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각국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파를 상쇄하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다. 부족한 사회 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투자 유치부터, 메가급 건설 프로젝트 추진, 암호화폐 사업 등 각국은 자국의 비교우위 분야를 중심으로 집중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먼저 인도네시아는 ▲광업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 등 4대 중점 분야를 선정해 투자 유치를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웨비나 등 다양한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33개로 총 규모는 100억달러(약 11조8600억원)에 이른다.
이 4대 분야들은 인도네시아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먼저 광업의 경우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의 최대 매장국이다. 전 세계 매장량의 24~25%를 차지하고 있다. 니켈 외에도 코발트, 망간, 리튬 등 다른 전기차 배터리 원료도 풍부하다. 글로벌 친환경 산업 트렌드에서 인도네시아의 이 같은 자원들은 상당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적극 활용해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인프라 산업 강화는 여전히 부족한 국가 기간망과 관련된 개발이 곳곳에서 진행 중인 인도네시아 특성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2억7600만여 명에 달하는 풍부한 인구가 바탕이 된 전략이다.
현재 33개 프로젝트 중 타당성 검토가 완료된 프로젝트는 12개,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것은 21개다. 타당성 검토가 끝난 프로젝트 중에는 자바, 칼리만탄, 수마트라 지역의 공항·항구·도로·수처리 시설 등의 건설 사업과 니켈·코발트 등의 원료를 가공하기 위한 제련소 건설 등이 눈에 띈다. 타당성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것들 중에는 반다아체 라동 등에 건설될 4개의 산업단지와, 리아우 갈랑 바탕·중부 술라웨시의 팔루·서부 파푸아의 타소롱 등 3개 지역에 조성될 경제자유구역을 눈여겨볼 만하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소로와코 인근 니켈 광산에서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자재 관련 산업을 통합하겠다는 구상도 내놓고 있는데, 에너지광물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19개 제련소가 있고 2024년까지 34개 제련소를 추가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각종 인프라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와 다른 점은 메가급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코타키나발루에 짓고 있는 록카위 리조트 시티, 랑카위에 들어설 예정인 위다드 랑카수카, 디지털화가 추진 중인 페낭 남섬 등이 대표적이다.
록카위 리조트 시티는 2035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요트 정박이 가능한 리조트 3곳, 초대형 쇼핑몰, 해안가 주거지, 인공호수와 놀이공원 등이 들어서게 된다. 총 개발 가치만 18억달러(약 2조13000억원)로, 시티가 완공되면 5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랑카위에 들어서는 위다드 랑카수카는 두바이의 팜주메이라와 같은 인공 섬이다. 거주지는 물론, 호텔 리조트, 테마파크, 골프장을 포함해 의료 센터, 고등 교육 기관 및 항공 센터, 예술 문화센터 등이 예정돼 있다. 위다드 비즈니스 그룹과 빈자예드 인터내셔널이 같이 개발하고 있는 이곳은 록카위보다 더 규모가 크다. 총 개발 가치만 96억달러(약 11조3800억원)에 이른다.
코트라 쿠알라룸푸르 무역관 측은 “현지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지역 경제 촉진은 물론 말레이시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다드 랑카수카의 완공 예상 시기는 2035년이다.
말레이시아의 록카위 리조트 시티 조감도
세계 장갑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 장점을 살린 월드 글로브 시티란 이색 구상도 있다. 2025년 완공 예정인 이 시티는 장갑 제조업에 첨단 기술을 결합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주거와 상업 등의 기능을 더해 스마트한 장갑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60만 명의 거주도 계획돼 있다.
페낭 남섬 프로젝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페낭의 경제 체질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페낭 섬 남쪽 끝의 3개 섬을 개발하게 되는데, 1단계 개발 규모만 우리 돈 1조원에 달한다. 3개의 섬에 주로 유치할 산업군은 전기 전자, 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형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곳들이다. 2000㎞의 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이 완공되면 브루나이 술탄국을 통해 사라왁과 사바주를 잇는 도로가 탄생한다.
도로 건설은 베트남 정부에서도 우선순위에 놓여 있다. 아세안에서도 국가 현대화 작업이 빠른 베트남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도로 사정은 시급히 해결해야 될 숙제다. 베트남이 국가 도로망 확충에 힘을 쓰는 것은 지역 간 균형발전에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는 국가 중추신경이 될 남북고속도로 건설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인데 우리 돈 6조원가량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고속도로는 총 729㎞의 12개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트남은 2030년까지 172개의 국도도 추가로 확충할 예정이다. 또 2050년까지 총 길이 9000여 ㎞에 달하는 41개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라오스 세피아-세남노이 수력발전댐 전경
라오스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3개국과 달리 암호화폐를 신수종 사업으로 채택했다.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인정한 것인데,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 행보다. 라오스 정부가 암호화폐 사업이 뛰어든 것은 새로운 수익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세안에서도 저개발국인 라오스는 허약한 경제체질 탓에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인접국보다 더 강하다.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관광산업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코로나19로 외부 원조와 투자도 줄었다. 이런 와중에 국가 부채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코트라 비엔티엔 무역관에 따르면 라오스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11억6000만달러의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
이에 라오스 정부는 현금 흐름이 좋은 암호화폐 사업을 통해 생기는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세운 것이다. 여기에 더해 라오스가 풍부한 전력 생산국이라는 것도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게 된 또 다른 요인이다. 암호화폐 채굴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전력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라오스는 수력발전으로 생산되는 전기가 풍부하다. 남는 전력을 수출도 한다. 2020년 전력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18억6000만달러(약 2조2000억원)나 된다. 국가 전체 수출액 중 30%나 되는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라오스 정부는 암호화폐 채굴 및 거래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승인한 상태다. 이를 담당할 6개사도 선정했다. 기술통신부, 재무부, 중앙은행 등 관련 부처들은 암호화폐와 관련된 법과 규제를 마련할 예정이다.
비엔티엔 무역관에 따르면 라오스 정부는 암호화폐 채굴과 거래 등을 통해 2022년에 약 1억9000만달러(약 2250억원)의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라오스 정부의 암호화폐 사업 추진에 중국 자본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중국 정부의 자국 암호화폐 채굴 금지 정책으로 인해 사업자들이 전력이 풍부한 라오스 정부를 움직였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