트리그룹 관계자는 “슈퍼리치들의 취향은 가심비다. 기능의 차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곳의 스토리와 문화를 산다고 보면 된다”며 “가격은 그들에게 허들이 아니다. 제대로 프라이빗함을 즐기며 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강조했다.
▶ ‘17분 완판 신화’…315만원 열차 해랑
‘17분 완판.’
2박 3일 투어에 3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열차 해랑이 세운 기록이다. 팬데믹으로 2년간 멈춰섰다가 올 초 재가동을 했는데, 오픈과 동시에 전 좌석이 17분 만에 동이 나 버렸다.
럭셔리 ‘뉴노멀’은 국내 패키지 여행으로도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열차 ‘해랑’ 투어다. ‘한국판 오리엔탈 특급열차’를 표방하는 만큼 2박 3일 투어 비용이 유럽 여행과 맞먹는 초고가다. 올해 리뉴얼 출격하면서 1박 2일 206만원, 2박 3일 가격은 315만원을 찍었지만 올여름 휴가철을 포함해 벌써 8월 말까지 풀부킹이다. 1월부터 움직인 53회분 역시 모두 만실로 출발할 만큼인기다. 이 열차는 특급호텔을 통째 옮겨온 구조다. 4호차(레스토랑 카페)와 5호차(이벤트 라운지)를 제외한 6량이 객실인데, 객실 타입은 2인실 스위트룸과 디럭스룸, 3~4인실(2층침대) 패밀리룸과 스탠다드룸 등 4가지다. 정원도 소수정예. 해외 대신 국내를 선택하고도 기꺼이 300만원을 지불한 50여 명 정도만 탑승한다. 원래는 해외, 특히 일본인 비중이 50% 이상으로 높았지만, 지금은 국내 큰손들도 앞다퉈 찾는다. 열차 호텔룸에서 숙박은 하지만 식사와 현지 투어는 철저히 프리미엄으로 진행된다. 전남 순천에서는 장어구이, 광양에서는 불고기를, 부산에서는 활어회, 경북 경주에서는 한정식, 강원 태백에서는 한우구이를 맛본다.
황성미 코레일관광개발 홍보파트장은 “최근 인플루언서들이 탑승하면서 국내 슈퍼리치들의 문의가 급증했다”며 “일본 세븐 서미츠라는 럭셔리 열차가 벤치마킹한 대상도 우리 토종 해랑이다”라고 설명했다.
하나투어가 최고가 국내 버스투어로 내놓은 ‘내나라여행’ 한국일주 코스는 평균 가격이 197만원으로, 해랑 뺨치는 수준인데도 거의 만실이다.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한국일주 7일’짜리다. 퍼플섬으로 유명한 신안을 포함해 전주, 담양, 여수, 거제, 경주, 문경 등을 고루 도는 코스로 노팁·노쇼핑·노옵션이다. 버스도 프리미엄급.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방불케 하는 널찍한 구조의 28인승 리무진을 타고 다닌다. 숙소도 하나같이 럭셔리. 지역 5성급 호텔에 묵는 프리미엄 패키지다.
가성비 대신 ‘가심비’ 트렌드가 자리잡으면서 최근에는 이 패키지, 더욱 인기몰이 중이다. 17년째 이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는 하나투어의 경우 지난 4월 한 달간 예약 인원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 이상 늘었고, 2022년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뛰었다. 특히 이 패키지에 관심을 보이는 층은 여행가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층이다. 전체 예약의 93% 이상이 50대 이상의 액티브 시니어 층이며 특히 주 고객층은 ‘6070’일 만큼 여유가 있는 ‘골드 시니어층’이 싹쓸이 하고 있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일정이 힘든 해외 대신 여유로운 국내, 특히 럭셔리한 국내 투어를 위해 이 코스를 택한다. 재방문 의사도 80% 이상일 정도로 만족도도 높다”라고 말했다.
[신익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